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고갈 눈앞”, IMF ‘정년·연금개시 연장’ 권고, 마지막 퍼즐은 임금체계 개편
입력
수정
국민연금 수급 68세 상향 필요 2065년, 연금 기금 완전히 고갈 고용·임금체계 재설계도 서둘러야

국제통화기금(IMF)이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년연장 문제를 이례적으로 제기했다. 한국의 급속한 저출생·고령화로 노동공급 감소가 불가피한 만큼 정년연장이 필요하지만, 법적 정년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연공서열 중심인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국내 목소리와 맞물린다. 현재 구조에서는 고임금 고령층의 정년이 연장될수록 기업이 신규 채용을 축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IMF "정년 65세·연금 68세 상향 필요"
IMF는 25일 발표한 ‘한국의 정년연장 관련 특별보고서’에서 고령자 고용 실태를 상세히 소개했다. IMF는 통계 기준에 따라 50세 또는 55세 이상을 고령층으로 분류한 뒤, 한국의 고령층은 다른 선진국보다 조기 퇴직하지만 노동시장에는 더 오랜 기간 머무는 특징이 있다고 비교 분석했다.
국내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용률은 2010년 36.2%에서 올해 3분기 48%로 상승했다. 15년간 12.2%포인트 오른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15~29세 청년 고용률은 40.4%에서 45.3%로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청년 고용률이 고령층 고용률에 역전될 정도로 고령층 취업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IMF는 고령 근로가 한국의 노동시장 공백을 메우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여기에 더해 법적 정년연장 역시 노동시장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봤다. 하지만 고용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연금 수급연령도 조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국민연금은 60세까지 납부하며 연금 수급연령은 63세가 기본이다. 2033년이면 65세까지 늘어난다. 연금을 65세부터 받게 되는데 60세에 퇴직하면 소득 공백이 발생하니 정년을 늦춰야 한다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그러나 IMF는 국민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년을 65세로 연장할 경우 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68세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IMF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연금 수급연령을 2035년까지 68세로 높일 경우 총고용이 14% 증가할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정년연장과 연금 개시연령 조정이 맞물릴 때 비로소 고령층의 노동시장 참여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적자 하루 885억원
실제 국민연금 기금은 하루 885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이고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가 낸 돈(보험료)보다 받는 돈(연금 수령액)이 많은 구조로 설계됐다. 소득의 19.7%를 보험료로 내야 수지균형이 맞는데 현재 보험료율은 9%에 불과하다. 받을 사람은 늘고, 낼 사람은 줄어드는 저출생·고령화도 심각하다. 이대로라면 국민연금 기금은 2057년 고갈된다. 1990년생이 연금을 받아야 하는 시점에 기금이 고갈되면 이후 세대는 소득의 35%를 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더 내고 덜 받거나, 더 내고 받는 돈은 유지하는 방향으로의 개혁이 불가피하다.
이에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 개정안으로 기금이 완전히 고갈되는 시점은 2065년으로 8년 미뤄졌으나,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현재 고령층에서는 받을 돈을 늘리자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함께 높이자는 주장이다. 더 내고 더 받으면서도 개혁이 된다면 좋겠지만, 받는 돈을 늘리면 보험료율을 올리는 효과가 미미해진다.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소득대체율을 2%포인트 높일 경우 628조원이, 3%포인트 높이면 950조원이 더 필요하다. 그렇다고 당장 노후소득 보장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낮은 것은 가입 기간이 짧은 탓이 크기 때문이다. 소득대체율은 가입 기간 40년을 기준으로 삼는데, 전체 연금 수급자 가운데 가입 기간이 20년 이상인 사람은 19%에 불과하다. 65세 이상 노인 두 명 중 한 명이 국민연금 가입자가 아닌 현실을 감안하면, 노인 빈곤 역시 소득대체율 인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기금 재정에 부담을 안기는 소득대체율 상향 대신 구조개혁을 통해 실질적인 소득 보장을 강화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60세인 국민연금 의무납입 연령을 5년 연장하면 소득대체율이 5%포인트 인상되는 효과가 있다. OECD도 이를 권고하고 있다. 의무납입 기간 연장은 고용 연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연공서열 임금구조는 정년연장에 毒, 임금체계 바꿔야
다만 연공서열 중심 임금체계 개편과 고용 유연성 확보 없이 정년연장이 이뤄질 경우 청년층 신규 일자리 감소에 따른 세대 갈등과 기업 부담 급증 등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인건비 상승에 부담을 느낀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한국은행의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정년연장(58→60세) 이후 지난해까지 고령층(55~59세) 임금근로자 고용률은 1.8%포인트(약 8만 명) 늘어난 반면, 청년층(23~27세) 고용률은 6.9%포인트(약 11만 명) 줄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직무의 난이도와 책임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등 임금체계를 전면 손질하고, 나아가 퇴직 후 재고용 등 기업에 계속고용 선택지를 다양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65세까지 사업주가 △정년연장 △정년폐지 △재고용 등 세 가지 방안 중 하나를 의무적으로 선택하도록 하는 고용확보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김덕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기업들에 일률적인 정년연장보단 자율적인 계속고용 방식을 보장하고, 고용 유연성 확보와 임금체계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며 “청년 취업과 기업 부담, 세대 간 형평성을 모두 고려한 정년연장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령 근로자가 하루 8시간 전일제로 일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근무시간을 2~3시간 줄이거나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인건비를 청년 채용에 사용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임금피크제로 절감된 재원을 청년 고용에 활용하고 퇴직 예정자의 수요를 미리 확보해 청년을 선제적으로 채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합리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근로자의 업무 의욕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힘들게 만드는 제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간 국내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미래 신산업 성장의 걸림돌로 지적돼 왔다. 기업의 고용 구조에는 경기 흐름이 직접적 영향을 받게 되는데 고용 안정성을 보장 받는 정규직은 쉽게 해고할 수 없다 보니 기업들은 비정규직은 물론, 하청·파견 등 간접 고용을 중심으로 확대하며 사업을 꾸려온 것이다. 이는 경기 침체로 기업이 어려워지면 비정규직부터 해고하는 관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당장 한국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적용하기엔 문턱이 높다. 경영계는 사회 안정망 구축에 필요한 추가적인 비용에 대한 부담이 있는 데다, 노동계는 고용 불안정 확대 등 반발이 심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경제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정부와 사용자·근로자 간의 사회적인 대화와 합의를 통해 고용 유연안정성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한 경제학자는 "급진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은 또 다른 경제적 문제를 낳을 수 있다"며 "제도만 선진이 아닌 경제적으로 번영한 국가의 글로벌한 사례를 잘 살펴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