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꺾인 미국 집값, ‘디플레이션 시계’ 급가속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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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여력 약화+거래량 감소 누적
2년 전 디플레이션 경고 현실화
소비 위축·투자 감소 연쇄 효과 우려

미국 주택 가격이 2년 만에 하락 전환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지연된 조정이 마침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2020년대 초반부터 치솟았던 미국 집값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의 금리 충격과 수요 약화 속에서도 굳건히 버텨왔지만,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약세 흐름을 보이며 자산 가격 조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하락이 2023년부터 제기돼 온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경고의 초기 징후라는 점에 주목하며, 향후 소비 및 투자 위축과 정책 효과 약화 등 디플레이션의 연쇄 효과가 이어질 것이란 우려 섞인 진단을 내놓고 있다.
지역별 편차에도 1%대 하락
11일(현지시각) CNBC는 부동산 데이터 분석기관 파슬랩스(Parcl Labs)를 인용해 미국 주택 가격이 최근 3개월 동안 1.4% 떨어지며 약세 흐름을 보였다고 전했다. 미국 전국 단위 주택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2023년 중반 이후 2년여 만의 일이다. 당시 미국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을 이유로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가 7%대까지 치솟았던 시점이었다는 점을 되짚어 보면, 지금과 같은 금리 인하기의 집값 하락은 단기 수급 요인을 넘어 구매력 저하가 누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번 하락 전환이 특정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광범위하게 나타났다는 점도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파슬랩스는 “팬데믹 기간 급등했던 주택 가격이 고금리 충격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완만한 약세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하며 “금리 급등이 만든 ‘구매력 쇼크’가 소비자들을 시장에서 밀어내고, 거래량 감소가 이어지면서 판매자들이 기대 가격을 낮추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하가 본격화한 환경에서도 가격 조정 압력이 해소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시장 재고 역시 이러한 조정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미국 주택거래 플랫폼 리어터닷컴의 집계에 따르면 11월 미국 내 주택 활성 매물은 전년 대비 13% 늘었지만 신규 매물 증가율은 1.7%에 그쳤고, 기존 매물이 빠른 속도로 철회되기까지 하면서 수급 불균형이 한층 두드러졌다. 전국 평균 하락 폭은 1%대지만, 지역별 편차는 매우 컸다. 텍사스 오스틴은 10%, 덴버는 5%, 탬파·휴스턴은 4%, 애틀랜타·피닉스는 3% 하락한 반면, 클리블랜드는 6%, 시카고·뉴욕은 5%, 필라델피아는 3% 오르며 상승세를 유지했다.
다만 이 같은 집값 조정이 가격 정상화 과정이라는 시각도 일부 존재한다. 부동산 중개 플랫폼 레드핀은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기존주택 매매는 전년 대비 3%가량 증가해 420만 건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하며 “올해 초 모기지 금리가 6%대 후반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금리 인하의 효과 또한 서서히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임금 상승률이 주택가격 상승률을 뛰어넘는 추세를 보이는 등 주택 구매에 따르는 부담 또한 완화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다.
그러나 공급 지표가 수개월째 발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시장 해석을 어렵게 만든다. 주택 착공과 건축허가, 신규주택 판매 등 핵심 지표가 연방정부 셧다운 여파로 공백 상태인 가운데, 주요 건설사들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수요 약세와 판매 인센티브 확대 필요성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연준의 잇따른 금리 인하에도 시장이 미온적인 만큼 단기간에 가격 반등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에서다. 향후 미국 주택시장은 소폭 플러스 또는 마이너스가 반복되는 ‘제로 근처 보합 국면’이 기본 흐름으로 굳어질 것이란 게 시장 전반의 시각이다.
관세발 인플레이션으로 지연되던 흐름 표면화
전문가들 역시 최근의 집값 하락은 2023년부터 제기돼 온 디플레이션 경고가 현실화하는 초기 징후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평가는 당시 내구재 중심의 가격 하락,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둔화, 공급망 정상화 등 여러 지표를 근거로 제기된 위험 신호와 맞닿아 있다. 2023년 하반기 미국 내구재 가격은 다섯 달 연속 하락했고, 근원 PCE 역시 2022년 5.5%에서 2023년 10월 3.5%로 낮아지며 시장의 경계심을 키웠다. 더그 맥밀런 당시 월마트 최고경영자(CEO)가 “몇 달 내 디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언급할 정도로 소비재 수요 약화에 따른 가격 조정 압력은 이미 관측되고 있었다.
예상보다 흐름이 늦어진 배경에는 관세발 인플레이션이 자리한다. 미국이 철강·알루미늄 등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를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중국·멕시코 등에 대한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서 수입물가가 치솟은 탓이다. JP모건은 기업의 절반 정도가 관세 부담을 소비자 가격에 전가할 경우 소비자물가가 최대 0.6%p 오를 것으로 추산했고,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중국·멕시코 대상 강도 높은 관세가 이어질 때 최대 0.9%p의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공급망 정상화로 둔화하던 물가 흐름을 다시 끌어올리는 요인이 됐고, 자산 가격 조정의 시점을 늦춘 최대 요인으로 풀이된다.
관세 인상으로 가계 실질소득이 줄어든 점도 집값 조정이 늦어진 원인 중 하나다. 글로벌 금융그룹 ING는 관세가 소비자에게 모두 전가된다는 가정 아래 1인당 부담이 835달러(약 123만원), 4인 가구 기준 3,242달러(약 492만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생활재 가격 상승이 소비 여력을 압박하는 가운데서도 인플레이션 지표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면서 디플레이션 전환 속도가 더디게 나타날 가능성을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최근의 집값 하락은 관세발 인플레이션이 만들어낸 ‘지연된 조정’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경제 심리 및 활동성 전반 압박 가능성
시장은 디플레이션 연쇄 효과가 현실로 이어지는 흐름을 우려하는 모양새다. 주택 가격 부진이 장기간 지속되면, 가계의 자산 평가액 감소는 소비 위축으로 직결된다. 이미 미국 소비자들은 고금리 환경에서 실질 구매력이 낮아진 상황인데, 이 같은 상황에서 주택시장의 조정이 겹치면 소비 지출 축소 속도가 더 빨라진다. 소비 둔화는 다시 기업 매출 약화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투자 축소를 유발하는 악순환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자산 → 소비 → 투자’로 이어지는 전이 과정은 디플레이션 환경의 특징과 맞물리며 경제 전반의 활동성을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금리 정책의 실효성 저하다. 디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지면, 연준이 금리를 내려도 가계와 기업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난다. 가계는 불확실성 확대 국면에서 현금 보유 성향을 강화하고, 기업 역시 비용 절감 기조를 유지하는 흐름을 보인다. 이 같은 흐름 역시 실물 경제 경직을 부른다. 주택가격 하락이 단순 사이클 조정을 넘어 신용과 시장 심리, 지출 전반을 압박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 내 주요 경제인과 투자자들도 이러한 위험을 강조하며 디플레이션 시나리오를 제기하고 나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이달 초 인터뷰에서 “생각보다 이른 시점에 디플레이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단언하며 “그 과정에서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이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가격 하락 압력을 강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AI 기반 자동화가 재화의 한계 비용을 ‘제로’에 수렴하도록 만들어 기존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저해할 것이란 설명이다. 기술 발전 속도가 공급 증가율을 가파르게 끌어올려 전반적 물가 수준을 낮출 수 있다는 의미다.
암호화폐 기업가이자 투자자인 앤서니 폼플리아노 역시 미국 경제가 여러 디플레이션 요인에 동시에 직면했다고 봤다. 그는 노령화한 노동력과 이민 제한, 관세 등을 수요 억제 요인으로 지목하며 기업의 비용 구조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폼폴리아노는 이를 ‘디플레이션형 호황’이라고 정의하며 “공급 증가 속도가 수요보다 빠른 국면이 열리면서 가격 하락과 경제 성장의 동시 진행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분석은 기술과 인구, 정책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주택시장의 조정과 실물경제의 약화가 맞물리면 디플레이션 압력이 더 넓은 영역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