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소송 패소 대비해 플랜B 준비하는 트럼프, 위법 판결 시 ‘조기 레임덕’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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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상무부·USTR, IEEPA 대체할 근거법 검토 보수성향 대법관들마저 '법적 권한'에 의문 대법 패소 땐 수입 환급 및 줄소송 가능성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상호관세의 적법성을 심리 중인 미 연방대법원이 관세 무효 판결을 내릴 가능성에 대비해 ‘플랜B’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관세가 불법이라고 판단할 경우 다른 법률을 내세워서라도 관세 징수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플랜B는 IEEPA만큼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권한은 없어 관세를 전방위적 지렛대로 삼아온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속도와 범위는 기존과 비교해 크게 제한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민주당 측에서는 관세 무효 판결이 트럼프 대통령의 장악력을 무너뜨려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패소해도 관세 복원 의지, 무역법 122조·관세법 338조 거론
24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상무부와 무역대표부(USTR)는 IEEPA를 대체할 관세 권한으로 무역법 301조와 122조 등을 검토하고 있다. 백악관은 구체적인 준비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 중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비상 관세 권한을 적법하게 행사했으며, 행정부는 대법원에서의 최종 승리를 확신한다”면서도 “미국의 기록적인 상품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 국가 및 경제 안보에 필수적인 제조업을 본토로 되돌리기 위해 항상 새로운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플랜B는 이미 가동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월 브라질에 대해 301조 조사를 시작했으며, 첫 임기 때 부과한 중국산 제품에 대한 301조 관세도 여전히 유효하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대법원이 행정부 패소 판결을 내릴 경우 301조나 122조 권한을 활용해 관세를 재부과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지난 13일 워싱턴경제클럽 행사에서 “현재의 무역정책을 다른 권한으로 재구축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있다”고 전했다.
다만 301조는 관세 부과 전 장기간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해당 외국의 행위나 관행이 미국에 부과하는 부담이나 제약과 가치적으로 동등한 금액만큼만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자의적으로, 혹은 피해액을 초과해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122조도 대통령이 15%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하지만 최대 150일까지만 가능하다는 한계가 명확하다. 앞서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고문은 이런 시간 제한 때문에 행정부가 이 조항에 크게 의존할 계획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금속·자동차 등 특정 산업에 대한 관세 부과 근거로 쓰이고 있는 무역확장법 232조(품목관세 근거법)의 확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회장은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IEEPA를 적용한 관세 부과가 위법 판결을 받을 경우 232조 확대가 플랜B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든다”며 “232조가 결국 대부분의 제조업 기반을 덮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관세법 338조도 잠재적인 도구로 거론된다. 대통령이 외국의 차별적인 상업 행위에 대해 최대 50%까지 관세를 무기한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블룸버그는 “전례가 없는 탓에 새로운 법적 분쟁을 야기할 소지가 크다는 점에서 매우 빠르게 소송 대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美 보수 대법관들도 ‘대통령 관세 권한’ 문제 제기
트럼프 행정부의 플랜B 마련 움직임은 이달 5일 진행된 대법원 구두변론에서 보수 성향 대법관들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 권한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 후 백악관이 패소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송의 핵심 쟁점은 IEEPA를 적용한 상호관세의 정당성 여부다. IEEPA는 대통령이 비상사태에 외국의 위협에 대응해 경제 제재를 취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법이다.
이번 재판은 관세로 피해를 보는 중소기업들과 친민주당 성향의 12개 주가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1심인 국제무역법원(CIT)은 지난 5월 대통령에게 무제한적 권한은 없다며 IEEPA에 근거한 모든 관세 부과 조치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8월에 나온 연방 순회법원의 2심도 마찬가지였다. IEEPA에 명시된 국가 비상사태 대응 대통령 권한 중 하나인 ‘수입 규제’(regulate importation)권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대법원의 일부 법관도 상호관세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한을 준다고 지적했다.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조치에 대해 “어떤 나라의 모든 제품에, 어떤 금액으로, 얼마 동안이든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며 이것이 대통령 권한을 넘는 것이 아닌지 질문했다. 보수 대법관으로서 이번 판결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도 정부에 이 조치가 동맹국인 스페인이나 프랑스에까지 적용된 이유를 설명하라며 “모든 나라에 상호관세를 적용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따졌다. 현재 미국 연방대법관은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구성돼 그동안 트럼프 손을 들어준 판결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 상호관세 문제에서만큼은 보수 대법관들도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대통령이 과도한 권한을 행사한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커피와 바나나 관세를 없애기로 하고 관세 배당금 명목으로 1인당 2,000달러(약 295만원) 지급을 약속하는 등 민심을 의식해 정책을 조정 중이다. 종전에도 그는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언제나 물러난다)’라는 비아냥을 듣긴 했지만, 당시엔 협상 후 한 발짝 물러나던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아예 정책적 비전에 맞지 않는 결정이 많아졌다. 지난 21일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을 백악관에 불러 훈훈한 모습을 연출한 것은 단지 대중의 지지를 좀 더 얻기 위한 ‘갈 지(之)자’ 행보에 불과하다. 2,000달러 배당금 지급 역시 관세 수입으로 미국 재정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과 모순된다. 하지만 공화당 의원들마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배당급 지급안의 의회 통과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천문학적 규모 환급금 등 파급 효과 상당
전문가들은 대법원에서도 위법 판결이 나올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10개월간 수입 업자와 기업들에서 걷은 관세의 환불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후 890억 달러(약 131조원) 이상의 관세를 징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재판을 두고 “국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며 패소 시 “미국 경제에 재앙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더 나아가 기업들이 관세로 인해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높다. 이런 상황이 되면 미국 행정부는 앞으로 관세를 마음대로 올리거나 내리기 어려워지고 의회의 승인이나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제약이 강화된다. 단기적으로는 기업과 소비자가 숨통이 트이겠지만, 정부의 정책 운신 폭은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방위적 관세를 지렛대로 삼아 세계 각국과 맺은 무역 협정도 논란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 개방, 방위비 인상, 대미 투자 등 ‘특정 조건 이행 시 관세 인하’를 전제로 각종 협상을 해 왔는데 이러한 법적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국가들과의 무역 합의를 모두 철회해야 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미 정부의 재정 부담도 가중될 공산이 크다. 대법원이 트럼프 관세에 회의적 입장을 보인 지난 5일 10년물 미 국채 수익률이 4.159%로 6베이시스포인트(bp) 상승했다. 지난 9월 연방항소법원이 트럼프 관세 대부분을 불법으로 판결했을 때도 정부가 관세 수입을 환급해야 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30년물 국채 수익률이 4.97%까지 치솟았다. 관세 환급으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가 국채 발행 증가로 이어지면, 금리 상승 압력으로 한국 등 신흥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세 위법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미칠 수 있다. 관세 정책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조업·중서부 노동자·무역적자 피해 지역 등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전략적 도구였다. 그런 만큼 대법원 판단이 관세 정책의 큰 변화를 가져온다면 이들 지지층 내부에서도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관세가 유지된다고 해도 물가 부담, 보복관세, 공급망 혼란 등은 반(反)트럼프 진영에게 중요한 비판 소재가 된다. 일부 민주당 인사는 가뜩이나 연이은 악재에 국정 장악력이 약해진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무효 이슈로 조기 레임덕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최근 들어 상원 공화당마저 필리버스터 종료(핵 옵션) 요구를 무시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약화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