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미·일 학습 시스템이 만든 항공우주 경쟁력과 새로운 연구안보 과제
입력
수정
견학 기반 학습 인프라의 제도화 라이선스 생산이 설계 역량으로 전환된 구조 개방 협력과 연구안보의 공동 설계 필요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일 산업 협력의 뿌리에는 ‘현장 견학 중심의 학습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일본 기업 400~500곳이 매년 미국 공장을 찾아 수주 동안 생산라인 운영과 작업 절차를 직접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현장 훈련 프로그램(Training Within Industry, TWI)’을 이수하며 관리·품질·조직 운영의 기본기를 익혔다. 당시 프로그램은 단순 기술 체험을 넘어 공정 조직화와 표준 절차 수립까지 포함한 종합적 교육 성격을 띠었다.
이 견학 흐름은 1961년 미국의 공식 지원이 종료된 뒤에도 지속됐다. 일본이 자체 예산으로 프로그램을 유지하면서 방문지의 80~90%가 계속 미국 공장이었다는 점은 학습 경로가 제도화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참가 기업 다수가 상장 제조업체였던 만큼 배운 절차와 관리 방식은 공급망 전반으로 확산됐다. 수천 명의 관리자가 축적한 경험은 조직 규범을 바꾸고 산업별 운영 기준을 다시 세우는 영향으로 이어졌다.
이 기반은 항공우주산업과 연구개발(R&D) 분야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핵심은 ‘기술’보다 ‘학습 구조’를 공유했다는 점이다. 협력의 성격 역시 여기에서 결정되며, 앞으로의 지식 이전도 같은 구조가 필요하다. 다만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개방만으로는 부족해지고, 연구안보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과제가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산업 전체를 바꾼 학습 인프라
미·일 지식 이전의 중심에는 현장을 직접 관찰하며 표준을 익히는 ‘학습 인프라’가 있었다. 견학단은 업종별로 구성돼 ‘직무 지시(Job Instructions)’, ‘직무 관계(Job Relations)’, ‘직무 방법(Job Methods)’ 절차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았고, 귀국 후 이를 조직 운영에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준비됐다. 이러한 방식은 당시 일본 제조업을 이끌던 상장 대기업과 공급망 전반에 빠르게 번지며 생산·관리 기준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참여 규모는 꾸준히 커졌다. 수천 명의 관리자와 수백 개 기업이 누적 참여했고, 1961년 이후에는 견학 대상이 유럽까지 확대됐다. 연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견학 참여 기업들은 단기 생산성보다 10~20년에 걸친 고용과 매출 증가가 더 크게 나타났다. 학습 효과가 개인 수준을 넘어 조직 전체에 쌓였다는 의미다.
이러한 축적은 이후 전략 산업에서 협력 방식과 기술 이전 경로를 설계하는 밑거름이 됐다. 결과적으로 학습 인프라의 구축은 항공우주 같은 고난도 산업으로까지 이어지며 다음 단계의 협력 모델을 형성했다.

주: 일본의 미국 연수 파견은 1960년대 이후 연간 약 1천 명 수준으로 확대되어, 일회성이 아닌 제도화된 학습 체계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라이선스 생산의 확장 효과
항공기 산업은 라이선스 생산이 장기적 설계·제조 역량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일본은 1950~1970년대 미쓰비시(Mitsubishi)와 가와사키(Kawasaki)를 중심으로 F-86, F-104, F-4 전투기를 미국과 공동 생산하며 공정·설계·품질 기준을 정교하게 익혔다. 당시 미국의 감사와 현장 훈련은 생산 절차를 표준화하고 품질 문화를 다시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 정부가 1982년 보고서에서 이러한 경험이 일본 민간 항공기 산업의 기술 수준과 운영 능력을 높였다고 밝힌 것도 같은 이유다.
이 기반은 협력 범위를 더욱 넓히는 계기가 됐다. 일본 기업들은 보잉(Boeing), 프랫앤드휘트니(P&W), 제너럴일렉트릭(GE)과 협업하며 정밀 부품 생산, 검사 규범, 일정 관리 역량을 고도화했다. 단순 생산 참여에서 공동 설계와 공정 최적화 단계로 역할이 전환된 셈이다.
학습의 누적은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며 항공우주 분야의 대형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추진력이 됐다. 이 같은 변화는 이후 복합재·엔진 분야로 확장된 상호 의존형 학습의 토대가 됐다.

주: 초기에는 임원·중간관리자가 중심이었으나, 이후 엔지니어 비중이 확대되고 노조원 비중은 감소해 연수가 기술교육보다 조직적 도입을 목표로
설계됐음을 보여준다.
복합재·엔진 협력의 성숙 단계
복합재와 항공엔진 분야에서 미·일 협력이 상호 의존형 학습의 구조로 발전했다는 점은 현재 공급망에서도 명확히 보인다. 일본은 Boeing 787의 복합재 날개 상자(wing box)를 생산하며 기체 가치의 약 35%를 담당하고 있다. 777X에서는 일본 비중이 약 21%로 낮아졌지만 자동화 공정과 탄소섬유 소재 기술은 더 정교해졌다. 수십 년간 축적된 공동 훈련과 일정 준수 경험이 역할 분담의 기반을 만들었고, 비파괴 검사·사이버보안·수출통제 기준을 함께 유지해야 하는 협업 구조로 이어졌다.
항공엔진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나타난다. 미·일 협력은 초기 라이선스 유지보수에서 시작해 공동 설계와 장기 위험 분담 모델로 확장됐으며, 미국 국립학술원(National Academies)은 이를 “광범위하고 오래 지속된(extensive and longstanding)” 기술 연결로 평가했다. 불확실성 완화 → 전문화 정착 → 공동 업그레이드로 이어지는 패턴은 전략 산업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된다.
이러한 축적은 단순 부품 생산을 넘어 공급망 표준을 바꾸는 힘으로 작용해 왔다. 이 같은 심화된 협력은 개방의 이점을 넓히는 동시에, 지식 보호와 연구안보라는 새로운 규범 설정을 요구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개방과 보호를 조율하는 연구안보
지식 이전의 범위가 공장뿐 아니라 코드 저장소, 위성 데이터, 연구노트까지 확장되며 연구안보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연구안보를 도난·방해·무결성 훼손으로부터 연구 생태계를 보호하는 체계로 정의하고 관련 기준을 세부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은 2024~2025년 미국과 일본이 추진하는 인수·과학·기술 생태계 정렬, 공동 항공·우주 프로젝트 확대, 경제안보와 신뢰 기반 R&D 체계에도 직접 적용된다. 전략산업 협력이 깊어질수록 정보의 민감도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이러한 변화를 ‘지상-클라우드 연계 전환(ground to cloud)’으로 설명한다. 연구자가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부터 디지털 협업 구조까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데이터 관리 교육 강화, 방문 연구자 자격 심사, 공동 사건 대응 체계 구축이 필수 요소로 제시된다.
국제 공동연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흐름을 고려하면 개방 자체를 줄이는 방식은 현실적 대안이 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연구의 민감도에 따라 관리 강도를 달리하는 구간별 접근이다. 민감 분야에는 정교한 심사와 통제를 적용하고, 일반 연구에는 간소한 절차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결국 개방을 통해 얻는 혁신과 오용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어떻게 조율하느냐가 향후 협력의 속도와 신뢰를 좌우하게 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Learning by Walking the Line: How US–Japan Knowledge Transfer Built an Aerospace Playbook and What to Protect Next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