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너무 커졌다" 업계 호황 속 정체된 조선업 M&A, 대규모 설비 투자 및 日 추격도 부담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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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시장에 누적된 조선업 매물, 소화는 '지지부진' MASGA 기대·슈퍼사이클 속 몸값 불어나며 인수 부담 가중 설비 투자 부담·일본 추격 등 리스크 요인도 산적

조선·기자재 매물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좀처럼 소화되지 않고 있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 등 호재가 누적되며 조선업에 대한 시장 기대가 가중되는 가운데, 업계 호황까지 지속되며 조선 업체들의 몸값이 대폭 뛴 결과다. 여기에 대규모 설비 투자 부담, 일본의 조선업 추격 등도 투자자들의 인수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으로 작용 중이다.
조선업 매물, 새 주인 찾기 '난항'
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재 M&A 시장에 나온 다수의 조선·기자재 매물이 좀처럼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7월 매물로 나온 현대힘스의 경우 매도자 제이앤프라이빗에쿼티가 블록딜(장외매수)을 통해 몸집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우선협상대상자조차 선정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았다. 몇몇 전략적 투자자(SI)와 재무적 투자자(FI)가 조선업 업황 회복에 따른 시너지를 기대하며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최근 대폭 뛴 몸값 탓에 사실상 유의미한 협상 성과는 없었다.
STX엔진도 치솟은 주가에 발목을 잡혔다. 연합자산관리(UAMCO·유암코)는 당초 경영권 지분 통매각을 고려했으나, STX엔진의 몸값이 상승곡선을 그리자 매각 전략을 조정해 여러 차례 블록딜을 진행하며 일부 자금을 회수했다. 이를 통해 잠재 원매자의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STX엔진의 매각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평이 이어지는 중이다. 이에 인수 후보군 역시 사실상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매각에 나선 케이조선의 매각가 역시 갑론을박을 낳고 있다. 현재 매각 주체인 유암코·KHI 컨소시엄 측에서 기대하는 매각가는 1조원대다. 이는 최근 상장한 비슷한 규모의 경쟁사 대한조선의 가치평가에 적용된 PBR(주가순자산비율)를 기준으로 산출한 수치다. 앞서 대한조선은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HD현대미포조선 등 4곳을 비교그룹으로 선정하고,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 이들의 평균 멀티플(4.58배)을 적용했다. 이를 고려해 단순 계산한 케이조선의 기업가치는 1조2,000억원에 이른다. 다만 대한조선 상장 당시에도 대형 조선사인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과 중견 조선사를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평가가 있었던 만큼, 시장이 이 같은 몸값을 인정할지는 미지수다.

조선업 호황 흐름 지속
이들 기업의 몸값이 줄줄이 뛴 것은 마스가 프로젝트 추진 소식 등으로 인해 조선업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이 가중된 영향이 크다. 마스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표적 정치 구호인 마가(MAGA)에 '조선업'을 뜻하는 'Shipbuilding'을 더해 이름 붙인 프로젝트로, 한국 민간 조선사들의 대규모 미국 현지 투자와 이를 뒷받침할 대출·보증 등을 포괄하는 패키지로 구성돼 있다. 한국 조선업계가 안정적인 장기 수주 기반을 마련하고, 글로벌 영향력을 대폭 확대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다만 대미 투자 펀드의 구체적인 구조와 집행 방식이 아직 명확히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은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소다.
HD현대 자회사들의 연이은 상장 행보 역시 이 같은 흐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지난 2024년 5월 8일 증시에 입성했으며, 상장 첫날 16만3,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공모가(8만3,400원)보다 96.52%(8만500원) 뛰어오른 수준이다.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7조2,850억원에 달했다. 1월 6일 12시 30분 기준 주가는 19만4,200원으로 여전히 견조한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이에 더해 지난달 초에는 HD현대로보틱스가 국내외 주요 증권사에 상장 주관사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 투자에서 인정받은 HD현대로보틱스의 기업가치는 1조8,000억원 수준이다.
호황 사이클 역시 조선업에 대한 기대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해 글로벌 선박 발주 전반이 감소했음에도 불구,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을 집중 수주하며 수주 잔고를 확대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127척, 175억8,000만 달러(약 25조3,940억원)를 수주해 연간 목표(180억5,000만 달러)의 97.4%를 달성했다. 삼성중공업은 39척, 69억 달러(약 10조원)를 수주해 목표(98억 달러)의 70%를 기록했고, 한화오션은 51척, 98억3,000만 달러(약 14조2,000억원)를 수주하며 지난해 실적(89억8,000만 달러)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이번 슈퍼사이클이 과거 2007∼2010년 슈퍼사이클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한다. 조선 3사 외 국내 경쟁 업체가 줄어든 가운데, 조선 3사가 전 세계 신(新)조선 발주를 대거 거머쥐며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의 선별 수주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인력 확보로 공정이 정상화되며 공정만회비용이 감소하고, 선박 건조 능력이 향상됐다는 점도 호재다. 여기에 방산 사업도 슈퍼사이클 장기화를 견인할 요소로 꼽힌다. 지난 수십 년간 상선과 해양플랜트를 중심으로 성장하던 대형 조선사들은 최근 미국 등에서 특수선(군함) 시장에 진입하며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높아져 가는 인수 장벽
문제는 조선업체가 시장 호재에 기대 무작정 덩치를 키울 경우, 인수 수요가 오히려 꺾일 수 있다는 점이다. 높아진 인수가에 인수 후 투입될 설비 투자 비용이 더해지면 인수자의 부담이 지나치게 가중되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이미 생산 능력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은 설비 신설·매입에 총 9,445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한화오션은 지난해 4분기에만 7,000억원을 설비 분야에 쏟아부었다. 한화오션은 부유식 도크(선박 건조공간)와 6,500t(톤)급 초대형 해상 크레인 도입을 추진 중이고, 삼성중공업은 올해 투자 금액을 4,300억원으로 책정했다.
일본의 추격 역시 변수다. 지난달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35년 선박 건조량을 2024년의 약 2배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3단계 '조선업 부활 로드맵'을 수립했다. 일본은 지난해 추경 예산을 통해 확보한 1,200억 엔(약 1조1,000억원)을 2026∼2028년 용접 로봇 도입 등에 지원하고, 2029∼2031년에는 도크 등 시설 확충에 나설 예정이다. 이어 2032∼2034년에는 대형 크레인 등 비교적 납기가 긴 설비 투자를 지원한다.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던 일본 조선업은 1974년 1차 오일쇼크 및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 과잉 설비 문제 등으로 두 차례 불황을 겪었다. 이후 일본 조선소들은 고령화와 환경 규제 대응 지연으로 해외 조선소와의 경쟁에서 줄줄이 밀려났고, 현재는 중국과 한국에 이어 세계 3위에 머무르고 있다. 이번에 제시된 설비 투자 지원 계획은 일본이 수십 년 만에 띄운 본격적 승부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