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Grab–GoTo 합병, 규모의 이익과 시장 지배력의 경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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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의 경제가 독점의 경제로 변하지 않게 하는 제도적 균형 데이터 이동권과 공정 접근권이 만들어내는 경쟁의 문 효율은 기술에서 오지만, 공정은 설계에서 완성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빅테크 기업 그랩(Grab)과 고토(GoTo) 합병(이하 Grab–GoTo 합병)의 핵심은 ‘규모의 확대’가 아니라 ‘지배력의 고착’이다. 두 회사가 차량 호출과 음식·물품 배달 서비스를 통합할 경우, 동남아 라이드 헤일링(ride-hailing, 앱 기반 차량 호출) 거래액의 약 85%를 점유하게 된다.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등 핵심 시장에서는 90% 안팎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플랫폼 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다.
2018년 싱가포르 경쟁·소비자위원회(CCCS, Competition and Consumer Commission of Singapore)는 Grab의 우버(Uber) 인수를 승인하되, 경쟁 약화를 이유로 과징금과 요금 상한제, 데이터 공유 의무를 부과했다. 이 결정은 플랫폼 지배력이 이용자와 운전기사의 선택권을 얼마나 쉽게 제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현재 동남아 디지털경제는 2024년 기준 미화 2,630억 달러(약 356조 원)에 이르며, 전년 대비 15% 이상 성장했다.
그러나 이 성장보다 더 빠른 것은 ‘시장 잠금(lock-in)’이다. 알고리즘과 결제망, 운전기사·식당 네트워크가 한 플랫폼에 묶이면서 경쟁은 점차 약화하고 있다. 한 번 형성된 지배력은 기술 변화보다 오래간다. 결국 논점은 ‘규모’가 아니라 ‘지배 구조’다. 규모의 경제가 시장 효율을 높일 수는 있지만, 독점의 경제로 변질되면 이익은 일부 기업에 집중된다. Grab–GoTo 합병은 이 균형이 유지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첫 번째 시험대가 되고 있다. 평가는 효율이 아니라 공정 설계의 유무에서 시작된다.
지배력 임계치가 드러내는 경고
Grab–GoTo 합병은 산업정책과 경쟁정책이 충돌하는 대표적 사례다. 각국 정부는 한편으로는 ‘디지털 챔피언’을 육성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의 개방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 산업 성장과 경쟁 질서의 균형이 무너지면, 혁신은 독점으로 변하고 시장은 폐쇄된다.
인도네시아 경쟁위원회(KPPU, Komisi Pengawas Persaingan Usaha)는 단독 50%, 두세 개 기업 합산 75% 이상일 때 시장지배력을 추정한다. Grab–GoTo의 예상 점유율은 이 기준을 크게 웃돈다. 이 지점부터는 규제기관이 아니라 기업이 입증의 책임을 진다. 합병이 단순한 주주가치 확대 수단이 아니라, 소비자와 기사, 중소 상공인에게 실질적 이익을 돌려주는 구조인지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이 판단 기준은 이미 싱가포르 사례에서 입증됐다. CCCS는 Grab의 우버 인수로 경쟁이 약화됐다고 보고, 과징금 부과와 데이터 공유, 요금 상한제를 동시에 명령했다.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소비자 피해와 진입 장벽의 실제 영향을 근거로 결정한 것이다. 이 흐름은 동남아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도 플랫폼 구조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시장점유율보다 중요한 것은 ‘지배력이 형성되는 방식’이다. 결국 Grab–GoTo 합병은 한 기업의 전략을 넘어 아세안(ASEAN) 디지털경제의 질서를 새롭게 그리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

주: 합병 후 시장점유율은 인도네시아의 지배적 지위 기준(75%)을 초과하며, 시정 조치가 필수적이다.
규모의 이익을 사회적 가치로 바꾸는 규칙
Grab–GoTo 합병이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있다. 기사 네트워크를 통합하면 배차 속도가 빨라지고 공차율이 줄어든다. 고객센터와 서버, 마케팅 인프라를 합치면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그러나 절감된 비용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가 핵심이다. 비용 절감이 요금 인하나 서비스 품질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사회 전체의 효율로 평가받을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의 이익으로만 귀속되면 불균형은 심화된다.
2025년 5월 인도네시아 기사단체가 저임금 구조에 항의해 시위를 벌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기사들은 합병 이후 인센티브와 보너스가 줄어들고, 운임 체계가 일방적으로 결정될 것을 우려했다. 두 개의 플랫폼이 존재할 때는 기사들이 조건을 비교하며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단일 체제가 되면 협상력은 사라지고, 소득은 하락 압력을 받는다. 시장 집중이 높아질수록 가격 결정권은 기사에게서 플랫폼으로 옮겨간다. 노동의 유연성이 줄면 서비스 품질과 공급 안정성도 함께 약화된다.
결국 효율과 분배는 대립이 아니다. 효율이 만든 이익을 어떻게 나누느냐가 지속가능성을 결정한다. 데이터 이동권과 기사 소득 기준은 그 균형을 잡는 장치다. 규모의 이익이 사회적 가치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성장의 논리와 공정의 원칙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이익의 흐름이 바뀔 때 지속가능성이 생긴다.
기술의 속도와 플랫폼의 관성
일부에서는 기술 발전이 빠르기 때문에 “지배는 일시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검색 시장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이용자의 습관과 기본 설정, 유통망이 결합하면 90%의 점유율은 좀처럼 깨지지 않는다. 구글이 여전히 전 세계 검색 시장의 90% 안팎을 차지하는 이유는 기술 우위보다 ‘습관의 락인(lock-in)’ 때문이다.
차량 호출과 배달 플랫폼은 이보다 훨씬 복잡한 병목 구조를 가진다. 결제 시스템과 보안 장치, 기사 인증 절차, 가맹점 연동 체계가 얽혀 있다. 여기에 공항과 쇼핑몰의 전용 승하차 구역 같은 물리적 접근권이 더해지면 신규 사업자는 진입조차 어렵다. 경쟁이 사라지면 효율도 멈춘다. 기술은 발전하지만, 시장의 문은 닫혀 있는 셈이다.
‘동적 경쟁(dynamic competition)’은 규칙이 있을 때만 작동한다. 데이터 이동권이 보장되고, 공정 접근권이 열려야 한다. 주요 거점의 비배타적 배정이 제도적으로 뒷받침될 때야 새로운 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다. 이 환경이 없다면 기술 변화는 지배 구조를 바꾸지 못하고, 기존 플랫폼의 영향력만 강화된다. 결국 역동성은 자연발생적 현상이 아니다. 정책과 설계의 산물이다. 규제는 경쟁을 막는 장벽이 아니라, 진입의 문을 여는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 기술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속도를 어디로 향하게 할지 결정하는 제도적 나침반이다. 락인을 푸는 방식은 기술이 아니라 규칙이다.

주: AI 도입이 급증했지만, 2025년 기준 구글의 전 세계 검색 점유율은 여전히 약 9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조건부 승인으로 설계하는 공정한 성장
정책의 선택은 더 이상 이분법적일 수 없다. 전면 허용이나 전면 불허가 아니라, 작동 가능한 안전장치를 전제로 한 ‘조건부 승인’이 현실적 해법이다. 규모의 이익을 인정하되, 그 힘이 시장을 잠식하지 않도록 균형을 세워야 한다. 데이터 이동권은 그 출발점이다. 이용자와 운전기사, 가맹점이 표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통해 이용 기록과 평점을 자유롭게 이전할 수 있어야 한다. 공항과 대형 쇼핑몰 등 주요 거점도 모든 플랫폼이 동등하게 접근해야 한다. 특정 기업에만 주어지는 물리적 접근권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
요금 체계 역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수수료와 요금 인상에는 일정 기간 상한을 두고, 경쟁 플랫폼이 일정 수준(예: 30%)의 점유율을 확보하면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기사 소득도 보호돼야 한다. 최저 시급 기준을 마련하고, 계정 정지나 불이익 부과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가격 산정과 배차, 인센티브 운영은 독립 기관이 검증해야 한다. 또한 전자지갑·보험 등 금융상품을 배달·호출 서비스와 묶어 경쟁자를 배제하는 결합 판매는 제한해야 한다. 이 장치들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도시별 서비스나 특정 부문(예: 식료품 배달)의 분리·매각 같은 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
산업정책과 경쟁정책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호 보완 속에서 성장과 공정의 균형을 만들어야 한다. 대형 플랫폼의 성장을 지원하더라도 시장의 숨통을 열어두는 것이 장기적 경쟁력의 조건이다. Grab–GoTo 합병이 남긴 85~90%라는 수치는 결론이 아니라 경고다. 제도의 설계가 실패하면 혁신은 독점으로 변하고, 성공하면 효율은 공정으로 이어진다. 규칙이 없으면 속도는 강자의 무기가 된다. 밤늦은 도로를 달리는 기사와 한 끼 배달에 의지하는 소상공인의 삶이 이 논쟁의 최종 심사대다. 냉정한 수치 뒤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규제의 역할은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로잡는 일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Grab GoTo Merger and Competition: Regulate Scale, Not Just Siz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