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MEMO] AI가 줄인 건 직업이 아니라 ‘업무’, 살아남는 역할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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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취약 직업군, 예측과 실제 채용 흐름 사이의 뚜렷한 간극 반복 생산 업무는 줄고 기획·관리 중심 역할은 확대 업무 재편을 기준으로 교육·정책 방향 재설정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Research Memo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보도는 매주 반복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지원한 한 분석은 업무용 메신저 대화를 바탕으로 특정 직종의 업무 가운데 최대 90%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 분석에서는 통역·역사·글쓰기처럼 지식과 언어 능력에 크게 의존하는 직무가 가장 높은 위험군에 포함됐다.
그러나 실제 채용 데이터를 보면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 최근 1억 8,000만 건의 구인 공고를 살펴보면 전체 채용 수요는 전년 대비 8% 감소하는 데 그쳤고, 머신러닝(ML) 엔지니어 공고는 전년도 78% 증가에 이어 올해도 40% 확대됐다. 생성형 AI 기술을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공고는 1% 남짓이지만, 이 분야는 높은 보수를 제시하며 관련 기술을 갖춘 인재도 빠르게 늘고 있다. 언론이 강조하는 ‘AI에 취약한 40개 직업’ 목록이 실제 노동시장의 움직임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 위험 목록과 실제 채용 데이터의 간극
현재 널리 인용되는 ‘AI 위험 직군’ 목록은 정교하게 구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정에 기반해 구성된 추상적 모델에 가깝다. 이 분석은 각 직업이 평균적으로 수행하는 업무 묶음을 분해해 자동화 가능성을 점수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번역, 글쓰기, 데이터 분석, 고객 상담과 같이 텍스트·패턴·숫자 처리가 중심인 업무가 높은 자동화 가능성을 보였고, 지붕 공사·청소·간호 보조처럼 신체 활동이나 대면 업무가 많은 직종은 상대적으로 낮은 노출도를 기록했다.
특허와 고용 데이터를 장기적으로 분석한 경제 연구에서도 AI는 과거 자동화와 달리 고임금·고학력 직군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즉, AI는 노동시장에서 새로운 형태의 압력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특히 사고·판단·커뮤니케이션을 중심으로 하는 역할이 그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 같은 모델들은 기업의 실제 채용 판단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자동화 가능성은 기술적으로 ‘될 수 있는’ 일을 보여줄 뿐이며, 실제 채용은 예산·규제 환경·경영 전략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기술 기반의 위험 모델이 보여주는 장면과 노동시장의 실제 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모습을 띤다. 이 때문에 대규모 구인 공고 데이터는 기업이 지금 어느 분야에 사람을 배치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보다 현실적인 지표가 된다.

주: 직군(X축), 전년 대비 변화율(Y축)/전체 채용 공고, 그래픽 디자이너, 사진·영상 촬영 직군, 콘텐츠·기술 문서 작성 직군, 기업 규제·준법 담당, 의료 기록 보조
실제 AI 일자리 데이터가 보여주는 채용 변화
AI가 미치는 실질적 영향은 직군별 채용 변화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콘텐츠 제작 분야다. 2025년 그래픽 제작 인력 채용은 33% 줄었고, 사진 촬영·문서 작성 등 콘텐츠 생산 직무도 전년 대비 28% 감소했다. 기자·리포터는 22%, 홍보 직무는 21% 줄었다. 이들 직무는 정해진 형식과 요구사항에 따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업무 비중이 크기 때문에, 생성형 AI의 도입으로 기업이 초급 제작 인력을 축소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그 대신 기획·전략·고객 소통 역할에 대한 수요는 유지되거나 강화되는 모습이다.
규제와 지속가능성 분야에서도 유사한 감소 흐름이 나타난다. 컴플라이언스 직무는 29%, 지속가능성 관련 인력은 28% 감소했고, 환경 기술 분야도 비슷한 하락세를 보였다. 이러한 변화는 AI 도입이라는 기술 요인보다, ESG 규제를 둘러싼 정치적 변화와 정책의 후퇴가 더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즉, 기술 노출 지수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정책 환경의 변동성이 노동 수요를 좌우한 사례다.
의료 분야는 자동화 가능성과 실제 도입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진료 내용을 문서로 정리하는 의료 기록 보조 인력은 20% 감소했지만, 진료 지원·행정·의료 코딩 등 다른 직무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이는 진료실에서 대화를 자동으로 기록하는 도구가 도입됐기 때문이지만, 그 영향은 문서화 업무에 제한적으로 나타났으며 환자 지원 체계 전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반면 AI 개발·인프라 분야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ML 엔지니어를 비롯해 로봇 기술 인력, 연구직 연구원, 데이터센터 운영 인력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기업의 AI·클라우드 인프라 투자가 늘어나는 만큼 이 수요는 견고하게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마케팅 분야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전체적 흐름은 시장 평균과 유사하지만, 인플루언서 마케팅 직무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AI 콘텐츠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사람이 드러나는 설명력과 영향력’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인디드(Indeed)의 기술 분석은 이러한 흐름을 정밀하게 뒷받침한다. 약 3,000개 기술 데이터를 살펴보면 전체 직무의 25% 이상이 AI 도입으로 성격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으며, 절반 가까운 직무는 일정 수준의 조정이 필요할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완전히 대체 가능한 기술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반복성이 높은 업무는 자동화되고 있지만, 기업은 직무를 없애기보다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일자리 감소’보다는 ‘업무 구조의 재편’이 현재 변화의 핵심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주: 비율(X축), 직무 유형별 AI 영향 수준(Y축)/완전 대체 가능한 기술, AI 노출이 낮은 직무, AI로 중간 수준 변화가 일어나는 직무, AI로 큰 변화가 일어나는 직무
AI 일자리 데이터가 요구하는 교육과정 개편
AI는 특정 전공을 곧바로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직무 구조는 이미 변하고 있다. 문제는 교육과정이 이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데이터는 동일한 분야에서도 역할별 필요 역량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콘텐츠 제작 실무는 감소하는 반면, 기획·브랜드 전략·조사·고객 소통처럼 판단과 설계 능력이 요구되는 업무는 유지되고 있다.
데이터·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반복적인 코딩이나 초안 작성은 자동화되는 속도가 빠르지만, 시스템 설계·문제 정의·운영 기준 마련 같은 상위 업무는 오히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래픽 디자이너’, ‘소프트웨어 개발자’처럼 넓은 범주의 직무명으로 진로를 안내하면 학생들은 자동화 영향이 큰 역할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교육과정 개편은 실제 채용 공고에서 나타나는 기술 요구 변화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생성형 AI 역량을 직접 요구하는 공고는 많지 않지만, 다양한 직무에서 AI 활용 능력이 사실상 기본 요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등교육 기관과 직업교육 기관은 초안 작성, 자료 분석, 시제품 제작 등 실제 작업 과정에서 필요한 AI 활용 능력을 전공 전반에 포함해야 한다. 또한 학생이 노동시장 데이터를 근거로 자신이 진입하려는 분야의 변화 양상을 해석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도 필요하다.
교육 행정과 품질 관리 역시 변화해야 한다. 추상적인 직업 분류 코드나 장기 고용통계에 의존하기보다는, 구인 플랫폼 및 노동시장 분석 기관과 협력해 실시간 채용 흐름을 반영해야 한다. 제작 중심 직무가 감소하고 기획·리서치 역할이 유지된다면, 해당 분야 교육과정의 실습·전략·조사 비중을 재조정해야 한다. AI·로봇·데이터센터 관련 직무가 확대되고 있다면, 수동 코딩 중심의 과목에서 벗어나 AI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능력에 더 많은 학습 시간을 배정해야 한다.
정책 분야에서도 기술 노출 지수만으로 노동 변화 전체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규제·지속가능성 분야에서 나타난 변화는 정책 환경이 직무 수요를 바꾸는 대표적 사례다. 따라서 직업 전환 지원과 지역 전환 프로그램 역시 실제 채용 흐름을 기준으로 설계돼야 한다.
AI 시대 교육의 핵심 과제
지금 교육자와 정책 담당자가 던져야 할 핵심 질문은 ‘어떤 직업이 위험한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AI가 어떤 인간 중심 업무의 가치를 높이고 있으며, 그 역량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다. AI 일자리 데이터는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반복 제작 중심 역할은 줄고, 정책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 영역은 변동성이 커졌다. 반면 AI 시스템을 설계하고 운영하며, 인프라를 구축·관리하는 역할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또한 많은 직무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재편되는 중이며, AI가 만든 결과를 해석하고 맥락을 조정하며 최종 판단을 내리는 역량은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교육기관이 이러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점검해 교육과정에 반영한다면, 추상적 위험 목록을 넘어 실제 변화에 기반한 진로 준비가 가능해질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Beyond the 40 Jobs at Risk: AI Job Market Data Educators Can Actually Us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