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노후 아파트가 신축 가격 추월, 재건축 기대감에 '상급지 구축' 선호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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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들어 '얼죽신'에서 '얼죽재'로 전환 구축 아파트들의 입지 프리미엄 고평가 재건축 단지 '지연 리스크'는 부담 요인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20년 이상 된 노후 단지의 가격이 신축 아파트를 넘어서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신축 아파트 공급 부족과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가 맞물리면서 상급지 구축 아파트에 수요가 집중되고, 일부 단지에서는 조합 설립 인가만으로 단기간에 매매가가 급등하는 등 ‘재건축 테마’ 열풍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건축이 통상 10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인 데다 조합 분담금, 공사비, 규제 부담 등 현실적 리스크가 공존하는 만큼, 단기적인 투자 흐름에 휩쓸릴 경우 시장 불안과 가격 버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노후·신축 가격 역전 현상 3주째 이어져
9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12월 1주차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의 '20년 초과'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률은 0.19%로, 전체 연령별 아파트 중 가장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준공 '5년 이하' 신축 아파트와 '5년 초과∼10년 이하' 준신축 아파트의 상승률은 각각 0.17%, 0.16%로 집계됐다. 일반적으로 준공 10년이 지나면 구축 아파트로 분류되지만, 재건축 연한(30년)에 한참 못 미치는 '10년 초과∼15년 이하', '15년 초과∼20년 이하' 구축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은 0.11%로 가장 낮았다.
준공 20년을 초과하는 노후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이 신축 아파트를 넘어서는 역전 현상은 3주째 이어지고 있다. 앞서 11월 3~4주차 20년 초과 아파트의 가격 상승률은 각각 0.21%, 0.20%로, 5년 이하 신축 아파트 상승률(0.20%, 0.18%)을 웃돌았다. 특히 이 같은 추세는 하반기 들어 심화됐는데, 정부의 부동산 대책(6·27, 10·15)으로 대출 규제가 강화돼 비싼 새 아파트를 매수하기 어려워지자, 낡은 집에 살며 재건축까지 버티는, 이른바 '몸테크' 전략으로 선회한 이들이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흐름이 나타난 배경에는 ‘입지는 고정되지만, 연식은 개선 가능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학군·교통·인프라 등 생활 편의성, 입지 프리미엄 등을 고려한 장기적 투자 가치가 노후 아파트의 단점을 상쇄하면서 ‘상급지 노후 아파트가 신축보다 안전하다’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구축이라도 기본적인 관리 수준이 확보된 단지는 가격 방어력이 높다. 일례로 서울 성동구 금호동에서는 인접 단지 간에도 주차대수 차이에 따라 실거래가가 수억원씩 차이 나는 사례가 확인됐다.

재건축 호재로 매물 품귀 현상도 나타나
이처럼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열풍이 누그러진 데는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다. 올해 들어 정부가 아파트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재건축 아파트 안전진단 등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재건축이 용이해질 것이란 기대감이 확산된 것이다. 여기에 신축 아파트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이 겹치며 기대심리를 더 자극했다. 부동산R114 관계자는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 전기차 화재 대응 시설 구축 의무화 등으로 신축 아파트의 분양가 상승 압력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재건축 유망 단지를 중심으로 '얼죽재(얼어 죽어도 재건축)'가 시장의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 잡을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재건축 호재가 확산되면서 일부 단지에서는 매물이 줄어드는 품귀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최근 재건축을 본격화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는 매도자 우위 시장이 형성되면서 매물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단지 규모가 5,000가구가 넘는 데도 매물은 50개 미만인 1% 수준에 불과하다. 매매가도 급등했다. 지난달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재건축 추진단이 재건축추진위원회 설립을 완료한 직후, 올림픽선수기자촌 아파트 전용 120㎡(47평) 1층 매물은 39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5월 기준 최고가(30억5,000만원)와 비교하면 불과 반년 만에 9억원이 껑충 뛴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한국 재건축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지연 리스크'를 먼저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사비 상승과 금리 부담으로 조합원 분담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동의를 끌어내기 어려운 데다, 여전히 규제가 촘촘해 초기 사업성 자체가 흔들리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여기에 인허가 지연, 조합 내 분쟁, 시공사와의 공사비 갈등까지 더해지면 사업이 수년씩 표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재건축 논의가 시작된 은마아파트는 각종 규제와 이해관계 충돌로 30년 넘게 사업이 지연돼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재건축 현장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서울 전역이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주요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직격탄을 맞았다. 10년 이상 걸리는 정비사업 특성상 원주민 외에 투자자가 조합원 자격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규제 지역에서 다주택자가 되면 취득세가 2주택 8%, 3주택 12%까지 중과된다. 게다가 재건축은 조합 설립 인가 이후, 재개발은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부터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되면서 매매가 사실상 봉쇄됐다. 퇴로가 차단된 조합원이 늘어날수록 갈등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정비사업 속도 역시 상당 부분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정 이슈에 단기 수요 쏠리는 현상 우려
일각에서는 최근 재건축 단지에 대한 이상 움직임을 일종의 ‘테마 순환’ 현상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주식시장에서 정책 변화나 특정 이슈가 부각될 때마다 관련 종목이 단기간 급등락을 반복하듯, 부동산 시장 역시 정책·규제 변화에 따라 수요자의 관심이 특정 영역으로 몰리는 사이클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 시그널이 나오자마자 재건축 단지가 주택 시장의 중심으로 올라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소위 ‘이슈 주도형 투자’가 시장을 뒤흔들면서 수요가 단기간 한 방향으로 쏠리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테마 장세가 일으키는 시장 과열이다. 조합 설립이 임박했다는 소문만으로 일부 재건축 단지는 수억원이 오르며 단기간에 호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비사업은 변수가 많아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음에도, 마치 곧 신축으로 탈바꿈할 것처럼 투자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사업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사두면 오른다’는 기대가 가격을 끌어올리면, 결국 리스크는 시장 참여자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기대감만으로 수요가 과도하게 유입되면 결국 버블 가능성이 커진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재건축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재건축은 장기 프로젝트인 데다 추진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변수에 직면할 수 있는 만큼, 단기간의 테마 변화에 휩쓸리는 ‘시세 추격형 투자’는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언제든 다시 바뀔 수 있고, 분담금·공사비·규제 부담이 현실화되면 사업성이 흔들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당장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조합의 재정 여력, 규제 환경, 장기 추진 가능성 등을 꼼꼼히 따져본 뒤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