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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그늘에 빠진 美 경제, K자형 충격 더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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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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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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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층, 임금·자산·소비 모두 호황
저소득층은 고금리·고물가·연체 압박
자산 불평등, 기술 발전 따라 더 심화

미국 경제가 다시 두 갈래로 찢어지고 있다. 주가 상승과 인공지능(AI) 투자 붐이 경제 전반을 끌어올리는 듯 보이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위쪽 K’와 ‘아래쪽 K’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고소득층은 임금과 자산이 함께 뛰며 소비를 확대하고 있지만, 저소득층은 물가·부채·연체 부담 속에서 한 해를 버티기에도 급급한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미국 경제의 복병이자 향후 경기 방향을 왜곡하는 숨은 균열이라고 진단한다.

연준 “미국 내 소비 양극화 심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26일(현지시간) 공개한 경기 동향 보고서 ‘베이지북(Beige Book)’에서 소득 계층별 격차가 벌어지는 K자형(K-shaped) 소비 패턴이 심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소득층은 여전히 지갑을 열고 있지만, 그 외 계층에서는 소비가 둔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복·침체의 양상이 마치 알파벳 K처럼 위쪽·아래쪽으로 갈라지는 모습에서 비롯된 용어다.

연준에 따르면 뉴욕, 애틀랜타, 미니애폴리스 등 여러 지역 연방준비은행에서 “부유층 소비자는 경제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를 지속하는 반면, 중·저소득층 소비자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보고가 잇따랐다. 연준은 지난 10월 회의에서도 양극화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당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양극화의 증거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25일 미 상무부가 발표한 소매판매 동향에서도 양극화가 감지됐다. 9월 미국의 소매 판매 증가율은 경제학자들이 예상해 온 0.4% 증가의 절반 수준인 0.2% 증가에 그쳤다. 소매 판매 수치는 통상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지 않고 산출되는 만큼, 상품의 가격 상승분을 제외하면 0.2%의 상승으로는 실제 소비가 줄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소비 증가세 둔화는 특히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고용 시장 둔화를 우려하며 소비를 줄이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고물가·고금리에 짓눌린 저소득층

실제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소비자 지출은 그 어느 때보다 상위 10% 부유층에 집중돼 있다. 이들이 전체 소비 지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또 상위 20%는 전체 소비 지출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이에 반해 나머지 80%가 전체 소비 지출에 차지하는 비중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42%에서 37%로 떨어졌다. 주식 시장과 주택 가격 상승의 혜택을 보는 고소득층은 지출을 이어가고 있지만 저소득층은 고용 시장 위축 등으로 씀씀이를 줄여가고 있어서다. 미국 경제 성장을 떠받치는 건 사실상 상위층 소비뿐인 셈이다.

K자형 경제에서 하위 계층이 늘고 있는 것은 임금 상승률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연구소 조사에 의하면, 2016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고소득 가구의 임금 상승률이 저소득층과 중산층 가구의 임금 상승률을 앞질렀다. 여기에 고물가까지 겹치며 저소득층을 짓눌렀다. 최근 소비자물가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가스와 전기 요금이 각각 전년 동월보다 13.8%, 6.2% 급등했다. 식료품값도 지난달 전월보다 0.6% 상승해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더해 관세로 인해 옷값, 장난감값, 가전제품값, 가구값까지 오르고, 올해 초 재개된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저소득층 가계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오른 미국 기준금리도 저소득층의 구매력을 위축시키고 있다. 신용점수 모델링 업체인 밴티지스코어가 2020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60일 이상 연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연 소득 4만5,000달러(약 6,500만원) 미만 가구의 연체율은 팬데믹 이후 급증한 뒤 2022년 이후 하락하지 않고 있다. 하버드대 주택연구센터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23년 기준으로 임차인 절반 수준인 2,260만 명이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에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보다 3.2%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높은 주거비 부담은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2023년 연 가구소득 3만 달러(약 4,300만원) 미만 임차인의 주거비를 제외한 잔여 소득 중앙값은 월 250달러(약 36만원)에 그쳤다. 2001년보다 55%나 줄어든 것이다. 반면 고스득층의 자산은 계속 불고 있다. 특히 AI 투자 열풍은 고소득층의 지갑을 두둑히 하는 데 일조했다. AI 붐에 따른 기술주 상승과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인해 고소득층의 자산이 크게 불어났다.

AI로 생산성 향상, 부의 불평등 더 확대

이 같은 소득 양극화는 기술 발전에 힘입어 더 확대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연구보고서 'AI 도입과 불평등(AI adoption and inequality)'에 따르면 고소득 노동일수록 AI의 도움을 받아 노동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고, 이는 다시 임금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AI가 데이터 효율성을 높여 자본 수익률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는 점도 고소득 노동자에 유리한 요소로 꼽혔다. 고소득 노동자일수록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고위험·고수익 투자 자산이 많다는 점에서다. 결국 AI의 업무 대체에도 노동생산성 향상, 자본수익률 증가 등에 힘입어 부의 지니계수는 7.18%p 상승할 것으로 추정됐다. 임금 불평등 지니계수의 완화 수준(-1.73%p)과 비교하면 상승 폭이 크다. 그만큼 고소득 노동자의 임금 소득 감소 폭보다 자본 소득의 확대 효과가 더 크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러한 양극화가 미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연준 내부에서도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안나 폴슨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는 “올해 고용 증가의 거의 전부가 의료·사회복지 분야에 집중돼 있다”며 “고소득층 소비와 AI 관련 주가 랠리가 성장을 떠받치지만 이는 지나치게 협소한 기반”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자산시장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경기 변동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재러드 번스타인은 “주식시장 부의 1달러 감소는 소비 2~3센트 감소로 이어진다”며 “성장이 소수의 자산가치에 지나치게 좌우되는 구조가 됐다”고 지적했다.

월가에서도 주가 조정이 오면 미국 경제의 ‘아래쪽 K’가 먼저 무너지고 충격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이미 신용 지표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피치레이팅스에 따르면 미국 서브프라임 오토론의 60일 이상 연체율은 6.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차량 압류는 170만 건으로 2년 전 대비 40% 넘게 증가했다. 이는 하위층 신용 붕괴가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지금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은 성장의 불균형"이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견조한 성장세가 유지되지만, 실제로는 상위층 소비가 전체 평균을 끌어올리는 편향된 회복이라는 것이다. 결국 성장률이 아니라 성장의 질이 문제인 셈이다. 아래쪽 K는 이미 장기적 스트레스에 들어갔고, 충격이 오면 가장 먼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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