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전환 훈풍도 못 막은 규제 파고, 韓 임대시장 내 해외 자본 ‘엑시트 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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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투자 철회→추가 매입 보류
월세 수요 증가에 투자 과열 전례
세금 폭탄 결정타에 수익 모델 붕괴

최근 한국 임대주택 시장에서 글로벌 자본의 ‘발 빼기’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그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수도권 주요 지역의 기업형 임대 주택은 외국계 기관들의 핵심 투자처로 주목받았지만, 정부의 촘촘한 ‘규제 패키지’가 가동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신규 진입을 검토하던 기관들은 대부분 계획을 보류하거나 철회했고, 몇몇 자산 운용사는 시장 이탈까지 검토하는 상황이다. 시장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업계에서는 “정책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한 글로벌 기관의 회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매입 경쟁’ 국면 반전
2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내 임대주택 시장에서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이탈 조짐이 다수 포착됐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올해 초 공유 주거 시설 ‘맹그로브’를 운영하는 국내 기업 MGRV와 5,000억원 규모 합작법인을 설립했으나, 불과 몇 달 만에 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는 단계로 돌아섰다. CPPIB의 방향 전환과 동시에 모건스탠리, 영국 계열 M&G, 싱가포르투자청(GIC) 역시 기존 전략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일부 기관은 한국 시장 철수 가능성까지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변화는 주요 해외 기관들이 이미 확보해 둔 서울 주요 거점의 자산과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간 콜버그크래비츠로버츠(KKR)는 서울 영등포구와 동대문구 일대에서, 영국계 자산 운용사 ICG는 강남구와 중구에서 각각 확보한 부지를 중심으로 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해 왔다. 또 모건스탠리는 금천구와 성북구 등지에서 고급 소규모 임대주택 공급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최근의 시장 환경 변화가 반영되면서 이들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 또한 커지는 상황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국내 임대주택 시장은 글로벌 기관들의 관심이 집중된 분야였다. 전세 사기 확산, 1인 가구 증가, 금리 불안정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며 개인 중심 임대시장 대신 기관투자가 중심의 기업형 임대주택 모델이 주목받으면서다. 수도권 지하철역 주변으로는 워크스테이션과 헬스장, 커뮤니케이션 시설 등을 갖춘 고급형 주거 모델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고, 외국계 자본은 이러한 수요 구조를 근거로 장기 보유형 임대 수익 모델을 확신했다. 이 과정에서 리모델링이 용이한 오피스텔이나 노후 사옥 매물은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류는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안정화 대책 발표 이후 급변했다. 규제지역 확대와 함께 기업형 임대주택에 대한 취득세 중과, 종부세 합산 배제 제외 등 부과 체계가 강화되면서 외국계 기관의 사업 구조에 직접적인 충격이 가해진 탓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기업형 임대 과세 문제를 사전 조정하지 않은 채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부작용이 현실화됐다”는 비판이 쇄도했고, 이 때문에 향후 규제가 일부 완화되더라도 글로벌 자본이 다시 위험을 감수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관측에도 무게가 실렸다.

부동산 담보+월 단위 현금흐름 ‘매력적’
앞서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한국 임대시장에서 성공을 확신한 배경에는 빠른 월세 전환 속도와 그에 따른 기대 수익률이 자리하고 있었다. 국토교통부에 의하면 전국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은 2021년 43.0%에서 2022년 51.8%, 2023년 55.1%, 2024년 57.4%로 매년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 결과 지난해 수도권 아파트 월세 상승률은 6.27%에 달했고, 특히 서울과 인천은 각각 7.25%, 7.8%로 최근 10년 사이 가장 가파른 상승폭을 그렸다. 이처럼 월세 수요 증가와 임대료 상승 추세가 맞물리는 그림은 투자자 입장에서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을 의미한다.
여기에 부동산이라는 실물 담보 가치까지 더해지면서 국채나 예금 같은 투자처보다 더 매력적인 자산으로 인식됐다. 수도권 오피스텔의 평균 임대 수익률은 작년 3분기 기준 4.87%로 최근 5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집계됐는데, 담보 가치 상승에 따른 중장기 매각차익 등을 고려하면 9% 안팎의 수익률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상업용 오피스 시장이 정점을 지나 투자 매력이 떨어진 가운데, 성장 여력이 남은 임대주택 섹터로 포트폴리오를 이동시키는 데 적합한 환경이라는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시장 측면에서도 장기 수요 기반을 뒷받침하는 지표들이 잇따랐다. 연이은 대출 규제 강화와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 거래 차단 등 정책 변화가 이어지면서 1인 가구와 청년층을 중심으로 월세 선택 비중이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KB금융그룹의 지난해 조사에서 1인 가구의 45.1%는 월세에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으며, 통계청 전망을 적용하면 2030년에는 1인 가구 비중이 70%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란 관측도 제시됐다. 아울러 최근 1년간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서 1,470원 선까지 급등한 흐름까지 겹치면서 원화 자산에 투자해 임대수익과 환차익을 동시에 노릴 기회 또한 열렸다.
장기 보유 전략 핵심 전제 흔들려
그러나 이 같은 장밋빛 전망은 강력한 규제 앞에 모두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10·15 부동산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추가 지정하고, 아파트형 매입임대와 조정대상지역 내 장기 일반 민간임대주택을 종합부동산세 합산배제 대상에서 제외했다. 매입임대 규모가 큰 법인일수록 종부세 폭탄도 더 크게 떠안는 구조다. 이에 더해 취득세 또한 조정대상지역 내 법인 매입에 12% 중과가 예고되면서 신규 진입은 물론 출구 전략까지 막혔다는 불만이 쇄도했다.
직전 ‘9·7 대책’ 역시 수도권 규제지역 임대사업자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기존 30~60% 수준에서 사실상 0%까지 낮추면서 시장에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정부는 당시 갭투자형 거래를 차단하고 다주택자 레버리지 확대를 막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임대주택을 매입해 장기 운용하려는 기관 입장에서는 자기자본만으로 수천억 원 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혔다. 공급 확대와 주거 안정을 최종 목표로 설계된 정책이 정작 장기 임대주택 공급 의지가 있는 자본의 발길을 막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세제 리스크는 행정 착오와 결합해 또 다른 불확실성을 더한다. 지난달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는 민간임대주택 리츠(REITs) 60곳이 업종코드를 잘못 등록한 탓에 종부세 합산배제 혜택을 상실하면서 대규모 세금 추징 위기에 놓인 바 있다. 이들 대부분이 장기 임대 물량을 담보로 리츠를 설계한 만큼 추가 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보유 자산을 매각하거나 공매에 넘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세입자 보증금 반환 지연과 강제 이주, 장기간 공실 확대 등이 예상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에 서울시는 소규모 오피스텔 건축 규제 완화와 민간임대 리츠 금융 지원 등 보완책을 내놓으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고 나섰다.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외국 자본이 한국 투자를 꺼리고 다른 나라를 찾는 상황”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신뢰 회복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세금과 규제 리스크가 한국 임대주택 시장의 중장기 수익 모델을 정면으로 흔들어 놓은 상황에서 단기적인 규제 완화 시그널만으로는 이미 악화한 투자 심리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게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