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 보이지 않는 가격 차별, 디지털 시장의 신뢰가 흔들린다
입력
수정
개인화된 가격 책정 확산, 표시가격 개념 약화 소비자 취약성 겨냥 구조로 이동 공시 한계 속 ‘보편적 가격권’ 도입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장의 가격 책정 방식이 소비자별로 다른 가격을 적용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요일이나 계절에 따른 항공권·호텔 요금 차이나 학생 할인, 성수기 할증처럼 누구나 인지할 수 있는 ‘집단 단위 차등’이 핵심이었지만, 지금은 가격을 매기는 기준 자체가 ‘개인’ 단위로 쪼개지는 더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진다.
판매자는 위치 정보와 검색 기록, 접속 기기, 이용 행태 등을 바탕으로 사람마다 다른 가격을 제시한다. 눈에 보이던 가격 차별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바뀌는 셈이다. 이 변화는 기술 진보를 넘어 시장의 신뢰 기반을 흔든다. 실제로 유럽연합(EU) 온라인 쇼핑 이용자의 93%는 맞춤형 광고와 데이터 수집 방식에 우려를 나타냈다. 데이터 기반 가격 책정이 확산될수록, 거래의 기준처럼 여겨졌던 표시가격의 의미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감시 기반 가격 책정 확산
개인화된 가격 책정(personalized pricing) 방식을 쿠키 삭제나 시크릿 모드 같은 이용 요령으로 피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일시적 대응에 그칠 뿐,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 못한다. 기업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별 가격을 하나의 구조로 고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개인별 가격 책정 구조를 운영하는 주요 기업들을 조사했다. 이듬해 공개된 결과를 보면 기업들은 정밀 위치 정보와 검색 이력은 물론 마우스 움직임까지 활용해 개인별로 다른 가격과 옵션을 내놓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시장 전반에서 가격 차별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가격 차별
모든 가격 차별이 악은 아니다. 소비자는 혜택에 따른 요금제 차등이나 국가별 가격 설정을 비교적 수용해 왔다. 항공사나 헬스장처럼 예약 시점과 조건에 따라 가격을 구분하는 방식은 시장을 나누는 명확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개인화된 가격 책정이 시장 요인과 개인 요인의 경계를 흐린다는 데 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긴급한 상황이나 사회경제적 특성을 추정해 가격을 조정한다. 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에 소비자를 추적하며 축적된 데이터가 개입하는 구조다. 일부 연구에서는 쿠키에 따른 즉각적인 가격 차이가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가격 차별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차별이 더 복잡하고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항공 산업은 이런 흐름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분야다. 항공사들은 기존의 단순한 고객 구분을 넘어, 검색 상황과 이용 패턴을 반영해 맞춤형 상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수천억 달러 규모의 시장에서는 소비자의 지불 의사를 조금만 더 정밀하게 파악해도 막대한 수익 차이가 발생한다. 2024년 경제 학술지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에 실린 연구도 개인별 가격 책정의 효과가 시장 경쟁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시장 집중도가 높거나 가격 비교가 어려운 구조일수록, 소비자에게 돌아갈 몫은 기업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효율성 명분 뒤 숨은 소비자 취약성 확대
일부 기업은 개인화된 가격 책정이 수요와 공급의 간극을 줄이고, 가격을 더욱 정교하게 조정해 시장 효율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데이터를 활용해 가격을 세분화하면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전체 후생이 늘어난다는 논리다. 일정 부분 설득력은 있다. 실제로 기존 연구도 차별적 가격이 획일적인 가격보다 판매량을 늘리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가격 구조가 불투명하고 소비자가 이를 비교하거나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효율성만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기업이 소비자의 긴급한 상황이나 정보 격차를 추정해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시장 신호에 따른 반응이라기보다 ‘취약성’을 겨냥한 접근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시장은 제한적인 효율을 얻는 대신 사회적 신뢰를 잠식한다. 결국 거래의 전제가 되는 협상력의 균형도 크게 기울어진다.
보편적 가격권 논의 필요
현재 알고리즘을 활용한 가격 책정 관련 규제는, 그 사용 여부를 알리는 공시에 집중돼 있다. 정보를 제공하면 시장이 스스로 자정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방식만으로는 소비자 행동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 비교할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받는 경고는 실제 선택이나 대응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이제는 데이터 프로파일링에 좌우되지 않고 공정한 값을 지불할 ‘보편적 가격권’을 법적 원칙으로 검토할 시점이다. 이는 모든 가격 변동을 막자는 주장이 아니라, 가격 형성의 기준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경계를 다시 설정하자는 취지다. 공급 상황이나 판매 시점처럼 객관적 시장 조건에 따른 조정은 인정하되, 개인의 취약성을 겨냥한 은밀한 프로파일링 기반 가격 인상은 제도적으로 제어할 필요가 있다.
개인화된 가격 책정은 소비자의 숨겨진 특성까지 가격에 반영한다. 이는 시장의 기본 질서를 흔드는 변화다. 데이터 기반 개인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문제 해결을 개인의 이용 요령에만 맡겨서는 한계가 뚜렷해진다.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가격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시장을 방치할 경우,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공정 거래의 기준도 점차 약해지게 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Personalized Pricing and the End of the Posted Pric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