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페트로 위안 회랑, 제재가 바꾼 에너지 금융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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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산 원유 이동, 에너지 결제 구조 동쪽으로 재편 제재 이후 위안·디르함 결제 확산되며 지역 금융 영향력 확대 달러 우위 속에서도 다극화된 결제 질서, 새로운 균형 형성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4년 중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은 하루 평균 217만 배럴(약 3억4,000만 리터)로 집계됐다. 연간 1억850만 톤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같은 시기 인도도 러시아 의존도를 36~40%까지 높이며 수입 지형을 재편했다. 유럽의 제재로 막힌 러시아산 원유가 중국과 인도로 향하면서 세계 에너지 흐름의 축을 바꾸고 있는 양상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무역 이동을 넘어 결제 질서에 변화를 불러왔다. 거래 통화는 달러에서 위안(중국 통화)과 디르함(아랍에미리트 통화)으로 전환됐고, 러시아–중국–인도를 잇는 ‘페트로 위안 회랑’이 새로 형성됐다. 제재가 설계한 이 구조는 달러의 지위를 유지한 채 에너지 금융의 틀을 조용히 다시 짜고 있다.
러시아는 수익의 통로를 유지했고, 중국은 결제 실험을 확대해 금융 완충지대를 넓혔다. 인도는 저가 원유를 들여오며 비용을 절감하고 자율성을 지켰다. 이렇듯 세 나라의 이해가 맞물리며 에너지 거래의 중심축은 점점 더 복합적인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결제 다변화는 시장의 계산이 주도하는 흐름이다. 거래가 투명하고 비용이 합리적일수록 자본은 효율이 높은 쪽으로 향한다.
원유 이동이 바꾼 결제 질서
러시아산 원유가 유럽 시장에서 밀려난 뒤 아시아는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했다. 제재로 가격이 급락하자 중국과 인도는 장기 계약을 확대하며 공급선을 고정했다. 인도는 2024년 중반 하루 평균 190만 배럴(약 3억 리터)을 수입했고, 올해 10월에도 150만 배럴(약 2억4,000만 리터)을 유지했다. 이 시기 러시아산은 인도 전체 수입의 3분의 1을 차지하며 시장 구도를 재편했다.
거래량이 늘면서 결제 방식도 변했다. 인도 정유사들은 2023년 초부터 러시아산 대금을 디르함으로 결제했고, 이 관행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외환시장에서 위안 결제 비중도 42%로 확대돼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단순한 통화 분산이 아닌 제재 환경에 맞춰 구축된 대응 체계였다. 결제의 언어가 바뀌자, 금융 습관도 새로 형성됐고, 그 습관이 제도로 고정된 것이다.
가스 거래도 같은 흐름을 보였다. ‘시베리아의 힘’ 파이프라인은 2023년 227억㎥, 2024년 311억㎥를 중국으로 수송하며 설계용량 380억㎥에 근접했다. 물리적 공급망이 동쪽으로 확장되자 계약 통화와 결제 축도 상하이와 모스크바로 이동했다. 에너지의 흐름이 바뀌면 자본의 경로도 달라진다. 러시아산 원유의 이동이 만들어낸 새로운 결제 회랑이 에너지 금융 질서를 다시 짜고 있다.

주: 2024년 러시아의 중국 수출량은 일 2.17백만 배럴(약 3억4,000만 리터), 인도는 1.64백만 배럴(약 2억6,000만 리터)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석유 결제의 위안화·디르함 정착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역 집중과 체계 지배의 공존
러시아의 교역액은 2024년에 2.9% 증가했지만, 제재와 금융기관의 위험 관리 강화로 거래 비용이 상승했다. 러시아 기업이 위안 결제를 확대해도 대형 계약의 보험과 보증을 처리할 금융망은 여전히 달러 중심이다.
그럼에도 러시아–중국–인도 회랑의 결제 통화 구성은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위안은 국지적으로 결제 비중을 높이며 보조 통화로 자리 잡았고, 디르함은 아시아 정유사들의 핵심 결제 수단으로 정착했다. 이런 변화가 누적되며 금융 관행의 방향도 조금씩 바꾸고 있다. 반면 세계 무역의 80% 이상은 여전히 달러로 청산되고, 국제 파생상품의 기준 가격도 달러를 따른다.
이 흐름은 체계가 분화의 국면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다. 달러의 구조적 우위는 유지되지만, 주변 회랑에서는 새로운 결제 관행이 뿌리내리고 있다. 작은 변화가 쌓이며 지역 단위의 가격 결정과 협상 구도가 서서히 이동한다.

주: 위안화는 글로벌 결제 비중이 2.9%, 무역금융에서 5.8% 수준에 머물지만, 모스크바 외환시장에서의 거래 비중은 42%로 급등하며 지역 결제통화로서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도의 실용주의와 미국의 압박
인도는 정치보다 경제를 앞세웠다. 러시아산 원유는 중동산 대비 배럴당 10~15달러(약 13,000원~20,000원) 낮은 가격에 거래돼 정유사들의 수익을 지켰다. 2023~2024년 석유수출국기구(OPEC)산 점유율은 사상 최저로 떨어졌고, 에너지 비용 안정은 자국 내 인플레이션을 완화했다. 이에 미국이 가격상한제와 제재, 외교 압박을 시도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인도는 디르함 결제를 유지하고 러시아산 원유를 재가공해 수출하며 제재의 틈새를 활용했다.
이 전략은 다원적 공급망 덕분에 지속됐다. 인도는 러시아, 중동, 베네수엘라 등 다양한 원유원을 병행했고, 국방 협력과 부품 조달망에서도 러시아와 긴밀히 연결돼 있었다. 제재가 강화될수록 인도는 거래 구조를 세분화해 위험을 분산시켰다. 이러한 조정은 외교적 대응을 넘어 제재 환경에 맞춘 경제 운영 방식으로 발전했다.
결국 인도는 낮은 원가를 유지하며 에너지 안보와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디르함 결제는 그 균형을 뒷받침하는 금융 장치로 기능했다. 인도는 명확한 이익의 원칙에 따라 움직였고, 그 선택이 아시아 에너지 시장의 가격 구조를 새롭게 짜고 있다.
실시간 대응과 장기 설계의 균형
통상 제재가 길어질수록 새로운 거래 방식은 제도로 굳어진다. 러시아산 원유의 흐름은 단순한 수입 통계를 넘어, 제재가 금융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표로 작용한다. 흐름이 고착되면 제도의 변화도 뒤따른다. 이 변화는 단기 대응과 장기 설계가 함께 작동할 때만 완화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가격 할인 폭을 줄이면서 시장 불안을 통제하고, 해운·보험·거래망 등 결제 경로를 정밀하게 관리해야 한다.
인도는 유가 범위에 따라 자동 조정되는 예외 규칙을 마련해 예측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런 조치는 공급 차질을 줄이고 거래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장기적으로는 달러 금융의 신뢰와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본시장의 유동성을 확충하고, 분쟁 발생 시 법적 안정성을 강화하며, 중소 정유사가 이용할 수 있는 무역금융의 폭을 넓혀야 한다.
달러가 다시 효율적 결제 수단으로 기능할 때, 결제 다변화의 확산은 자연히 속도를 늦춘다. 정책의 역할은 변화의 속도를 관리하는 데 있다. 구조적 전환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방향을 조정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정밀한 계산이 지속 가능한 균형을 만든다는 뜻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Petroyuan Energy Nexus Is a Sanctions Byproduct, Not a New Bretton Wood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