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제조업의 시대가 저문다, 다음 성장 동력은 디지털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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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중심 성장 공식 약화, 세계 교역이 디지털 서비스로 이동 원격 기반 업무 확산, 새 인력·산업 구조 형성 대응 속도에 따라 각국의 성장 경로가 달라지는 국면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계 교역 질서가 재편되는 가운데 디지털 서비스가 새로운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 확장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2023년 개발도상국의 관련 수출은 1조 달러(약 1,473조원)에 달했다. 4조5,000억 달러(약 6,629조원) 규모의 세계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비중을 차지하며 성장의 무게중심이 제조업에서 서비스 분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전통적 상품 교역이 과거와 같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급망 재편과 경기 변동이 겹치면서 제조업만으로 성장 여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조업 성장기를 놓친 국가도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면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반면 준비가 늦어질 경우 국가 간 격차는 더 크게 확대될 수 있어 관련 투자의 시급성이 강조된다.
디지털 업무 확산이 만든 인력 수요의 변화
원격 기반 업무와 소프트웨어 개발은 이미 중요한 고용 채널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은 해외 생산 시설을 세우는 대신 필요한 기능을 온라인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직접 채용하는 방식을 확대하는 중이다. 글로벌 채용 플랫폼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영국 기업이 채용한 해외 인력의 절반은 영국과 시차가 동일한 지역에 있었고, 독일 기업은 41%가 1시간 이내 차이였다. 기업이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시차가 적은 지역을 우선 검토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 방식은 비용과 위험을 줄여 기존 오프쇼어링(기업의 서비스를 해외로 이전하는 것)과는 다른 구조로 평가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즉시 투입 가능한 기술 인력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채용 요구 수준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과거처럼 저임금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졌으며, 영어 능력·디지털 기술·프로젝트 포트폴리오가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인력 시장의 기회는 접근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2024년 세계 인터넷 보급률은 68%지만 저소득국은 27%에 머물렀고, 5G 이용 가능 인구 역시 고소득국 84%에 비해 저소득국은 4%에 그쳤다. 원격 기반 업무가 실질적인 기회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저렴한 인터넷, 기본 디지털 교육이 선결 조건이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주: 고소득 국가는 인터넷과 5G가 사실상 보편화된 반면, 저소득 국가는 접근 격차가 커 원격근무와 서비스 수출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제조업 중심 성장 공식의 약화
이 같은 변화는 제조업 기반 성장 모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최근 분석은 20세기 후반 수출주도형 제조업이 이끌어온 성장 공식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디지털 전환과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주요국의 산업 정책과 교역 규범이 동시에 변화하면서 개발도상국이 활용해 온 기존 경로가 흔들리고 있다는 판단이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3년 개발도상국이 유치한 외국인직접투자는 4,350억 달러(약 640조원)로 2005년 이후 가장 낮았다. 중국의 미국 수입 시장 점유율 역시 2017~2023년 사이 뚜렷하게 하락하며 기존 공급망 확장이 예전만큼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동화 확산은 제조업 전략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2023년 세계 제조업 로봇 밀도는 근로자 1만명당 162대로 7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1,012대), 싱가포르(770대), 중국(470대) 등 주요국이 상위권을 차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이는 저임금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경쟁 방식이 점차 효과를 잃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 개발도상국의 대표적 진입 산업이었던 섬유 분야에서도 재단·봉제 등 기본 공정의 자동화가 진행되며 단순노동 중심 산업의 경쟁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또한 통상 환경도 제조업 전략에 부담을 준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 완전 시행되면 탄소집약적 상품의 수출 비용이 늘어난다. 주요국은 핵심 공급망 보호를 위해 보조금을 확대하고 원산지 규제도 강화하는 중이다. 제조업 중심 전략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속도·비용 측면에서 과거보다 훨씬 제약이 큰 것이 현실이다.

주: 자동화 도입이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단순 저임금만으로는 제조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 분명해지고 있다.
국경 없는 일자리를 위한 인재 전략
교육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원격 기반 업무와 디지털 직무가 성장 기회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필요한 기술을 학교 단계에서 체계적으로 길러야 한다. 우선 언어 능력이 핵심이다. 영어는 소프트웨어, 디자인, 데이터 업무 전반에서 기본 의사소통 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영어 능력은 소득과 생산성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따라서 학교는 말하기와 쓰기 훈련을 꾸준히 운영하고, 기술 문제 설명이나 간단한 업무 요청 전달 등 실제 업무를 가정한 과제를 포함해야 한다. 교사 연수 또한 이러한 기준에 맞춰 학생이 짧은 영어 보고와 질의응답을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다음은 포트폴리오 교육이다. 학생은 졸업 시점까지 자신의 작업물을 정리한 자료와 간결한 이력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지역 기업이나 스타트업과 협력한 단기 실습은 실제 업무 흐름을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웹페이지 제작, 데이터 분류, 챗봇 시제품 구현 등 실습 과정은 작업 절차 준수, 지시 사항 이해, 피드백 처리 능력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다. 전문대학은 지도교수 감독 아래 학생이 외부 의뢰를 받아 결과물을 납품해 보는 현장형 작업실을 마련할 수도 있다.
서비스 수출 시대를 위한 정책 기반
서비스 수출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 기반도 중요하다. 지역 단위까지 안정적으로 연결되는 인터넷망과 전력 공급은 이제 핵심 인프라로 간주된다. 세계 서비스 수출의 절반 이상이 디지털 방식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접근성 격차는 결국 인프라 투자 차이에서 비롯된다.
제도적 기반도 함께 정비돼야 한다. 원격 업무가 확산되려면 해외 결제가 저렴하고 빠르며 규정에 부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비대면 본인인증(e-KYC) 기준 마련, 주요 통화를 지원하는 디지털 지갑, 프리랜서와 근로자 구분을 명확히 하는 세제 지침이 필요하다. 노동 당국은 표준계약서를 제공하고 소액 국제 분쟁을 신속히 처리할 절차를 갖추어야 한다. 국가 간 자격 인정과 규제 명확성은 인력이 실제 수출로 이어지는 핵심 조건이다.
임금 체계도 투명성이 필요하다. 일부 기업은 글로벌 단일 임금을 적용하지만, 많은 기업은 지역별 조정 방식을 택한다. 어느 방식이든 기준을 명확히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며, 정부는 플랫폼 노동의 최소 기준을 정비해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교육·훈련 프로그램은 글로벌 수요가 높은 직무에 맞춰 설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국가 차원의 진로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졸업 예정 학생이 온라인 프로필 정리, 제안서 작성, 첫 계약 체결까지 지원받을 수 있어야 한다. 검증된 의뢰인과 연결해 소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해 보는 초기 실습 방식도 적은 예산으로 운영할 수 있다.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시간대 기반 온라인 채용 행사는 새로운 기회를 넓히는 수단이 된다.
제기되는 반론과 그에 대한 대응
디지털 서비스 수출이 새로운 성장 경로로 부상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자동화가 저숙련 서비스 일자리를 줄여 개발도상국의 기회를 압축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서비스 수출은 단일 시장이 아니다. 고객 응대, 현지화, 문화·언어 조정 등 사람의 판단과 감각이 필요한 업무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이미 1조 달러(약 1,473조원) 규모로 성장한 시장 자체가 수요의 확장성을 보여준다.
둘째, 원격 채용이 지역 간 임금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국가 단위 임금 등급제, 직무별 공개 임금대 등 투명성을 높이는 흐름도 확대되고 있다. 실제 임금 수준은 영어 능력, 클라우드 자격, 프로젝트 경험처럼 검증 가능한 역량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확인된다.
셋째, 디지털 격차 때문에 원격 기반 서비스 수출이 구현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충분한 투자가 있다면 개선 가능한 영역이다. 세계적으로 온라인 이용 인구는 계속 늘고 있으며, 미접속 인구도 줄어드는 추세다. 인터넷 인프라, 기기, 기초 디지털 교육에 대한 안정적 예산 확보는 접근성 격차를 좁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세계 교역 구조가 바뀌면서 원격 기반 서비스는 제조업을 보완하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흐름을 활용하려면 인프라, 규제, 교육이 함께 정비돼야 한다. 필요한 기술을 갖춘 인재가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준비에 나선 국가는 기회를 넓히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는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 지금은 각국이 방향을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시점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Factories to Fiber: Why Remote Work and Development Must Rewrite the Trade Playbook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