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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뉴노멀 되나, 규제·펀더멘털 약화가 만든 ‘원화 디스카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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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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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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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해외투자 사상 최대치 기록
韓 펀더멘털 약화로 자본 지속 유출
투자 매력 돌아와야 흐름 재편

외환당국의 잇단 개입에도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하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투자처 고갈과 규제 누적이 원화 약세를 고착시키고, 이에 따른 자산 회피 심리가 해외투자를 더 키우는 악순환이 형성된 모양새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국의 생산성과 자본 수익률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저성장 국면에서 해외투자가 급증했던 일본의 흐름을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국내 자산의 투자 매력과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환율 안정을 위한 핵심 과제라는 지적이다.

해외투자 확대가 초래한 원화 약세

2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오후 2시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4.1원 오른 1472.10원에 거래 중이다. 장중 최고가는 1,473.9원으로, 미·중 갈등이 격화됐던 올해 4월 초 이후 최고 수준이다. 환율은 지난달 초 1,400원대에 진입한 이후 가파르게 올라 한 달 반 만에 1,500원을 위협하고 있다. 환율 상승에는 인공지능(AI) 거품론에 따른 외국인 자금 이탈과 12월 FOMC(공개시장운영위원회)에서의 금리 인하 지연 전망이 주로 작용했다. 일본 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 추진에 따른 엔화 약세도 주요 요인이다. 엔·달러 환율은 157엔대로 올라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고환율이 지속되고 있는 데는 달러 강세보다는 원화 약세 영향이 더 크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원화의 실질실효환율(REER)은 90.14로, 기준치(100)를 크게 하회하고 있다. 이는 주요 교역국 통화 대비 원화의 구매력이 낮아졌다는 뜻이다. 여기엔 해외 투자 확대라는 구조적 원인이 자리한다. 경상수지 흑자 등 달러 유입과 외국인의 국내 증시 투자에도 불구하고, 해외 증시 투자를 위한 달러 환전 수요가 더 크다는 점이 원·달러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개인투자자가 해외 주식 등을 매수할 목적으로 미래에셋, 한국투자, NH, KB, 삼성, 키움, 신한, 토스, 카카오페이 등 9개 주요 증권사 창구에서 환전한 금액은 올해 들어 지난달 15일까지 총 157조6,123억원에 달했다. 작년 환전 금액(136조원)을 넘어선 역대 최대 규모다. 2023년(97조원)과 비교하면 61% 증가했다. 이는 올해 들어 8월까지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채권 투자금 증가분(61조4,270억원)과 국내 외환상품시장의 9월 하루 평균 거래액(125조7,255억원)보다 많다. 한국예탁결제원에 의하면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 잔액은 333조6,557억원으로, 작년 말 대비 43% 늘었다. 이 가운데 81%가 미국 주식·채권 투자액이다.

올해 3분기로 범위를 좁혀보면 해외 투자 흐름은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은행의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지난 3분기(9월 말 기준) 국내 거주자의 대외금융자산 잔액은 2조7,976억 달러(약 4,100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항목별로 보면, 해외 증권투자(주식+채권)가 890억 달러(약 131조원), 직접투자가 87억 달러(약 13조원), 준비자산(외환보유액)이 118억 달러(약 17조원) 각각 늘어났다. 2분기와 비교하면, 증권투자와 직접투자는 증가폭이 줄었고 준비자산은 큰 폭으로 늘었다.

반면 외국인의 국내 투자 규모를 의미하는 대외금융부채는 1조7,414억 달러(약 2,570조원)로, 전 분기 말보다 900억 달러 늘어나는 데 그쳤다. 국내 거주자의 대외 투자가 외국인의 국내 투자보다 더 많이 증가하면서 3분기 말 순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부채)은 1조562억원으로 2분기 말보다 258억 달러(약 38조원) 늘었다. 3분기 만의 증가 전환이다. 이 같은 해외 증권투자 증가는 환율 상승의 주요인이다. 수출 증가로 경상수지가 흑자 기조를 유지해도 개인의 해외 투자가 확대되면 그만큼 달러 수요가 늘어 외환시장 수급에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투자처 고갈에 규제 누적까지, 자본 유출 가속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이 가속화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먼저 부동산 등 전통적 투자 수단 전반이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사실상 투자가 막히면서다. 정부는 지난 6.27 대책, 9.7 대책, 10.15 대책 등 세 차례에 걸쳐 수도권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한 부동산 규제에 나섰다.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강화됐고,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강화, 대출 한도 적용 등 전방위적 압박이 가해졌다.

이로 인해 주택 구입이나 갭투자 등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이 어려워지자,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한 신용대출을 받아 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흐름이 가팔라졌다. 금융투자협회 통계를 보면,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지난 4일 기준 25조5,118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21년 9월에 찍은 최고 기록인 25조6,500억원에 근접한 수치다. 신용거래융자 자금 대부분은 해외 기술주를 중심으로 흘러 들어갔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학개미는 해외주식을 68억1,300만 달러(약 10조원)어치 순매수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이달 들어 지난 10일까진 21억 달러(약 3조원)를 순매수했다. 엔비디아, 메타, 아이렌 등 AI 관련 종목을 수억 달러 규모로 사들였다.

기업 활동 전반에서의 규제 강화 기조도 자금 이탈을 가속하고 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노란봉투법은 쟁의행위 범위 확대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이 골자로, 경제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이 기업 경영활동 위축은 물론 국내 사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을 지적한다. 특히 노란봉투법 시행 시 기업은 인건비 상승을 피할 수 없다. 원청이 하청 업체 근로 조건에 책임을 지게 되면 기업은 전반적으로 더 많은 인건비를 내야 할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커진다.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은 결국 기업 이윤을 줄이고, 이는 경영 안정성과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란봉투법 시행 시 기업당 평균 인건비가 최소 8.7%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증시 수급 측면에서도 부정적 재료로 평가된다. 통상 글로벌 기업이 투자처를 선택할 때 비중 있게 고려하는 점 중 하나가 해당 기업의 ‘노사관계 안정성’이다. 그런 만큼 노란봉투법으로 노사 갈등 우려가 커지면 외국인 직접 투자 유입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와 주한유럽상공회의소(EUCCK)도 원청의 교섭 의무 확대와 파업 리스크 증가가 경영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외국인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꼽았다. 특히 반도체 같은 첨단 IT 산업 투자 유치에서 타격을 입으면, 미래 한국 경제 성장 측면에서 결정적인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비등하다.

구조 개혁 없인 정책 효과 불투명

이런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한국 자금이 해외로 나가는 흐름이 뉴노멀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의 매도세가 커진 반면,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이는 국내에서의 달러 환전 수요를 지속시켜 원화 약세를 유발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외환 시장에서는 1,500원대 환율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국내 투자 유치를 이끌기 위해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하고 있지만, 정책 실효성에 대한 회의론이 뒤따르는 상황이다. 기존 정부 정책펀드들과 투자처가 겹칠 수 있고, 투자처가 겹치지 않더라도 실제 성과를 낼 만한 투자처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특히 AI 분야에 대한 수익성 우려가 크다.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한 연구원은 “국민성장펀드의 투자 예정규모를 보면 국내에 AI 이름이 붙은 기업들에는 모두 투자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국내에서 AI와 관련해 실질적으로 돈을 버는 기업은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밖에 없는데 수익률을 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실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발간한 ‘한국 AI 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AI 산업 총매출은 6조3,000억원에 불과했다. 전년 대비 12.5% 늘어났지만 매년 성장속도가 느려지고 있다. 2023년 매출성장률은 21.5%, 2022년은 53.6%다. 이에 더해 과거 정책펀드의 부진도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산업은행에 의하면 혁신성장뉴딜펀드는 당초 전체 투자액 대비 회수율이 9.31%에 그쳤다. 해당 펀드는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펀드 종합계획 발표 후 조성된 것으로, 이후 2022년 윤석열 정부 들어 이름이 혁신성장펀드로 바뀌며 정부 출자 예산 규모가 절반으로 축소됐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정책 효과가 꺼진 뒤 찾아올 반작용이다. 현시점 코스피 지수가 4,000을 오르내리는 흐름은 기업 실적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가 아닌 정부가 던지는 신호와 기대감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외 변수 하나만으로도 언제든 급락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불안정한 구조다. 전문가들이 성장 산업의 부재와 누적된 규제 부담 속에서 단기 정책만으로 시장 체력을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핵심 성장 동력 없이 부양책만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투자자 신뢰가 회복될 수 없으며, 이는 원화 가치의 하방 압력을 더욱 고착시키게 된다는 지적이다. 결국 현재의 주가 반등을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인위적 부양책에 기대는 수준을 넘어 외환시장 안정과 재정 건전성 회복,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구조적 과제 해결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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