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엡스타인 문건 공개 법안 거부권 행사 안 해", 공화당 이탈표 발생에 입장 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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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하원, 18일 엡스타인 문건 공개 법안 표결 내년 중간선거 앞두고 공화당 내부 기류 변화 공화당 의원 이탈에 하원서 통과 가능성 높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 정치권에서는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엡스타인 사망 이후 꾸준히 제기돼 온 연루설을 부인하며 문건 공개에도 반대 입장을 밝혀왔지만, 공화당 내부에서 이탈표가 발생하자 어쩔 수 없이 선회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돌연 문건 공개 찬성 입장 선회
17일(이하 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2026년 월드컵 태스크포스 회의 자리에서 "엡스타인과 우리는 관련이 없다"며 "엡스타인의 친구들은 모두 민주당 사람들이고, 이는 오롯이 민주당의 문제"라고 말했다. 엡스타인 파일 공개 법안이 올라오면 거부권을 쓰지 않고 서명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전적으로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원이 법안을 검토하게 하라"며 "모든 것을 공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는 전날부터 감지됐다. 그는 16일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엡스타인 파일을 공개하는 데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며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엡스타인이 살아있을 때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만약 무언가 있었다면 2024년 선거 전에 이미 민주당이 공개했을 것"이라며 "이제는 급진 좌파가 날조한 사기극에서 벗어날 때"라고 주장했다. 엡스타인 사태를 민주당의 함정으로 규정한 것이다.
엡스타인 문건 공개 법안은 2019년 수감 중 사망한 미성년자 성착취범 엡스타인과 관련해 미 법무부가 보유한 모든 수사 자료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신들은 오는 18일 진행되는 하원 표결에서 민주당 의원 214명 전원에 공화당 이탈표가 더해져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한다. CNN도 "이번 표결은 공화당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수 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승리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하원을 통과해도 상원까지 넘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엡스타인 이메일 공개로 논란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엡스타인 문건 공개 요구에 대해 '민주당의 사기극'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해 왔다. 집권 1기였던 2019년, 엡스타인이 사망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과 관련된 내용은 자신에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강조하며 이를 정치적 공세로 규정했다. 이후 집권 2기에서도 엡스타인 수사자료 공개 법안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반대 입장을 보여 왔다. 그는 공개가 되더라도 일부 기록은 신뢰할 수 없고, 정치적 논란만 커질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러는 동안 엡스타인 스캔들과 관련한 언론과의 갈등은 깊어졌다. 지난 7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2003년 엡스타인 50세 생일 선물로 여성의 나체 그림과 편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편지나 그림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즉각 부인하면서 WSJ와 모기업인 뉴스코퍼레이션, 루퍼트 머독 명예회장 등을 상대로 100억 달러(약 14조원) 규모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방문 동행 기자단 명단에서 WSJ 소속 기자를 제외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 16일 WSJ는 "연방 하원 감독위원회가 공개한 파일 가운데 엡스타인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이메일 2,3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이 등장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당선된 2016년 전후를 시작으로 언급된 빈도가 부쩍 늘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성범죄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진실 규명 여론 확산, 지지층도 흔들려
하지만 예전과 달리 공화당 내부 기류에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반대에도 문건 공개에 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갈라선 8선의 토마스 매시(켄터키) 하원의원, 마조리 테일러 그린(조지아) 하원의원 등 이른바 '4인방'은 엡스타인 문건 공개를 주도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CBS 방송 등 미 언론들은 공화당 내 이탈표 발생이 예상되자 수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입장을 바꾼 것이란 해석을 내놨다.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 이탈표가 발생한 배경에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운 현실이 자리한다. 공화당 소속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최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이번 주 표결에서 많은 찬성표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법안 상정 권한을 가진 존슨 의장은 당초 표결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법안을 본회의에 강제로 부의하기 위한 청원에 서명한 의원 수가 과반을 기록하면서 이를 막는 데 실패했다.
여론도 엡스타인 문건 공개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최근 실시한 CBS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9%가 법무부에 조사 기록에 대한 완전한 투명성을 요구했다. 미국 공영매체 PBS 등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7%가 피해자 이름이 삭제되는 조건 하에 엡스타인 문건의 모든 자료가 공개되길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문건 공개를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공화당 지지층의 45%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전통적인 지지층에서도 균열이 보이고 있다.
정치적 단일대오가 무너진 만큼, 트럼프 대통령에게 엡스타인 사건과 관련한 의혹은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숱한 스캔들과 논란에도 타격을 입지 않고 건재해 '테플론(이물질이 붙지 않는 특수소재) 정치인'으로 불렸다. 하지만 WSJ 보도 이후 3일간 엡스타인 스캔들은 이전과 달리 상당한 지속력과 뉴스 장악력을 보여주고 있다. 사태를 덮거나 회피하려는 백악관의 시도가 오히려 관심을 증폭시키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