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침공’으로 유럽 해상 물류 장악한 중국, 미국 해양 패권 ‘빨간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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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남미·아프리카까지, 중국의 해상 요충지화 중국 ‘해상 실크로드’의 상징, 그리스 피레우스항 글로벌 해양 물류 꽉 잡은 중국, 미국 견제 확대

중국의 유럽 항만 장악이 유럽 공급망의 통제 지점을 선점하는 지정학적 재편으로 굳어지고 있다. 피레우스항을 기점으로 중국 국영기업이 지분과 운영권을 결합해 거점을 늘리면서 유럽의 해상 경로 또한 중국이 구축한 항만 네트워크에 결속되는 양상이다. 최근 미국이 대중 조선·해운 규제에 상당한 비용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강경책을 유지하는 배경에도 중국으로의 공급망 권력 이동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는 위기 인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대일로' 유럽 거점화, 영향력 확장 가속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유럽 주요 공급망은 중국의 해외 해양 확장에 점점 더 크게 노출되고 있다. 중국의 해외 항구들이 유럽의 핵심광물 해상 경로에 전략적으로 위치해 있는 상황으로, 이는 중국의 군민융합(Military-Civil Fusion) 전략과 일치한다. 중국 국영기업들은 지난 10년간 국제 해양 입지를 확대했고, 그 결과 아프리카 231개 항구 중 최소 78개 항구에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이 소유하거나 운용하고 있는 전 세계 항구도 129곳에 이른다.
이 중에서도 중국이 글로벌 항만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는 지역은 유럽이다. 중국이 유럽 항만 진출을 본격화한 건 9년 전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에 따라 중국은 2016년 그리스 최대 항구이자 아시아·동유럽·북아프리카로 향하는 관문인 피레우스(Piraeus) 항구를 인수했다. 그동안 중국은 ‘차이나머니’를 바탕으로 제해권과 에너지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중동에서 남중국해까지 해로를 따라 주변 국가들과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해 왔다. 이들 국가 중에서 파키스탄의 과다르,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미얀마의 벵골만 연안, 남중국해의 주요 거점들을 이으면 진주목걸이 모양이 된다고 해서 ‘진주목걸이 전략'으로 부르기도 한다.
피레우스 항구 확보는 이 같은 진주목걸이 전략을 유럽으로 확대시킬 수 있는 교두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피레우스 항구는 중국 상품의 유럽 진입을 촉진하고 중국의 해운사, 인프라 기업, 동남유럽 전역의 철도 투자와 함께 베이징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피레우스 항구는 중국 품에 안긴 이후 세계적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했고, 중국은 이를 발판 삼아 스페인의 발렌시아, 이탈리아의 제노바, 벨기에의 제브뤼허, 독일의 함부르크, 네덜란드의 로테르담까지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들 항만은 모두 북유럽과 지중해를 잇는 핵심 경로에 위치해 있어 중국의 수출입 물동량을 처리하고 유럽 내 물류 네트워크를 지휘할 수 있는 거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유럽 항만 소유, 경제 패권의 상징
중국 정부는 이 모든 전략을 민간 기업의 외형을 가진 국영 기업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원양해운(코스코·COSCO)이다. 코스코는 세계 4위의 해운사이자 중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영 기업으로, 항만 인수와 운영권 확보에 있어 민간 자본처럼 보이되, 국가 전략을 실행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러한 전략은 단순 투자나 경제적 수익을 넘어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한다. 해상 물류망을 장악한다는 것은 곧 수출입 경로를 통제하고, 다른 국가의 무역 의존도를 높이며, 정치적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즉 항만은 무역의 통로일 뿐만 아니라 국가 전략의 전진기지가 되는 셈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중국의 유럽 항만 인수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뤄졌다는 점이다. 예컨대 그리스 사례처럼 재정 위기를 겪거나, 기존 항만 운영자가 매각을 원할 때 중국 자본이 등장한다. 위기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전문가들은 이를 '중국의 조용한 항만 침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게다가 유럽 항만의 특징은 대체적으로 민영화가 활발하고, 외국 자본 유입에 개방적이다. 이는 중국에 완벽한 투자 환경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유럽 항만의 가장 큰 장점은 잘 갖춰진 인프라와 고도화된 물류 시스템이다. 중국이 개발도상국에서는 건설·운영 일괄 수행(Build and operate) 방식을 쓴 반면, 유럽에서는 기존 인프라를 사들여 효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통해 네트워크를 확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자국 화물에 유리한 해상 물류 통로를 직접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유럽이 사실상 중국 항만 제국의 앞마당이 돼 가고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셈이다. 중국이 피레우스 항구를 인수할 당시만 해도 해당 거래는 유럽 전역에서 환영받았으나, 현재는 유럽 각국이 이를 전략적 실수로 평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럽 사례 반면교사, 미국의 대중국 해양 패권 견제
전문가들은 미국이 해양 패권을 두고 중국을 견제하는 배경에도 유럽 사례에 대한 학습 효과가 작용했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2월 중국 선사의 선박이 미국 항구에 입항할 경우 선박당 최대 100만 달러(약 14억원) 또는 용적물에 톤당 최대 1,000달러를 부과하고, 중국에서 건조된 중국산 선박에는 미 항구 입항시 선박 조건에 따라 최대 150만 달러(약 21억원)의 수수료를 요구하는 규제안을 내놨다. 이어 4월에는 중국산 선박과 중국산 선박을 이용하는 해운사들에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런 정책은 미국으로서도 상당한 출혈을 감내해야 한다. 미국 내 최대 항구인 LA항 수입 물량의 45%가 중국산 제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장 미국은 중국과의 관세 전쟁 탓에 극심한 물동량 감소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대중국 조선 해운업 강경책을 유지하는 이유는 해상 패권 장악에 대한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다는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 재건)’를 외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미 외교 안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중국 이중 용도 조선소의 위협 탐색’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300개가 넘는 조선소가 존재하며 매년 전 세계 상선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전역 조선소는 지난해 단 5척의 대형 상선을 건조했으며, 총톤수는 7만6,000톤 남짓이다. 같은 기간 중국 최대 조선소인 중국국영조선공사(CSSC) 홀로 250척이 넘는 선박을 건조한 것과 대조적이다. 총톤수 역시 1,400만 톤으로 생산능력 면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극단적으로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건조한 모든 선박의 톤수까지 합치더라도 CSSC의 한 해 생산량을 넘지 못한다. 중국 나머지 조선소까지 합산하면 미국이 직면한 과제의 규모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특히 미국은 중국이 저렴한 인건비와 압도적 상선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선사들의 발주를 쓸어 담고 있는 현상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상선 수익을 해군력 강화에 투자하고 인도 태평양 지역 안보를 저해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는 시선이다. 실제로 일본, 프랑스, 독일 등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도 예외 없이 중국산 선박을 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눈에 띄는 점은 세계 해운 시장에서 7·10·11위를 유지 중인 대만 선사들 역시 중국산 선박 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이다. CSIC는 “대만 기업들이 중국의 군사 위협에도 불구하고 고위험 조선소에 선박을 구매하며 해군력 증강을 돕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글로벌 7위 선사 에버그린은 자사 발주량의 15% 이상이 중국 해군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에서 건조되고 있다. 중국 해군은 이미 지난 2010년대 이후 미국의 함선 수를 앞질렀으며 이 차이는 앞으로도 더 벌어질 전망이다. 남중국해 패권을 유지하고 싶은 미국으로선 뒤늦게라도 바로잡아야 할 사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