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칩 사용하지 마라" 반도체 독립에 속도 내는 中, 엔비디아 양국 '패권 경쟁'에 휘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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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정부, 엔비디아 비롯한 미국산 AI 칩 밀어내기 본격화 급속도로 발전하는 中 AI 칩 산업, 공급량은 아직 불안정 트럼프 수출 통제 강화 시사, 거대 시장 잃은 엔비디아 '한숨'

중국의 반도체 자립 행보에 속도가 붙고 있다. 최근 신규 데이터센터의 자국산 인공지능(AI) 칩 사용을 의무화한 데 이어, 틱톡 모회사 바이트댄스 등 대형 테크 기업에도 엔비디아 AI 칩 사용 자제를 권고하며 미국 반도체 의존도를 낮춰 나가는 양상이다. 이는 자국 AI 칩 시장의 뚜렷한 양적·질적 성장세를 고려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中, 바이트댄스에 '엔비디아 칩 사용 자제' 요구
26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소식통을 인용, 중국 정부가 바이트댄스에 엔비디아의 AI 칩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 칩 대신 자국 기업인 화웨이와 캠브리콘이 제조한 제품을 사용하라고 압박을 가한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바이트댄스는 올 한 해 동안 중국 내에서 엔비디아 칩을 가장 많이 구매한 기업이며, 미국 수출 통제 강화 가능성에 대비해 연산 자원을 선제 확보해 둔 상태다.
중국 정부는 이전부터 미국산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시도를 이어 왔다. 앞서 지난 7월 미국 정부가 엔비디아 H20의 중국 수출을 재허가했을 당시, 중국 정부는 H20에 보안 우려가 있다며 중국 기업에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9월에는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등에 엔비디아의 중국 수출 전용 칩 ‘RTX 프로6000D’의 주문과 테스트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세관 당국까지 동원해 전국 주요 항구에서 엔비디아 칩의 수입을 차단하기도 했다.
지난 5일에는 로이터통신이 "중국 정부가 국가 자금이 투입된 신규 AI 데이터센터에 자국산 AI 칩만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는 지침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기존 데이터센터에 중국산 AI 칩을 50% 이상 사용하도록 강제하던 것을 넘어 관련 의무를 대폭 강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설 데이터센터는 물론, 공사 진척률이 30% 미만인 데이터센터도 이미 설치된 모든 외국산 AI 칩을 빼고 중국산 칩을 투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현재 중국 전역에서는 400~500개의 데이터센터가 구축되고 있으며, 1,000억 달러(약 145조원) 규모 정부 지원금이 분산 투입된 상태다.
中 AI 칩 시장의 성장세
중국 정부는 미국의 견제 속 키워 온 자국 AI 칩 제조 기술이 일정 궤도에 올랐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국 AI 반도체 업체들은 최근 전례 없는 고성장을 기록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주요 업체들의 실적을 살펴보면, 하이곤(Hygon)은 올해 상반기 매출액 54억6,400만 위안(약 1조690억원)을 달성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5.21% 증가한 수준이다. 순이익은 12억100만 위안(약 2,350억원)으로 40.78% 성장했다. 수년간 적자에 시달렸던 캠브리콘(Cambricon) 역시 상반기 매출액이 28억8,100만 위안(약 5,63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47.82% 폭증했고, 순이익도 10억3,800만 위안(약 2,030억원)을 기록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기술 수준 또한 빠르게 개선되는 추세다. 여러 전문 매체는 화웨이가 지난 5월 출시한 '어센드 910C'의 추론(Inference) 기능이 엔비디아 H100의 약 60% 수준에 달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소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역시 뛰어나다. 엔비디아의 이전 세대 칩인 A100과 비교했을 때, 910C의 가격은 약 30%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지만 성능은 80%에 달한다. 현재 화웨이는 어센드 910C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차세대 AI 칩 어센드 910D를 개발 중이며, 업계에서는 이 칩이 H100을 능가하는 성능을 보일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다만 공급 물량은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2일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의 칩 생산에 관여 중이며, 화웨이가 최우선 공급 순위라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화웨이 어센드 910C를 중심으로 AI 기업들의 모델 훈련과 추론을 유도하고 있으나, 해당 제품의 공급은 시장 수요를 좀처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정부의 공급망 개입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고 관련 산업 발전에 속도를 내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엔비디아 "중국 매출 비중 0%" 호소
기술 패권 경쟁으로 거대 시장을 잃게 된 엔비디아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31일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 특별 연설 후 기자들과 만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시장 점유율이 95%였지만 지금 중국 매출 비중은 0%”라며 “매우 유감스럽고 이 상황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의 외산 칩 사용 금지 조치가 강화될수록 화웨이와 캠브리콘 등의 입지가 더 확대돼 엔비디아의 중국 시장 재진입 난도는 높아지게 된다.
황 CEO는 이달 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AI 행사에서도 “중국이 AI 경쟁에서 미국을 제칠 것”이라며 강도 높은 경고 메시지를 내놨다. 미국 각 주(州)의 AI 규제 움직임과 중국의 보조금 정책을 비교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엔비디아 칩 수출 금지 발언이 나온 후라 파장이 컸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CBS 방송 인터뷰에서 "최첨단 칩은 미국 외에는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하겠다"며 대중 첨단 기술 통제를 이어갈 것이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현재 엔비디아 제품의 대(對)중국 수출 관련 결정권은 트럼프 대통령이 갖고 있는 상황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24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엔비디아 칩 수출에 관해 “그와 같은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책상에서 이뤄진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수출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도 했다. 엔비디아가 중국에 칩을 판매하려는 것에 관해서는 “그(황 CEO)에겐 타당한 이유가 있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고 옹호했다. 다만 그는 엔비디아 칩의 중국 수출 문제에는 경제 성장과 국가 안보 사이의 긴장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러트닉 장관은 “중국에 칩을 판매해 그들이 우리 기술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보류한 채 AI 경쟁에 나설 것인가 하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