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달러 '부채의 늪'에 빠진 일대일로, 中 원조 외교 한계 봉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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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자본으로 만든 印尼 고속철도, 적자로 빚도 못 갚아 태국·말레이시아, 부채 협상 통해 中 자본 의존도 낮춰 저개발국 대상 '부채함정' 논란, 中 리더십 시험대에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한 일대일로(BRI) 프로젝트가 역대 최대 규모의 부채 상환 압박에 직면하면서, 중국의 글로벌 대전략이 전방위로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자본을 빌려 진행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의 건설 사업이 이자 상환조차 어려운 상황에 몰리며 중국의 미결제 부채가 1조 달러(약 1,450조원)를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국제 원조를 축소하는 상황에서 중국마저 차관 중심의 외교 기능이 흔들리면, 개발 자금의 순환과 저개발국 지원 체계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中 자본 동원해 인프라 개발한 동남아 국가들
11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는 중국의 지원을 받아 건설한 고속철도 우쉬(Whoosh)의 적자가 누적되자 중국과 부채 조정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2023년 10월 개통해 올해로 2년째를 맞은 우쉬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와 자바섬 서부 반동 간 145㎞ 거리를 연결하는 고속철도로, 두 도시 간 이동시간을 기존 3시간에서 45분으로 단축시켰다. 그러나 철도역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요금도 높은 탓에 수익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쉬의 일평균 승객 수는 1만6,400명으로, 당초 예상치인 5만 명~7만7,000명에 크게 못 미친다.
우쉬 건설사업에는 중국이 자금 대부분을 지원하고 중국 기업이 참여한 합작법인이 시공하는 일대일로의 전형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적용됐다. 특히 중국개발은행(CDB)은 건설비용의 75%를 융자했다. 지난 2015년 프로젝트 입찰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는 정부 보증을 조건으로 하는 일본의 0.1% 이자율 조건 대신 보증을 요구하지 않는 중국의 2% 이자율을 선택했다. 그러나 건설 과정에서 사업비가 86조 루피아(약 7조3,600억원)에서 113조 루피아(약 9조6,800억원)로 급증했고, 이에 따라 이자 부담도 커졌다. 현재 이자 지급액만 연간 2조 루피아(약 1,720억원)에 달한다.
중국과 손잡고 대규모 인프라 개발에 나섰다가 부채 위기에 몰린 나라는 인도네시아만이 아니다. 최근 태국과 말레이시아도 중국과의 부채 협상을 통해 중국 자본 의존도를 줄였다. 태국은 올해 2월 태국 방콕-라오스 농카이-중국 쿤밍 연결하는 고속철도 2단계 사업 승인에 앞서 중국 자본의 비중을 낮췄다. 말레이시아도 동부해안철도(ECRL) 프로젝트에서 중국 자본 비중을 줄이고, 적자에 대한 책임을 두 나라가 절반씩 지기로 합의했다. 당시 협상을 주도한 마하티르 빈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중국과 계약한 전임 정부 부패 문제를 거론하며 사업 승인 취소까지 고려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잠비아와 가나, 늘어나는 부채에 디폴트 선언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야심 차게 시작한 일대일로는 고속도로, 고속철도, 항구, 공항, 댐, 발전소 등 저개발국 곳곳에 새로운 인프라를 건설해 새로운 실크로드를 개척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현재 아시아를 비롯해 유럽, 아프리카의 140개국 이상이 참여하고 있다. 일대일로 사업 초기, 중국개발은행은 환경이나 인권 등에 대한 까다로운 조건 없이 저개발국에 거액을 빌려주는 우호적 투자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무분별한 차관은 여러 나라에서 국가부채 폭증으로 이어졌고, 10여 년이 지난 현재 '부채 함정'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개발도상국이 중국에 갚아야 할 미결제 부채는 최소 1조1,000억 달러(약 1,600조원)로 추산된다. 스리랑카 함반토타항과 케냐 철도 건설 사업은 막대한 차관과 임대 계약으로 부실화 논란에 휩싸였고, 잠비아와 가나는 2020년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했다.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 12개국도 부채 위기에 처했다. 특히 케냐의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철도(The Railway to Nowhere)’는 부채 함정의 상징으로 통한다. 중국의 대출금이 고갈되면서 우간다까지 이어질 예정이던 철도가 옥수수밭 한가운데서 끊겨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 내부 경제 상황도 악화 일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상반기 기준 중국의 총사회융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09%로, 6개월 새 6%포인트 상승했다"며 "2008년 이후 전 세계 부채 대비 GDP 비율 증가분의 과반이 중국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일대일로의 전략적 파트너십도 흔들리고 있다. 주요 파트너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국력이 급격히 소진된 상태다. 이에 대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하면, 미국의 전략적 초점이 중국으로 향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중국이 처한 외교·안보 상의 딜레마를 드러내기도 했다.
美 USAID 축소 이어 中 일대일로로 위기 맞아
전문가들은 일대일로의 동력이 약화될 경우, 그 여파가 단순히 중국의 대외 영향력 축소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개발처(USAID) 축소와 함께 대외 원조를 단계적으로 줄여온 상황에서, 중국마저 일대일로를 통해 수행해 온 인프라·차관 중심의 국제 원조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글로벌 금융 시스템 내 개발 자금 순환의 핵심 축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다. 나아가 국제사회의 권력 균형과 경제 네트워크에 균열이 생기면서 저개발국의 자금난이 가중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USAID의 해외 원조 중단 결정으로 동남아 지역의 보건, 지뢰 제거, 교육 등 다양한 개발 사업에 차질이 발생했다. 1961년 설립된 USAID는 미국의 양자 간 대외 원조를 담당하는 핵심 기관으로, 60개국 이상에 사무소를 두고 130여 개 개발도상국에 의료, 식량 등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대외 원조 산업과 관료주의가 미국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90일간의 원조 동결을 명령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USAID 프로그램의 80% 이상이 취소됐다.
태국 북서부 국경 인근의 매타오 클리닉이 대표적인 피해 사례다. 미얀마 난민들에게 무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매타오 클리닉은 미국 원조 중단으로 미숙아용 인큐베이터 등 의료 장비 구입과 의료진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에서는 HIV, 결핵 예방 사업에 대한 USAID 지원이 중단됐고, 필리핀에서는 기초 교육 지원에 차질이 예상된다. 베트남도 베트남 전쟁 당시 매설된 지뢰와 불발탄 제거 사업에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