"비만약 가격도 낮췄다" 약값 인하에 힘 쏟는 트럼프, 오히려 中 등 밀어주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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젭바운드·위고비, 美서 최혜국 국가 가격에 팔린다 지속되는 약값 인하 압박, 화이자·아스트라제네카도 '순응' 美 제약업계 수익성 악화 전망, 中의 추격 본격화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비만약 제조사들과 가격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추진해 오던 약값 인하 정책이 점진적으로 현실화하는 양상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치가 오히려 미국 제약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중국 바이오 업체들에 활로를 열어주는 자충수가 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
일라이 일리·노보 노디스크, 美 비만약 판매가 인하
6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일라이 일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비만 치료약을 ‘최혜국 국가’ 기준으로 미국 환자에게 제공하기로 했다”며 “위고비 가격은 월 1,350달러(약 188만원)에서 250달러(약 35만원)로, 젭바운드는 월 1,080달러(약 150만원)에서 346달러(약 50만원)로 내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메디케어(65세 이상 노인과 특정 장애인 의료 지원)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지원) 대상자의 경우엔 정부의 비용 지원으로 본인부담금이 50달러(약 7만2,700원)까지 경감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소비자들은 향후 웹사이트 ‘트럼프알엑스(TrumpRx)'에서 직접 이들 비만치료제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된다. 트럼프Rx는 정부가 환자와 제약사를 온라인으로 직접 연결해 중간 유통 단계를 없애는 일종의 ‘정부 직영 약국’으로, 2026년 1월부터 정식 운영될 예정이다. 환자는 제조사로부터 바로 의약품을 구매해 유통 마진과 리베이트가 제거된 가격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직접 비만약 가격 협상에 나선 것은 그가 추진 중인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ke America Healthy Again)’ 캠페인을 성공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앞서 미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비만 및 만성 질환과의 싸움을 핵심 목표로 세운 상황에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가격이 너무 높다고 비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노보 노디스크의 비만약 위고비와 당뇨병 치료제 오젬픽을 두고 “150달러(약 21만8,000원) 혹은 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꾸준히 약값 인하 필요성 주장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의약품의 가격 인하 및 자국 내 생산 확대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그는 올해 초 공개 석상에서 "의약품은 반드시 미국에서 생산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제조업의 본국 회귀를 핵심 정책으로 천명했고, 이후 고율 관세를 앞세워 글로벌 제약사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릴라이 릴리, 존슨앤드존슨, 노바티스 등 주요 바이오 기업들은 줄줄이 수백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 31일에는 화이자 등 17개 글로벌 제약사에 공개서한을 보내 60일 이내에 약값을 선진국 수준으로 내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직접 촉구하기도 했다. 미국이 세계 평균보다 세 배나 비싼 약값을 낸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해 2월 미국 공공정책 연구 기관인 랜드 코퍼레이션(RAND Corporation)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의약품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국 대비 2.78배 높다.
이 같은 요구에 가장 먼저 응한 것은 화이자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30일 백악관에서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브리핑을 열고 “화이자가 메디케이드에 적용되는 모든 약과 앞으로 나올 신약을 최혜국대우(MFN) 가격에 판매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화이자가 미국 외 선진국에 적용하는 가격 중 최저 가격으로 미국 시장에 의약품을 유통한다는 의미다. 화이자는 약값 인하와 별개로 미국 내 제조 시설에 대한 700억 달러(약 100조원) 규모 투자를 결정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한 대가로 화이자에 3년간 의약품 관세 면제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지난달 10일에는 아스트라제네카도 트럼프 행정부와 약값 인하와 관련해 합의를 도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아스트라제네카가 앞으로 모든 메디케이드 적용 처방약을 MFN 가격에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아스트라제네카는 앞으로 미국 시장에서 출시하는 모든 의약품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앞으로 5년간 500억 달러(약 71조3,300억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집행하기로 했다. 화이자와 마찬가지로 아스트라제네카 역시 향후 3년간 대미 수출 시 관세를 면제받게 된다.

장기적으로 '자충수' 될 위험도
전문가들은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이 장기적 관점에서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무조건적인 판매가 인하로 인해 자국 제약업계 경쟁력이 약화할 시 중국의 추격이 한층 거세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약값 인하 압박이 이어지면 제약사들의 미국 시장 내 수익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 제약 기업들은 미국 외 국가에서 수익성을 확보하기 시작할 것이고, 미국 업체들은 연구·개발(R&D) 자금 확보 등에 난항을 겪으며 경쟁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최근 제약 시장 영향력을 확대 중인 중국에 있어 명확한 호재"라고 덧붙였다.
실제 최근 중국 제약·바이오업계는 국가 차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현시점 관련 시장 규모는 2,500억 달러(약 340조원) 규모로 평가된다. 이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정부의 '중국제조 2025' 전략을 통해 바이오가 핵심 산업으로 지정되고,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임상 인프라가 빠르게 확충되며 관련 산업 성장세가 가팔라진 것이다. 14억 인구의 환자 풀 역시 희귀질환이나 특정 암종 임상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제공하고 있다.
질적 성장세도 뚜렷하다. 작년 발표된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바이오 분야 핵심 기술 7개 가운데 합성생물학, 유전체 분석, 바이오 제조, 항생제·바이러스 등 4개 기술에서 미국을 제치고 선두를 달리고 있다. 기술 경쟁력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는 라이선스 아웃(기술 수출) 건수와 금액도 증가했다. 올해 첫 3개월간 바이오테크 라이선스 계약 가치 중 32%가 중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올해 상반기 기준 중국의 라이선스 아웃 총액은 660억 달러(약 93조8,000억원)에 육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