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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밀리던 임금’ 반전 신호탄, 일본 실질임금 13개월 만에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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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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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실질 구매력 마이너스 행진 끝내
日 정부 “실질임금 1% 상승” 목표 전략
통화 정책 환경 변화, 금리 인상 가시화

일본 근로자의 실질임금이 1년 1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되면서 가계의 체감 구매력 또한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간 일본에서는 명목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흐름이 장기간 이어졌는데, 이번 실질임금 반등으로 일본은행의 통화 정책 경로에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엔화 가치가 장기간 약세 흐름을 이어온 상황에서 임금·물가 흐름의 반전 신호가 나타나면서 향후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물가 상승이 실질 구매력 압박

9일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근로통계조사에 따르면 1월 일본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은 전년 동월 대비 1.4% 증가해 13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다. 명목임금에서 물가변동의 영향을 뺀 실질임금은 근로자의 실제 구매력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활용된다. 기본급이나 잔업수당 등을 합한 현금 급여 총액(명목임금)은 같은 기간 3.0% 증가해 30만1,314엔(약 284만원)을 기록했다. 이 중 기본급을 중심으로 한 정규 내 급여 역시 3.0% 증가해 1992년 10월(3.1% 증가) 이후 33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세부 지표를 보면, 물가 흐름이 실질임금 반등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일본 총무성이 집계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가운데 자택 소유자의 귀속 임대료를 제외한 종합 지수는 1.7% 상승해 이전보다 상승 폭이 둔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귀속 임대료를 포함해 계산한 소비자물가지수 기준 실질임금도 전년 동월 대비 1.6% 증가하며 2개월 연속 플러스 흐름을 유지했다. 고용 형태별 명목임금에서도 상승 흐름이 확인된다. 정규직 등 일반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38만9,218엔(약 366만원)으로 전년보다 3.3% 증가했고, 파트타임 근로자의 임금 역시 2.6% 늘어난 11만1,923엔(약 105만원)으로 집계됐다. 

그간 일본에서는 명목임금이 소폭 상승하는 흐름이 이어졌지만 식료품과 생활물가 상승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실질 구매력이 줄어드는 현상이 반복됐다. 지난해 일본 내 직원 5명 이상 사업장 노동자 1인당 평균 명목임금은 월 35만5,919엔(약 335만원)으로 전년 대비 2.3% 늘었다. 그러나 물가 변동을 반영한 실질임금은 전년보다 1.3% 감소해 4년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작년 12월 실질임금 역시 전년 동월 대비 0.1% 감소하며 12개월 연속 감소 흐름을 보였다. 임금이 오르더라도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구조가 이어졌다는 의미다. 

지난해 7월 실질임금이 전년 대비 0.5% 상승하며 7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한 사례도 있었지만, 이는 여름 보너스와 기업 임금 인상 효과가 동시에 작용한 일시적 반등 성격이 강했다. 당시 현금급여 총액은 41만9,668엔(약 394만원)으로 전년 대비 4.1% 증가했는데, 이 가운데 약 60%는 보너스 등 특별급여 증가가 차지했다. 특별급여는 12만8,618엔(약 121만원)으로 7.9% 증가했으며 기본급과 정기수당을 합친 급여는 27만827엔(약 254만원)으로 2.5% 늘었다. 다만 그러는 동안에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3.6%에 달해 실질 구매력을 압박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생활물가 상승은 가계의 체감 경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2월 일본의 품목별 소비자물가를 보면 쌀 가격이 전년 동월 대비 90.7% 급등하며 두 배 수준으로 뛰었고, 초콜릿 가격 역시 51.0% 올랐다. 여기에 닭고기 가격도 9.3% 오르는 등 주요 식품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실질임금이 플러스로 전환한 것은 일본 경제가 물가 상승이 임금 증가를 잠식하는 국면에서 벗어난 단면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실질임금의 개선 흐름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임금 상승 폭이 물가 상승률을 안정적으로 상회하는 구조가 굳어져야 하는 만큼, 가계의 지속적인 구매력 확대로 이어질지는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주된 시각이다. 

 “생산성 개선 통한 임금 상승” 계획 

실질임금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정부의 정책 전략도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6월 일본 정부는 중장기 성장 전략인 ‘새로운 자본주의 실행계획’을 통해 임금 인상을 경제 정책의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실질임금을 안정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29년도(2029년 4월∼2030년 3월)까지 실질임금을 연 1% 수준으로 상승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명목임금 상승에도 가계의 체감 구매력이 개선되지 않는 흐름을 바꾸기 위해 정부가 임금 상승 목표를 제시하고, 임금 인상 환경 조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됐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대규모 설비 투자 확대를 선언했다. 정부와 민간의 설비 투자 규모를 2030년에는 135조 엔(약 1,270조원), 2040년에는 200조 엔(약 1,880조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투자 확대를 통해 기업 생산성을 높이고, 이를 다시 임금 상승으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동시에 일본 정부는 지역 경제에서 비중이 큰 공공사업과 정부 위탁 사업 역시 물가 상승을 반영해 사업 규모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이는 정부 지출이 임금 인상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조치로 해석된다.

최저임금 정책도 중요한 축으로 제시됐다. 일본 정부는 현재 시간당 1,055엔(약 9,900원) 수준인 최저임금을 2029년까지 1,500엔(약 1만4,000원)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는 음식업, 숙박업, 운송업 등 노동집약 산업에서 임금 상승 압력을 높이는 효과를 의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아울러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생산성 향상을 지원하는 ‘정책 패키지’를 마련했다. 자국 노동시장에서 중소기업과 소규모 사업자가 전체 고용의 약 70%를 차지한다는 점을 고려해 중소기업 경영 혁신과 설비 투자 지원을 통해 임금 인상 여력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일본 노동시장에서 임금 인상 흐름 자체가 확대된 상황 역시 이러한 정책이 일부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지난해 봄 임금 협상인 ‘춘투(春闘)’에서 평균 임금 인상률은 5.32%, 중소기업 노조 기준 4.93%로 집계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업의 수익 전망이 대외 변수에 큰 영향을 받는 까닭이다. 특히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는 일본 제조업 수익성과 직결되는 요인으로 꼽힌다. 메이지 야스다 종합연구소의 요시카와 유야 연구원은 “일본 정부가 제시한 실질임금 상승 목표는 현실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기업 생산성 개선과 임금 상승 흐름이 동시에 형성되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금리 정책 전환 환경 조성

시장은 실질임금 상승이 일본은행의 금리 정책 변화의 토대가 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각국 중앙은행은 임금과 물가의 움직임을 통화 정책 판단의 핵심 지표로 삼는다. 일본은행 역시 기업의 임금 인상이 판매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그 가격 상승이 다시 다음 임금 인상의 재원이 되는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 형성 여부를 통화정책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바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12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 정책금리를 0.25%p 인상해 0.75%로 끌어올렸다. 

당시 일본은행은 성명에서 “기업들이 임금 인상에 따른 비용을 판매가격에 전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는 추세”라면서 “임금과 물가가 모두 완만하게 상승하는 메커니즘이 유지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일본은행은 “전국 33개 본·지점을 통해 실시한 기업 설문에서는 31개 지역에서 내년도 임금 인상률이 전년보다 높거나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결과를 확인했다”고 부연했다. 1995년 이후 30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한 금리 환경의 배경에는 임금과 물가의 동반 상승 흐름이 자리한 셈이다. 

나아가 일본은행은 “물가 변동을 반영한 실질금리가 상당 기간 마이너스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정책금리가 일정 수준 상승하더라도 경제 활동을 제약하는 수준까지 통화 환경이 긴축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와 함께 일본은행은 향후 정책금리 인상 경로 역시 경제와 물가 흐름에 맞춰 조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정책금리를 어느 수준까지 올리는 것이 적절한지는 중립금리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행은 중립금리 추정 범위를 1%에서 2.5% 사이로 제시하고 있다.

엔화 가치 흐름 역시 금리 정책 환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1월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67.73로 1973년 변동환율제 전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 나라 통화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은 그 수치가 낮아질수록 통화 가치 또한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엔화의 실질 가치가 장기간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일본 경제가 오랜 저성장 국면을 지나왔음을 시사한다. 최근 일본의 실질임금 반등은 이러한 환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며, 시장에서는 추가적인 금리 인상 여건이 형성됐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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