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EU 디지털 규제 단순화, 잃어버린 8조 달러 되찾을 마지막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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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술 경쟁력 추락 규제 복잡성의 불확실성 비용 집행 체계 기반, 단일 시장 회복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의 기술 경쟁력은 지난 20년 동안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2000년 글로벌 기술·미디어·통신(TMT) 시장의 30%를 차지하던 유럽은 2024년 7%까지 비중이 축소됐다. 표면적 점유율 변화보다 산업 기반의 약화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유지했다면 확보했을 8조 달러(약 1경600조원)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이 기간 유럽연합(EU)은 일반개인정보보호규정(GDPR), 디지털서비스법(DSA), 디지털시장법(DMA), AI 법(AI Act)을 잇달아 도입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 기준을 구축했다. 그러나 글로벌 벤처캐피털 비중은 같은 기간 16%에서 11%로 떨어졌다. 규제의 목표와 산업 성적이 서로 멀어지는 구조다.
이제 EU는 ‘디지털 옴니버스(Digital Omnibus)’ 패키지를 통해 규제 구조의 단순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복잡한 체계를 정비하지 못하면 다음 10년도 잃어버린 시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규제 구조의 성장 제약
EU 디지털 규제 단순화가 산업정책의 중심 의제로 떠오른 것은 규제의 양보다 구조적 복잡성이 기업 성장의 병목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GDPR, DSA, DMA, 데이터법(Data Act)은 서로 다른 감독 체계와 일정 속에서 운영되며 기업을 사실상 27개 시장으로 분절된 환경에 내몰았다.
이 구조적 제약은 마리오 드라기(Mario Draghi) 이탈리아 전 총리가 EU 집행부에 제출한 경쟁력 보고서에서도 드러난다. 보고서는 2008~2021년 유럽 유니콘의 약 30%가 본사를 미국으로 옮겼다고 지적한다. 인력과 기술은 유럽에 남아 있지만 가치 실현은 해외에서 발생하는 흐름이 굳어진 것이다.
결국 본질은 규제의 강도보다 승인·감독 절차의 속도와 국경 간 확장 비용에 있다. 이런 이유로 단순화는 단일 시장을 실제 성장 기반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적 선택으로 이동하고 있다.

주: 유럽의 TMT(기술·미디어·통신) 시장 비중이 30%에서 7%로 축소된 흐름을 보여준다.
불확실성 대한 비용 확대
유럽 디지털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위협하는 핵심 요인은 규제의 양보다 적용 기준의 불명확성이다. GDPR, DSA, DMA, 데이터법(Data Act), 네트워크·정보보안지침(NIS2)의 해석과 집행 방식이 달라 기업들은 단일 시장이 아닌 27개의 준시장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이 단편화는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McKinsey는 글로벌 TMT 시가총액이 2000년 7조 달러(약 938조원)에서 2024년 34조 달러(약 4경5,556조원)로 증가했지만 유럽 비중은 30%에서 7%로 축소됐다고 분석한다. 단순한 지표 하락이 아닌 확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투자와 성장의 속도를 제약한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단순화는 경쟁력 정책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기업이 프로토타입에서 확장까지 이동하는 속도를 높이려면 규제 수보다 시장 진입과 확장 경로의 예측 가능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흐름은 공공 서비스와 교육 분야의 의사결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 미국이 글로벌 VC 자금의 57%를 차지하며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유럽은 16%에 그쳐 규제 명확성의 경쟁력 중요성이 부각된다.
공공 서비스 도입 지연
규제 불확실성은 기업을 넘어 교육·고용 등 공공 서비스의 선택까지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각국 교육부는 규정 충돌을 우려해 원격 시험 플랫폼과 학습 평가 시스템 도입을 미루고 있다. 대학의 AI 기반 파일럿 프로젝트는 초기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채 확장 시도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은 기술 부족이 아닌 국경 간 배포 기준의 모호함에 기인한다. 정책 담당자들이 책임 범위와 준수 요건을 판단하기 어려운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EU 디지털 규제 단순화가 책임 구분과 소규모 사업자의 공통 의무를 명확히 제시한다면 도입 환경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교육기관은 고비용 글로벌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형 대안 검토에 나설 여지를 확보하게 된다.
이 변화는 단순 규제 개선에 머물지 않는다. 공공 구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 세금’을 낮추고 현장 도입과 확산 속도를 높이는 기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집행 체계를 다시 짜야 한다는 요구를 강화한다.
집행 체계 개편의 필요성
단순화가 경쟁력 회복으로 연결되려면 규제를 줄이는 것보다 준수 경로를 명확히 설계하는 작업이 먼저다. 이 때문에 집행 체계를 재구성하는 논의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옴니버스는 단일 사고 보고 채널, ‘한 번 제출(once-only)’ 원칙, EU데이터보호위원회(EDPB)와 AI 거버넌스 기관의 공동 지침 등 실행력을 높이는 장치를 포함한다.
유럽반도체법이 목표 대비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성패를 가른 것은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단편화된 집행이었다. 기준과 절차가 모호하면 정책 효과가 시장에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반대로 집행 기준이 선명해지면 유럽의 AI·EdTech 기업은 해외 이전을 고민하지 않고 단일 시장에서 확장할 동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이 안고 있는 8조 달러(약 1경600조원) 규모의 기술 격차를 좁히는 출발점이 된다. 높은 데이터·AI 기준을 규제 부담이 아닌 경쟁력 자산으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조건이기도 하다. 결국 단순화의 성패는 설계보다 집행 과정에서 갈린다는 점이 다시 확인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 Digital Regulation Simplification and Europe’s Missing Tech Decad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