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년 만의 나스닥 이전 선언한 월마트, 기술 전환이 만든 전략적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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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리테일의 재평가’ 국면
AI·자동화·IoT 투자 확대 흐름
유통 업계 생존 조건 옴니채널

미국 최대 유통 체인 월마트가 증시 상장 53년 만에 나스닥 이전 계획을 밝히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올해 3분기 기대 이상의 실적 발표와 함께 공개된 이번 결정에 시장에선 투자 지형 변화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전개됐고, 월마트의 기술 중심 시장 진입이 향후 어떤 흐름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관심도 뜨거워지는 양상이다. 이러한 기류 속에서 월마트의 행보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유통 산업의 변화를 이끄는 주요 변수로 지목되는 모양새다.
유통 공룡에서 기술 기업으로
20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월마트는 이날 실적 발표 자리에서 “내달 9일부터 나스닥 시장에서 거래를 시작한다”고 알렸다. 이번 이전은 1972년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 이후 53년 만의 이동으로, 시가총액 8,520억 달러(약 1,250조원)라는 규모를 감안할 때 상장 이전 사례 가운데 최대급으로 평가된다. 시장조사업체 LSEG는 월마트가 NYSE 기준 네 번째로 큰 기업이라는 점을 다시 언급하며 “이번 결정은 단순한 거래소 변경을 넘어 기술 중심 시장으로 상징되는 나스닥이 월마트라는 초대형 리테일 기업을 품게 되는 변곡점”이라고 분석했다.
월마트는 이날 발표한 3분기 실적에서 당기순이익이 61억 달러(약 8조9,7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34%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 연간 매출 증가율 전망도 기존 3.75∼4.75%에서 4.8∼5.1%로 높여 잡았다. 존 데이비드 레이니 월마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CNBC 인터뷰에서 “모든 소득 계층에서 시장 점유율이 확대됐지만, 고소득층에서의 증가 폭이 특히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소비자들이 저렴한 상품을 찾으며 신규 고객층으로 유입된 영향이 실적에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시장 전반에 퍼진 관세 부담과 고용시장 둔화 우려 속 가격 민감도 변화가 실적 흐름에 반영된 셈이다.
이 같은 실적 상승은 나스닥 이전과 겹쳐 월마트가 투자자 기반을 재편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월마트 역시 “자동화와 인공지능(AI)을 통합한 옴니채널 소매 전략을 장기 방향성과 일치시키고자 한다”며 상장 이전 결정의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주요 지수 편입 가능성도 거론되는 분위기다. 아넥스 웰스 매니지먼트의 브라이언 제이콥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월마트의 나스닥100 편입 가능성은 매우 인상적”이라고 평가하면서 “기술주에 투자하는 이들이 필수 소비재 기업을 함께 보유하게 되는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고관리·물류·고객경험 혁신
월마트의 기술 기업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월마트는 공급망, 매장 운영, 고객 서비스 전 영역에 걸쳐 AI와 자동화, 사물 인터넷(IoT) 기술을 단계적으로 확장해 왔고, 이렇게 축적된 기술 역량은 결국 나스닥 이전이라는 전략적 결정의 기반이 됐다. 일례로 2017년 물류 자동화 로봇 기업 ‘심보틱’과 협력한 공급망 자동화는 물류센터 처리 역량을 2배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로봇 기반 분류·피킹·패킹이 제품 손상률을 낮추는 효과까지 만들었다. 이는 기존 프로세스에서 길게는 수개월까지 소요되던 작업 시간을 단축하며 기업 체질 변화의 출발점이 됐다.
매장 운영 전반에도 AI가 적용됐다. 자체 개발한 AI ‘디지털 트윈’은 설비팀이 잠재 문제를 사전에 예측하도록 돕고, 긴급 냉장 설비 알림을 30% 줄였으며, 이를 통해 유지보수 비용을 19% 절감하는 성과를 도출했다. 또 2020년 도입된 대화형 AI는 특정 상품 위치, 근무 시간 문의 등 단순 질의 응답에서 시작해 현재는 영수증 없는 고객 반품을 절차화해 안내하는 수준으로 확장됐다. 과거 전 세계에서 하루 300만 건 이상 몰려들던 질의에 90만 명 가량의 직원이 투입되던 것에서 달라진 흐름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44개 언어를 지원하는 번역 도구까지 도입하면서 고객 소통 편의성을 높였다.
AI와 IoT의 결합은 기술 전환의 범위를 더욱 넓혔다. 월마트는 정통 테크 기업 와일리엇과 손잡고 미국 내 공급망 전역에 배터리 없는 IoT 센서를 배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 센서는 라디오파, 빛, 움직임, 열 등 주변 에너지를 이용해 작동하며 온도, 위치, 습도, 체류 시간 데이터를 AI 시스템과 연동해 재고 정확도, 콜드체인 준수, 공급망 효율성을 개선하도록 설계됐다. 월마트는 올해 말까지 이를 500개 매장에 우선 배치해 테스트하고, 2026년에는 4,600개 슈퍼센터·네이버후드 마켓·40개 이상 유통센터로 확대한다는 구체적 일정도 제시했다.
이 같은 기술 기업화는 올해 들어 AI 기반 ‘슈퍼 에이전트’ 전략으로 진화했다. 월마트의 슈퍼 에이전트 전략은 직원과 개발자, 고객, 공급업체를 각각 지원하는 네 종류의 에이전트로 구분된다. 여기서 다시 인사 문의 응답, 애플리케이션 개발·배포 자동화, 상품 리뷰 요약 및 추천, 광고 캠페인 설정과 주문 관리 등으로 기능 범위가 세분화되는 식이다. 월마트 미국 부사장 겸 최고기술관리자(CTO) 하리 바수데브는 “슈퍼 에이전트 시스템은 수년간의 기초 투자가 결집된 결과”라고 자평하며 “월마트가 더 빠르고 더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의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온·오프라인 통합 전략 필요성↑
이러한 월마트의 행보는 디지털 전환 시점을 놓쳐 고전 중인 국내 유통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의하면 2025년 상반기 국내 온라인 유통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8% 증가한 반면, 오프라인 유통은 0.1% 감소하는 정체 국면에 들어섰다. 모바일 쇼핑, 즉시 배송, 구독 서비스 확산이 소비 패턴을 빠르게 바꾸면서 모든 세대에서 온라인 구매 비중이 확대된 결과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 같은 변화가 앞당겨졌음에도 대부분 기업은 오프라인 매장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데 소극적이었고, 이는 시장 점유율 변화로 직결됐다.
신세계 이마트와 롯데쇼핑은 뒤늦게나마 온오프라인 융합 전략을 강화하고 나섰다. 이마트는 SSG닷컴과 연계해 매장 내 온라인 주문 처리를 위한 피킹&패킹(PP) 센터를 120여 개 확보했으며, 하루 최대 3,000건 이상 주문 처리가 가능한 대형 PP센터를 2025년까지 70개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롯데쇼핑은 오프라인 매장 11곳을 리뉴얼하고, 두 시간 내 ‘바로 배송’ 서비스를 전사적으로 확대하며 오프라인 점포를 배송 거점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이는 오프라인 매장은 배송 거점과 체험 공간으로, 온라인 채널은 주문·결제·상품 탐색의 핵심 축으로 활용되는 옴니채널 방식으로 국내 유통 시장이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옴니채널 전략을 뒷받침하는 기반은 AI와 디지털 물류 기술이다. 이마트는 KT와 제휴해 매장 자동화, AI 기반 물류 최적화, 스마트 물류센터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GS리테일 역시 운송 경로와 일정 자동화 기술을 도입할 예정이다. 유통계에선 이처럼 AI를 기반으로 한 개인화된 쇼핑 경험이 구매 전환율을 평균 26% 높이고, 통합 고객 경험 전략이 고객 생애 가치를 30% 이상 상승시킬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테무, 쉬인, 알리바바 등이 방대한 상품 구색과 초저가 가격을 내세워 시장을 잠식하면서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때 오프라인 대형마트 2위 매출액을 자랑하던 홈플러스의 상황은 대형 유통 업체가 디지털 전환을 적시에 추진하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3월 법정관리에 돌입한 홈플러스는 최근 매각 절차가 막바지에 접어들었음에도 거래 가능성을 둘러싼 회의론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유통의 입지가 약화되는 속도에 디지털 전환 실패까지 겹치면서 홈플러스 인수 매력도는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라면서 “비용 효율화나 사업 재편, 전략적 파트너십 확보 없이는 생존 전략이 현실화되기 어려운 국면”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