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버블 공포에 변화하는 투자 기준, 성장 아닌 ‘수익성’에 방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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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F의 AI 투자 접근, 수익성 중심으로 전환 실물 기반 안정 수요 선호 흐름 뚜렷 빅테크 부채 구조 급팽창, AI 버블 우려 고조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이 지속되며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중심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지만,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은 시장과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다. AI 기술 자체보다는 AI 도입으로 수익 구조가 강화되는 자산에서 투자 기회를 찾는 모습이다. 과열된 밸류에이션과 급증한 차입 부담이 맞물리며 시장 전반에 버블 경계심이 확산하는 가운데, 자본의 잠재적 손실 가능성을 차단하고 재무적 안전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분석된다.
AI '수익 구조'에 베팅하는 사모펀드들
1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근 글로벌 PEF 운용사들은 생성형 AI 기업에 투자할 때 단순 성장성이 아닌 수익화 가능성을 기준으로 선별 투자에 나서는 흐름이 뚜렷하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PEF 운용사 블랙스톤은 지난달 생성형 AI 스타트업 앤스로픽에 2억 달러(약 2,950억원) 수준의 투자를 집행했다. 이로써 앤스로픽에 대한 블랙스톤의 누적 투자액은 10억 달러(약 1조4,700억원)로 확대됐으며, 해당 기업의 기업가치는 3,500억 달러(약 515조7,600억원) 수준으로 평가됐다.
앤스로픽은 기업용 AI 모델 '클로드'를 기반으로 업무 자동화와 개발 지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며 빠르게 상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기업이다. 특히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한 구독형 모델을 통해 매출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엔터프라이즈 수요를 기반으로 수익화 구조를 구축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블랙스톤 외에 가장 눈에 띄는 활동을 하고 있는 곳은 퍼미라다. 퍼미라가 투자한 클라우드 기반 금융 소프트웨어 기업 클리어워터는 대규모 금융 데이터를 처리하고 규제 보고를 담당하는 핵심 시스템으로, 고객 이탈이 어려운 높은 락인(Lock-in) 구조를 갖추고 있다. 데이터 축적이 성능으로 직결되는 특성상 AI 도입이 확대될수록 서비스 가치와 수익성이 동시에 강화되는 구조인 셈이다.
퍼미라의 또 다른 포트폴리오사인 교육 행정 플랫폼 더키 역시 유사한 사례로 꼽힌다. 더키는 학교 등 고객이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고 있으며, 학생 수 기반 과금 구조를 통해 AI 기능 확장 시 매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인프라 투자도 같은 흐름이다. 퍼미라의 데이터센터 플랫폼 플릿과 같은 자산은 AI 수요 증가에 따른 직접적인 수혜를 받는 동시에 장기 계약 기반의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제공하고 있다.
AI가 대체 못 할 비즈니스로 투자 이동
PEF업계 일각에서는 기존 핵심 투자처였던 소프트웨어(SaaS)에서 산업재·인프라 등 실물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도 포착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HALO(Heavy asset, Low obsolescence)' 트레이드라 부른다. 자본 투입 규모는 크지만 기술 변화로 빠르게 가치가 훼손될 가능성은 낮은 자산을 뜻하는 개념으로, 최근 글로벌 투자 환경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양상이다.
HALO는 말 그대로 '무거운 자산이지만 오래 쓰는 자산'이다. 산업재, 에너지, 전력망, 데이터센터, 광물 등 물리적 기반을 갖춘 자산군이 대표적이다. 이들 자산은 성장성 측면에서는 소프트웨어 대비 제한적일 수 있지만, 기술 변화에 따른 대체 위험이 낮고 장기적인 수요가 비교적 명확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서는 이러한 특성이 오히려 프리미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베인캐피탈, 브룩필드, 블랙스톤 등 글로벌 대형 PEF들은 최근 소프트웨어 투자에 대한 접근 방식을 재검토하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는 산업 기반 자산을 둘러싼 대형 거래도 이어지고 있다.
반면 소프트웨어 투자 시장은 둔화세가 역력하다. 기업 매각과 기업공개(IPO)가 지연되거나 보류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엑시트(투자금 회수)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보유자산 평가 부담도 확대되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소프트웨어 투자 비중을 크게 늘려온 PEF들의 경우 포트폴리오 전반의 재평가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영향은 에쿼티 투자에 그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기업을 기반으로 한 레버리지바이아웃(LBO) 구조가 흔들리면서 크레딧 시장까지 부담이 확산되고 있다. 소프트웨어 기업 대출은 높은 레버리지 구조를 갖는 경우가 많아, 밸류에이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투자자들의 리스크 회피 성향이 빠르게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의 판단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이번 흐름은 '무엇에 프리미엄을 줄 것인가'에 대한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최근 글로벌 투자 시장에서는 고성장 스토리보다 '실체가 있는 자산'과 '확실한 수요 기반'을 더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AI 투자 광풍 속 '버블' 공포
PEF들이 AI 관련 사업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가장 큰 이유는 AI 기술에 대한 버블 우려다. 이전의 빅테크 기업은 자금 조달 방식은 보통 내부 잉여현금흐름에 의존했지만 최근에는 AI 기술 개발을 위해 데이터센터를 대규모로 도입하면서 전례 없는 규모의 외부 부채 조달 체제로 바뀌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글로벌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세계 정부 및 기업의 총차입 예정액은 2024년 대비 17% 증가한 29조 달러(약 4경2,70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OECD 회원국의 중앙정부 국채 발행액만 18조 달러(약 2경6,500조원)로 추정됐다. 이 가운데 78%는 기존 부채를 갚기 위한 차환 목적으로 발행될 예정이다.
여기엔 그동안 막대한 현금 창출 능력을 자랑하던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클라우드 인프라를 운영하는 빅테크)들이 대규모 차입자가 된 영향이 크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알파벳(구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텐센트, 알리바바, IBM, 오라클(Oracle) 등 9개 주요 하이퍼스케일러가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조달한 금액은 1,220억 달러(약 179조7,500억원)에 달했다. 전 세계 모든 기술 기업이 발행한 전체 채권 규모의 45%에 이르는 규모다.
빅테크들은 채권 발행 확대에 그치지 않고 복잡한 기법까지 동원해 자금을 끌어 모으고 있다. 루이지애나주에서 건설 중인 메타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하이페리온’ 프로젝트(총 사업비는 300억 달러)가 대표 사례다. 메타가 돈을 끌어오는 방식은 '프랑켄슈타인'형 조달의 전형이다. 신체 부위 여기저기를 이어붙인 것처럼 사모펀딩(사모방식 지분 출자)과 회사채, 부동산업계의 전유물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다양한 기법이 결합됐다. 이렇게 복잡한 기법이 동원된 것은 메타의 기존 부채가 적지 않아서다. 메타는 이미 지난해 10월 자체 사업 용도로 300억 달러(약 44조2,000억원)를 회사채로 조달한 바 있다.
이 같은 천문학적 자본지출이 현금흐름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없지만, 이들 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은 이미 정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지출은 관련 매출이 급증하지 않는 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현재의 투자가 정당화하려면 미래 관련 매출이 급증해야 한다. 미국계 PEF 베인캐피털은 데이터센터 투자 비용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빅테크들이 2030년까지 연간 2조 달러(약 2,950조원)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챗GPT가 출시된지 3년여가 지난 지금, 이들 기업의 AI 관련 매출은 200억 달러로 추정된다. 현재보다 매출이 100배 이상 늘어야 투자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요를 웃도는 공급이 형성될 경우, 기업들은 과잉 생산 설비 확충에 투입했던 막대한 자금의 후폭풍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기업가치는 쪼그라들고 자본투자를 위해 부채를 발행한 기업들은 파산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현재의 AI 투자 열풍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AI 수요가 장기적으로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에는 큰 이견이 없지만, 해당 수요가 실제 매출과 이익으로 전환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