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 허브 확장에 개도국 특혜 철회까지, EU 불법이주 대응 기조 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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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 허브 재편 및 ‘이민 거부세’ 도입 거부 국가 무역특혜 축소, 압박 강화 비용·사회통합·치안 등 장기 부작용

유럽연합(EU)이 불법 이주민을 제삼국 ‘송환 허브(return hubs)’로 보내는 절차를 법적으로 명확히 하고, 회원국이 비용을 직접 부담하는 형태의 이민 거부세 도입을 선언했다. 이번 조치로 망명 신청이 거부되거나 체류 자격이 없는 이주민에 대한 구금이 법적 근거를 얻으면서 불법 이주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유럽 내부의 정책 전환에도 속도가 붙는 모습이다. 2015년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가 “우리는 할 수 있다”며 시리아 난민을 대거 받아들인 지 정확히 10년 만의 일이다.
처리·수용 기능 제삼국에 외주화
9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 내무장관들은 전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불법 체류자 송환 규정 개정안’ 도입에 최종 합의했다. 이번 개정안은 망명 신청을 거부당하거나 체류 자격이 없는 이주민을 EU와 협정을 맺은 제삼국 수용 시설 송환 허브로 보낼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추진됐다. 일종의 ‘이주민 대기소’인 송환 허브는 이주민이 유럽 본토에 발을 들이기 전 또는 추방 결정이 내려진 후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머무는 시설을 의미한다.
앞서 이탈리아는 지난 2023년 알바니아와 협정을 맺고 알바니아 북서부 센진 항구와 인근 갸데르 지역에 이주민 수용소 2곳을 지어 지난해부터 운영에 돌입했다. 해안경비대가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입국한 불법 이주민들을 구조해 이들 수용소로 보내는 식이다. 수용소는 각 이주민들에게 망명 신청을 받아 28일 이내에 이탈리아 입국 허용 또는 본국 송환 여부를 결정하고, 망명이 거부된 이민자는 최대 18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다. EU는 이 같은 모델을 유럽 전반으로 확장하기 위해 튀니지 등 인근 제삼국과 협정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개정안은 절차의 방향도 크게 바꾼다. EU는 2008년 제정한 송환 지침에 따라 불법 이주민에게도 최대 4주간 출국 기한을 부여하고, 그 기간 내 자발적으로 귀환하면 추가 제재를 하지 않는 방식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번 합의안에서는 일단 불법 이주민으로 분류되면 곧바로 구금할 수 있도록 하고,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구금 기간을 더 늘릴 수 있도록 했다. 라스무스 스토클룬드 덴마크 이민부 장관은 “불법 체류자 4명 중 3명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유럽에 눌러앉는 게 현실”이라며 “이번 규정은 이들에게 ‘유럽에 머물 권리가 없다’는 신호를 보내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정적 장치로는 이른바 ‘이민 거부세’에 해당하는 분담금 제도가 도입된다. 내년부터 EU 회원국들은 연간 2만1,000명에 달하는 난민과 이주민 가운데 일부를 국가별로 나눠 수용해야 한다. 자국에 배정된 이주민을 받기 싫다면 1인당 2만 유로(약 3,400만원)를 분담금으로 내야 하며, 이렇게 모이는 자금은 연간 4억2,000만 유로(약 7,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 돈은 난민 수용 부담이 큰 최전선 국가들을 돕기 위한 공적기금으로 활용되고, 난민 수용 인프라와 생계 지원, 의료·교육 서비스 확충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유럽 문명 소멸” 강경 시각 존재
이 같은 방향 전환에는 정치 지형 변화가 깔려 있다. 유럽은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당시 약 13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며 인권과 망명권을 앞세웠지만, 이후 코로나19 팬데믹과 경기 침체, 테러 위협, 물가 상승이 겹치면서 이주민에 대한 인식이 급격히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AfD)’, 프랑스 국민연합(RN) 등 반이민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율이 대폭 상승했고, 지난 6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우파 연합이 과반을 차지했다. 이 때문에 이번 개정안에는 “불법 이주민을 반드시 돌려보내겠다는 강한 정치적 합의가 제도 형태로 구체화된 결과”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나아가 EU는 추방된 난민의 귀국을 거부하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무역특혜를 폐지함으로써 송환 협력을 거부하는 국가들에 경제적 비용을 전가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EU 이사회와 집행위원회, 유럽의회가 합의한 개편안 초안에는 “특정 국가가 자국민 재입국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심각하고 체계적인 문제가 있을 경우 또는 협력 수준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될 경우, 일반특혜관세제도(GSP) 혜택을 일시 철회할 수 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기존의 노동·환경 기준 중심의 무역특혜 제도를 이민 정책과 연계해 송환 불이행을 ‘제재 사유’로 공식화한 것이다.
EU는 지난 2022년부터 유사한 논의를 꾸준히 이어 왔다. 당시 EU 집행위는 추방된 자국민을 받지 않는 국가에 대해 GSP 혜택 박탈과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처음 제안했다. 2020년 한 해 동안 EU에서 추방된 39만6,000명의 이민자 중 본국에 수용된 인원이 7만 명에 그쳤고,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재수용률도 29% 수준에 불과했다는 통계가 배경이 됐다. 말리와 세네갈, 기니 등이 대표적인 저수용 국가로 지목됐고, 당시 논의에서는 이들 국가에 12~24%의 관세율을 적용할 가능성까지 언급됐다. 다만 개도국 경제에 미칠 충격을 우려하는 반대 여론도 있어 제도화가 지연돼 왔다.
국제사회에선 유럽의 이민 압박 정책이 다소 늦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특히 미국은 최근 공개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유럽을 “문명적 소멸에 직면한 지역”으로 규정하며 “대규모 이민과 저출산이 유럽의 정체성과 안보 기반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민 문제가 유럽 사회와 정치 질서 전체를 흔들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은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특정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몇십 년 안에 대다수가 비유럽인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들이 과연 우리와 같은 가치를 공유할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분석은 미국이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이자 잠재적 파트너”로 묘사한 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중국과는 무역·기술 분쟁을 이어가면서도 협상 여지를 남겨둔 반면, 유럽에 대해서는 현 주류 정치 세력의 교체를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전략서에 직접 명시했다. 미국 국방부와 백악관은 유럽 내부의 이민 갈등이 “대륙의 변화와 갈등을 조장한다”고 짚으며 향후 유럽에서는 ‘애국주의 정당’의 부상을 지지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이는 유럽의 강화된 송환 정책과 맞물려 대서양 양측이 이민 문제를 바라보는 기준과 목표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실패 사례 주시, 이민 수용 기조 후퇴
이 같은 국제사회의 시선은 한때 독일이 이민 정책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와도 상반된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저출산 및 고령화로 심각한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되자, ‘거주허가 및 정주법’(이민법)을 제정해 정주형 이민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전문인력인정법(2012년), 기술이민법(2020년) 등 지속적인 숙련기술 인력·정주 중심의 이민 정책을 펼쳤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해 7월 발간한 ‘독일 이민정책으로 본 이민정책 시사점 연구’ 보고서에서 독일의 △취업비자 발급대상 확대(대졸자→직업교육수료자·전문경력자), △비EU 출신 미숙련기술인력 문호 개방(직업교육 제공) △독일사회 정착유도(독일어·시민교육 실시, 실업수당 제공) 등 이민 정책이 효과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적극적 이민 정책의 결과가 사회 전체를 젊게 만들었단 평가도 내놨다. 실제 독일 연방정부 통계에서 자국민 중 18세~65세 비율은 61.2%인 반면, 이주민의 경우 그 비율이 83.6%에 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독일을 향한 시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울었다. 유럽 각국의 이민정책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칼럼과 저서들은 독일이 경제적 동기와 온정주의를 바탕으로 난민과 이주민을 대거 수용한 결과 사회 통합과 치안, 재정 부담 측면에서 심각한 후유증이 불거졌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한영복 전 자유민주통일교육연합 공동대표는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정책은 이민자 집단이 원사회에 흡수되는 과정보다 특정 지역에 밀집해 정체성이 다른 집단을 형성하고 폭력과 테러, 슬럼화 논란을 키우는 방향으로 흘렀다”고 말했다.
이처럼 장기적 부작용이 더 크게 부각되면서 유럽 밖 지역에서도 반이민 정서가 확산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한국 내부 논의만 보더라도 인구절벽과 학령인구 감소, 지방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민청 신설과 집단 이주 정책이 거론되지만, 여론은 쉽게 호응하지 않는 양상에 가깝다. 문화충돌과 범죄 증가, 슬럼화, 일자리 잠식,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강한 데다, 유럽이 다문화주의 실패를 인정하고도 정책을 되돌리지 못한 사례가 학습 효과를 안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