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청산가치] "메리츠·MBK 추가 지원 불투명" 암초 부딪힌 홈플러스 기업회생, 때 놓친 구조조정 계획에 청산론까지 고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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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츠, 홈플러스 브릿지론·DIP 지원 요청에 난색 연대보증 거부한 MBK, 이미 지분 무상 소각·1,000억원 DIP 집행 적기 놓친 구조조정, 익스프레스 매각 대금 유입 이후 청산 가능성

홈플러스의 기업회생 계획이 암초에 부딪혔다. 채권단을 이끄는 메리츠금융그룹(이하 메리츠) 측이 긴급운영자금대출(Debtor-In-Possession, DIP)과 브릿지론 제공에 난색을 표하는 가운데,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마저 메리츠의 연대보증 요청을 거부하며 추가 자금 확보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홈플러스는 향후 구조조정 및 제3자 매각을 통해 회생을 마치겠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에서는 홈플러스가 이미 구조조정 적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신중론 고수하는 메리츠
17일 홈플러스는 입장문을 통해 “메리츠가 주요 자산 대부분을 담보신탁으로 확보하고 있어 자체적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며 “현시점에서 긴급운영자금을 대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메리츠”라고 밝혔다. 실제 메리츠는 홈플러스의 전국 핵심 점포 62개를 비롯한 부동산 자산의 신탁 수익권을 담보로 잡은 상태다. 담보 규모는 4조8,000억~5조원으로, 지난 2024년 5월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 메리츠캐피탈이 홈플러스에 내준 대출금(1조2,000억원)의 4배에 달한다.
홈플러스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부문인 익스프레스 매각 잔금 입금 시점까지의 브릿지론과 회생 완료 시까지의 DIP 지원을 메리츠에 요청했다. 아울러 자금난 속 남은 67개 매장마저 영업이 중단될 경우, 회생 절차 유지가 어려워지고 청산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청산 시 메리츠는 담보를 통해 채권 회수가 가능하겠지만, 후순위 채권자의 회수율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직원 고용 불안 △입점업체 피해 △지역 상권 위축 등 사회적 충격도 확대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메리츠는 자금 지원에 앞서 확실한 보증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홈플러스의 주주가 아닌 채권자의 위치인 만큼, 섣불리 자금을 지원하면 자사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혀 배임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메리츠 측은 브릿지론 실행 조건으로 익스프레스 매각 대금 확보 즉시 조기 상환을 요구했고, 기존 DIP 대출과 유사한 수준의 6%대 이자율과 대주주인 MBK 및 경영진 개인의 연대보증도 조건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MBK는 해당 거래에 대한 보증을 거부했다고 전해진다.
MBK, 이미 대주주 책임 이행
시장에서는 향후 MBK·메리츠가 홈플러스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에 나설 확률은 사실상 낮다고 본다. 우선 MBK는 이미 홈플러스와 관련해 막대한 손실을 떠안은 상태다. 지난해 6월 신규 투자자 유치와 채권단 설득을 위해 보유 중이던 홈플러스 보통주 2조5,000억원어치를 전량 무상 소각하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예다. 경영 실패 책임이 있는 기존 대주주 지분을 없앤 뒤 새 투자자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전형적 회생형 인수·합병(M&A) 전략을 채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MBK는 경영권과 잔여 재산 분배 권리 등을 모두 포기하게 됐다.
이후로도 자금 지원은 지속됐다. 지난 2월 MBK는 1,000억원 규모의 DIP 선투입 방침을 처음 공개했으며, 3월 서울회생법원이 회생계획안 가결 시한을 연장하자 2차례에 걸쳐 약속했던 규모의 DIP를 실제 집행했다. 이 과정에서 김병주 MBK 회장은 서울 한남동 자택 등 개인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기도 했다. MBK는 회생 절차가 최종 무산되더라도 해당 자금에 대한 상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금융권에서는 MBK가 일련의 조치를 통해 대주주의 책임을 상당 부분 이행한 만큼, 향후 추가 부담을 짊어지기보다는 회생 절차 결과 및 채권단 판단을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메리츠의 경우 이전부터 홈플러스 지원에 대한 신중론을 펼쳐 왔다. 앞서 지난 1월 홈플러스와 MBK는 총 3,000억원 규모 DIP를 MBK·산업은행·메리츠가 각각 1,000억원씩 분담하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메리츠가 홈플러스에 자금을 지원해야 할 명시적 의무는 없지만, 고금리 대출을 통해 홈플러스로부터 막대한 이자 수익을 올린 만큼 인도적 차원에서 DIP를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조성된 것이다. 다만 메리츠는 회생 계획의 보완 필요성 등을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했으며, 현재까지도 실질적인 지원에 나서지 않은 상태다.

구조조정 계획 현실성 낮아
대주주와 대표 채권자의 추가 자금 지원 여부가 불투명해진 가운데, 홈플러스 측은 기존 회생계획안보다 강화된 수정 회생계획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정안에는 점포 운영 효율화, 일부 점포 영업 중단, 잔존 사업 부문 M&A 추진 방안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대형마트·온라인 사업 부문을 대상으로 2차 구조조정을 추진해 남은 사업 부문의 경쟁력을 개선한 뒤, 제3자에 홈플러스를 매각해 회생 절차를 종결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관련 업계에서는 홈플러스가 이미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쳤다는 비판에 힘이 실린다. 이커머스의 급성장으로 대형마트 산업이 장기 침체 국면에 진입했음에도 불구, 홈플러스는 수익성이 낮은 점포들을 처분하지 않은 채 점포 중심 사업 구조를 유지해 왔다. MBK 인수 이후 일부 점포 매각이 이뤄졌지만 이마저도 충분치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회생 직전까지도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서기보다는 사실상 '버티기'에 가까운 경영을 이어간 것이다.
노동조합의 압박 역시 구조조정의 대표적인 걸림돌로 꼽혔다. 이 같은 문제가 두드러지는 사례가 익스프레스 매각이다. 노조는 지난해부터 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홈플러스 및 익스프레스 분리 매각에 반대해 왔다. 2024년 1조원에 육박했던 익스프레스의 가치는 매각 적기를 놓치면서 나날이 하락했고, 결국 지난 7일 체결된 NS쇼핑과의 영업양도계약에서는 1,206억원까지 미끄러졌다. 이는 회생 계획 이행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다. 홈플러스 자체 회생계획안 기준 필요 자금은 약 6,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향후 홈플러스가 추가 구조조정이 아닌 파산·청산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온다. 익스프레스 매각 대금 외에 대규모 현금 유입원이 사실상 마땅치 않으며, 해당 자금마저도 협력업체 대금·임금 등 당장의 빚을 청산하는 데 쓰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메리츠 측이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추가 자금 지원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메리츠가 자금 집행에 나선다면 법적으로 파산 절차가 진행돼 기존 주주 권리가 소멸하고, 채권자가 실질적인 통제권을 넘겨받게 되는 때일 것"이라며 "다만 이 역시 임금·상거래 채권 등 필수 정산 성격에 가까울 뿐, 기업 존속 자체를 위한 적극적 지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