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패권전쟁] "규모도 기술력도 급성장" 중국發 바이오 지각변동 본격화, 기존 강자 美는 '견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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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바이오업계, 글로벌 신약 시장서 주도권 장악 정부 지원·느슨한 규제 발판 삼아 서구권 강자들 위협 "수년 내로 따라잡힌다" 규제·제재로 견제 강화하는 美

중국 바이오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신약 시장의 주도권을 속속 장악하고 있다. 정부의 공격적인 지원과 기업 친화적인 현지 시장 환경을 발판 삼아 양적·질적 성장을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중국의 맹추격으로 입지를 위협받게 된 '바이오 강국' 미국은 각종 제재를 앞세워 중국 바이오산업의 성장세를 견제하고 나섰다.
中 바이오산업의 질주
26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단순한 기술 복제 단계를 넘어 차세대 항암제와 유전체 치료제 분야에서 서구권 기업들을 밀어내고 글로벌 제약사의 핵심 파트너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전 세계 신약 개발 생태계의 재편을 야기할 구조적 변화라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 바이오 기업들은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추세다. 현재 중국에는 8,000개가 넘는 생명공학 기업이 활동 중이며, 이 가운데 70개 이상이 홍콩 증시에 상장돼 있다. 질적 성장세도 뚜렷하다. 최근 중국 바이오업계는 항체-약물 접합체(ADC)와 소간섭리보핵산(siRNA) 등 고난도 신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에 따르면 현재 초기 임상 단계에 진입한 전 세계 신규 ADC 후보 물질 중 50% 이상이 중국 기업의 제품이다.
이처럼 중국 바이오 산업이 급격히 성장한 배경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다. 중국 정부는 2015년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2016년 ‘헬시(Healthy) 차이나 2030’ 등을 발표하며 관련 산업에 지속적인 자금 지원을 실시해 왔다. 신속심사제도, 바이오테크 클러스터 인센티브, IPO 개혁, 묵시적 승인 절차 도입 등 정부 주도 혁신을 통해 제도적인 성장 기반 마련에도 힘썼다. 그 결과 중국 바이오 산업계는 창업 문턱이 낮고 의사 결정이 빠른 기업 친화적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일부 서구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중국 내 임상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정도다.
바이오 패권국 美 '비상'
중국 바이오 생태계가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글로벌 빅파마(거대 제약사)들은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강하기 위해 서구권이 아닌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중국 기업이 체결한 라이선스 계약은 100건을 넘어섰으며, 전체 거래 규모는 850억 달러(약 122조원)에 달했다. 구체적 거래 사례를 살펴보면, 노바티스는 지난해 9월 중국 바이오 기업 아르고와 52억 달러(약 7조4,900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siRNA 기술력을 확보했다. 영국 GSK는 지난 14일 장쑤헝루이제약과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치료제 등 12개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해 최대 120억 달러(약 17조3,000억원) 규모의 협력 계약을 맺었다.
기존 바이오 패권국인 미국은 이 같은 상황을 명백한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 의회 자문 기구인 신흥 바이오 기술 국가안보위원회(NSCEB)는 종합 보고서를 발간하고, 중국 의약품이 2040년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의 35%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아울러 미국 정부가 자국 바이오 산업 성장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정책을 채택하지 않을 경우, 중국의 바이오 분야 경쟁 우위가 곧 극복할 수 없는 격차로 확장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이 글로벌 바이오 가치사슬 전반을 장악 중이며, 미국을 추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년 수준까지 단축됐다는 지적이다.
NSCEB는 지난 13일 연방정부 전반의 생명공학 규제 현대화 및 심사 절차 신속화를 위한 분석 보고서와 함께 총 83개의 정책 제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83개의 정책 제안은 정부 전반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30개 과제와 제품 분야별 특성을 반영한 53개 세부 과제로 나뉜다. 우선 의료 제품 분야에서는 FDA의 규제 체계가 핵심 개선 대상으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현재 규제가 저분자 의약품 중심의 과거 틀에 머물러 있어 세포·유전자 치료제와 같은 최신 기술 흐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짚었다.
농업과 산업 바이오 분야에 대한 제안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식물 분야에서는 여러 기관에 나뉘어 있는 중복 규제를 정리해 소규모 특수 작물 개발자들이 겪는 행정 부담을 낮추자는 내용이 담겼고, 미생물 분야에서는 파편화된 심사 체계로 인해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유전자 편집 미생물에 대해 보다 예측 가능한 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동물 생명공학 분야의 경우 현행 절차가 실제 산업 환경과 맞지 않아 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꼽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바이오 제재
행정부 차원의 대중 견제도 지속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2월 ‘미국 우선 투자 정책(America First Investment Policy)’ 각서를 발표하고, 국가·경제 안보 차원에서 특정 전략 산업의 대외 투자 제한을 공식화했다. 해당 문서는 ‘해외 적대국’을 겨냥해 인바운드(해외기업의 미국 투자)와 아웃바운드(미국기업의 해외 투자) 모두를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 헬스케어와 바이오 역시 투자 제한 대상에 명시적으로 포함됐고, 의약품과 신약 개발 분야 전반에 걸친 규제 압박이 확대됐다.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비롯한 적대국이 미국의 개방된 과학·규제 시스템 허점을 활용했다고 지적, 의약품 허가와 라이선스 거래에 엄격한 제한을 가하는 행정명령 초안을 배포하기도 했다. 초안에는 △중국 바이오 기업으로부터 의약품을 허가받으려는 미국 제약사에 대한 국가 안보 차원의 심사 △중국 임상시험 데이터 제출 기업의 규제 수수료 인상 △FDA의 중국 임상 자료 검토 강화 △아세트아미노펜 등 중국 의존도가 큰 의약품의 미국 내 생산 촉진 △미국 생산 제품에 대한 정부 구매 우대 등의 방안이 포함됐다.
지난달 미국 의회를 통과한 국방수권법안(NDAA)에도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견제하는 '생물보안법' 성격의 조항이 담겼다. 생물보안법은 미국인의 개인 건강과 유전 정보를 우려 기업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발의된 법안으로, 중국 최대 유전체 회사 BGI그룹과 관계사의 미국 내 사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법안은 2024년 1월 발의돼 같은 해 9월 미국 하원을 통과했으나, 2024년 말 상원 표결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NDAA는 생물보안법과 달리 '우려 바이오 기술 제공자'와의 계약을 제한할 뿐, 특정 중국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이에 업계는 미국 정부가 중국 바이오 기업을 즉각 배제하기보다는 '단계적 전환'을 통해 중국 바이오 기업의 구조적 의존도를 낮추는 방식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법안에는 최대 5년의 유예 기간이 명시됐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 기업과의 거래를 즉각 중단하기보다는 공급망 전환을 점진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설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