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美·EU산 우유 무관세 수입 목전, 국내 유업계·낙농업계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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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우유 시장, 내년부터 美·EU에 완전 개방 고급화·사업 다각화 앞세워 활로 찾는 유업계 "가뜩이나 어려운데" 낙농업계 침체 가속화 전망

국내 유업계에 일제히 비상이 걸렸다. 미국·유럽연합(EU)산 우유의 무관세 수입이 코앞까지 다가온 가운데, 원가 격차로 인한 가격 경쟁력 약화가 기정사실화한 탓이다. 이에 주요 유업체들은 고급화, 사업 확장 등 활로 모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기존에도 수익성 문제에 시달리던 낙농업계는 시장 판도 변화에 따른 직격탄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업계 '지각변동' 코앞
21일 유업계에 따르면, 국내 우유 시장은 내년부터 미국·EU에 완전 개방된다. 미국산 우유에 적용하는 관세는 2012년 발효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발효 첫해 33.6%에서 2024년 4.8%, 2025년 2.4%로 꾸준히 낮아져 왔다. 내년엔 0%로 완전히 사라진다. 한·EU FTA 결과도 마찬가지다. 유럽산 우유에 부과되는 관세율은 2011년 33.8%에서 2024년 4.5%, 2025년 2.3%로 감축됐고, 내년부터는 무관세 수입이 본격화한다.
이에 따라 국내산 우유의 시장 입지는 한층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원유 산업은 기본적으로 생산 단가가 높다. 미국 농무부(USDA) 글로벌농업정보네트워크(GAIN)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원유 생산 단가는 음료용 약 1,084원/L, 가공용 약 887원/L에 달했다. 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탓에 가격 경쟁력이 약화한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의하면 사료비는 원유 생산비에서 59.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해당 기간 미국과 유럽 등 낙농 선진국의 생산 단가는 400~500원/L 수준에 그쳤다.
원유 생산 단가의 차이는 고스란히 실제 판매가 격차로 이어졌다. 멸균유 수입량의 90%를 차지하는 폴란드의 멸균유 1리터 제품의 가격은 국내산 우유 가격의 절반 수준인 리터당 1,700원에 불과하다. 내년 미국과 EU산 관세가 철폐될 경우 가격 차이는 한층 확대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이미 우유 수요 감소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는 국내 유업계에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주요 유업체들의 생존 전략
가격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한 국내 유업체들은 제품 고급화와 시장 확장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프리미엄 제품과 기능성 음료, 외식·식물성 라인업 등으로 전략을 세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서울우유는 2030년까지 모든 우유 제품을 A2 원유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위장 부담이 적다고 알려진 A2 베타카제인 원유를 앞세워 차별화에 나선 것이다. 이에 더해 서울우유는 저지 우유 아이스크림 등 프리미엄 디저트 제품군을 확대하고, 편의점과 협업해 출시한 크림롤·크림도넛 등으로 간편식·디저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남양유업은 ‘테이크핏’ 단백질 음료 시리즈, 무가당 ‘초코에몽 미니’ 등 기능성·저당 중심의 라인업으로 제품 라인을 재정비하는 중이다. 매일유업은 단백질 브랜드 ‘셀렉스’, 귀리 음료 ‘어메이징 오트’, 식물성 음료 ‘아몬드 브리즈’ 등 비(非)우유 기반 제품을 전면에 내세웠다. 아울러 커피 프랜차이즈 폴바셋을 운영하는 엠즈씨드로 각 외식 계열사를 통합 흡수해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외식 사업 규모 역시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2020년 106개에 그쳤던 폴바셋 매장 수는 지난해 146개까지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일부 폴바셋 지점이 지난해 매일유업에 인수된 베이커리 전문 회사 밀도와 협업해 빵을 판매하는 복합 매장으로 리뉴얼되기도 했다. 이에 힘입어 폴바셋의 매출액은 2021년 996억원에서 지난해 1,599억원으로 3년 만에 60% 증가했다. 이에 더해 엠즈씨드는 새로운 외식 브랜드로 돼지고기 샤브샤브 전문점 ‘샤브식당 상하’를 론칭하고 올 3월 청담동에 1호점을 선보였다. 중식당 ‘크리스탈 제이드’는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 IFC몰에 매장을 추가로 오픈하며 총 14개의 매장을, 이탈리안 레스토랑 ‘더키친 일뽀르노'는 총 7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낙농업계에 낀 '먹구름'
사업 다각화를 통해 그나마의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유업계와 달리, 낙농가는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 국내 낙농업계는 2023년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 이후 이미 침체의 늪에 빠진 상태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누고, 가공유의 가격을 더 낮게 책정하는 제도다. 쿼터의 88.5%를 음용유 구간으로 정해 1,246원(농가 평균)을 주고, 88.5∼93.5%는 가공유 구간(단가 882원)으로, 그 이상 구간은 초과유 구간(단가 100원)으로 설정하는 식이다. 사실상 농가 생산량은 물론 수익까지 감소하는 구조로 제도가 개편된 셈이다.
이에 원가를 절감하고 경영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규모화'를 시도하는 낙농가들이 늘고 있다. 기준원유량, 즉 쿼터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실제 지난해 리터당 62만원 선이던 서울우유노동조합의 쿼터 가격은 올해 리터당 75만원까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낙농진흥회의 쿼터 가격도 지난해 10월 리터당 35만8,000원에서 지난달 리터당 51만7,000원까지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규모화를 시도할 여유를 갖추지 못한 소규모 낙농가들은 속속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사육 마릿수 50마리 미만 농가는 지난 9월 기준 2,208개로 2021년(2,605농가)에 비해 15.2% 감소했다.
유업체가 집유량 수령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점도 낙농업계에 있어 뼈아픈 악재다. 올해 남양유업은 거래조합의 계약량을 전년 대비 17% 줄였고, 매일유업은 내년도 계약량을 올해보다 30% 줄이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목장 규모 및 생산비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에 생산량만이 감소하며 수익성 악화 흐름이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내년 시장이 개방되며 우유 자급률이 추가 하락할 경우, 이 같은 업계 위기는 한층 가중될 가능성이 크다. 2010년까지만 해도 65.4%에 달했던 한국의 우유 자급률은 2024년 기준 49.9%까지 미끄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