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유로 스테이블코인, 디지털 달러 확장에 대한 대응 전략
입력
수정
달러가 지배하는 스테이블코인 시장 구조 고착 유로 스테이블코인, 국제 결제·교육·무역에서 대안 부상 MiCA 기반 규율로 유럽 결제권 재정립 가능성 확대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디지털 머니 시장은 미국 달러 중심 구조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현재 유통되는 주요 스테이블코인의 대부분이 달러에 연동돼 있으며, 시장 분석에서도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전체 공급의 98~9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유로 스테이블코인은 시가총액이 수억 유로 수준에 그쳐 온체인 유통량 기준으로 달러 토큰 500개당 1개 비중에 머문다. 규모는 작지만 지난 1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하며 성장 속도만큼은 가장 빠른 영역으로 평가된다.
2024년 스테이블코인 결제 규모는 약 5조7,000억 달러(약 8,364조원)에 달해 글로벌 카드 결제망과 유사한 수준에 이르렀다.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국제 결제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나 이 확장세가 달러 토큰에 집중되면서 유럽에서는 ‘디지털 달러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지배력이 높아질수록 유럽의 통화·금리 정책이 제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우려만으로 시장 상황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유럽연합(EU)은 MiCA(암호자산시장규제)를 통해 역외 발행사의 단일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무제한 확장을 경계하는 규율을 이미 갖추고 있다. 달러 토큰의 일방적 우위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실질적 위험은 다른 방향에서 나타난다. 유로 스테이블코인이 충분한 기반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결제·자산 토큰화·무역 금융 등 디지털 금융 인프라 전반이 달러를 중심으로 설계되는 구조가 굳어질 수 있다. 결국 유럽은 미국 토큰이 국제 디지털 결제 규칙을 주도하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유로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대안을 구축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유로 스테이블코인의 전략적 의미
유로 스테이블코인은 유럽이 디지털 결제 질서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다.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약 3,000억 달러(약 439조원)로 전통 금융 대비 작지만, 국경 간 결제·암호화폐 거래·자산 토큰화 등의 분야에서 이미 중요한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가치 대부분은 달러 토큰이 차지하고 있으며, 유로 스테이블코인은 전체 공급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국채를 중심으로 담보가 구성돼 미국 공공부채 수요를 높이고, 국제 결제 흐름을 달러 중심 네트워크로 유도하는 구조적 효과를 낸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정책적 영향력은 상당하다.

주: 통화 구분(X축), 스테이블코인 발행량(Y축)/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유로 연동 스테이블코인
EU는 이러한 흐름을 추종하기보다 독자적 규율을 구축하는 전략을 택했다. MiCA는 EU 이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발행사에 인가 취득을 요구하고, 고유동성 자산으로 1:1 담보 유지, 일정 규모 도달 시 감독 강화 등을 규정한다. 알고리즘 기반 및 이자 지급형 토큰 금지 조항은 스테이블코인을 투기성 자산이 아니라 전자화폐 체계에서 관리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이 규제 기반은 금융 안정과 이용자 신뢰를 함께 확보하면서 유로 스테이블코인의 성장 여건을 마련한다.

단위: 월별 시점(X축), 시가 총액(Y축)
다자간 결제를 고려한 설계 방향
국제 결제에서 달러 선호가 유지되는 배경은 환전 비용, 처리 지연 등 구조적 비효율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국경 간 송금 비용을 평균 6.5%로 제시하며, 이는 기업과 기관, 교육 부문에서 달러 결제가 기본 선택이 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유로 스테이블코인이 낮은 전환 비용과 즉시 처리 구조를 갖추면 이러한 흐름을 바꿀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간 교환은 블록체인상에서 즉시 처리되며, 비용도 네트워크 수수료 수준에 머문다. 이는 유로 기반 결제가 실제 국경 간 송금 비용을 낮추고 결제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서는 유로 스테이블코인이 유럽의 공식 결제망과 직접 연동돼야 한다. 단일유로결제지역(SEPA)과 TARGET 즉시결제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또한 채권·MMF·무역금융 등 금융 상품이 달러 기반 시스템이 아닌 유로 스테이블코인 또는 디지털 유로를 통해 결제될 수 있도록 자산 토큰화 프로젝트와의 연결도 필수적이다. 다중 통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공동 프로젝트는 공통 기술 표준이 국경 간 결제를 빠르게 처리하면서도 통화 주권을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로 스테이블코인의 교육 분야 영향
교육 부문에서도 유로 스테이블코인은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서는 2023~24학년도 국제 학생들의 경제 기여 규모가 약 440억 달러(약 64조5,000억원)에 달했으며, 유럽 대학들도 해외 학생 유입 비중이 높다. 그러나 현행 송금 구조는 비용 부담과 지연이 지속되며, 비자 일정·등록 마감 지연 등 학생에게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 기관은 결제 속도를 높이기 위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이 고착될 경우 교육 분야 역시 달러 중심 구조로 편향될 수 있다. 학비 청구 기준, 플랫폼 요금, 장학금 지급 방식까지 달러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유로 스테이블코인은 이러한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대학과 장학 기관, 에라스무스(Erasmus) 프로그램은 유로 가격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프로그래머블 결제를 통해 정산 속도와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환전 비용과 송금 지연도 줄어들며, 통화 변동성으로 인한 장학금 실질 가치 저하 문제도 완화된다.
유로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핵심 과제
유럽중앙은행(ECB)과 유럽시스템리스크위원회는 스테이블코인이 빠르게 확대될 경우 예금 이탈과 준비금 불투명성으로 인한 유동성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달러 토큰의 영향력이 이미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로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식은 실효성이 낮다. 필요한 것은 유로 스테이블코인을 민간 발행 기반의 공공적 결제 수단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일이다.
MiCA는 이자 지급 금지, 준비금·자본 요건, 환매 규정 등을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결제 중심 자산으로 규정한다. 인가 기준과 투명성 요건을 명확히 하고,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일상 결제 확장을 조정하며, 국경 간 결제 협력에서 유로 기반 토큰을 함께 제시하는 방식은 유로 스테이블코인의 활용 폭을 넓힐 수 있다.
달러 기반 토큰이 주요 디지털 금융 서비스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어 유로 스테이블코인이 확장되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일정한 규모의 공공·국제 거래에서 유로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면 해당 영역에서 자체 유동성이 형성된다. 이는 시장 구조 변화를 유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유로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유로의 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있으나, 두 수단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될 경우 충돌은 크지 않다. 디지털 유로는 소매 결제용 공공 화폐, 유로 스테이블코인은 교육·무역·자본시장 등 특수 분야에서 프로그램 가능한 결제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공급은 향후 빠르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이 대응을 늦출 경우 추가 성장의 대부분이 달러 기반 토큰으로 흡수돼 유로 스테이블코인의 영향력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지금 정책 방향을 명확히 한다면 유로 스테이블코인은 국경 간 결제에서 실질적 역할을 확보하고, 국제 결제망의 한 축을 이루며, 유럽 기준에 부합하는 디지털 통화 선택지를 마련할 수 있다. 향후 흐름은 유럽중앙은행(ECB), 각국 규제기관, 공공기관의 결정에 달려 있다. 대응 시점이 늦어지면 디지털 달러 의존이 강화되고, 지금 조치를 취하면 유로 스테이블코인은 차세대 통화 질서를 능동적으로 형성할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 Stablecoins, Not Digital Dollar Dependenc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