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MEMO] 美 AI 수출통제, 동맹의 비용을 외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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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I 수출통제로 동맹국의 경제적 부담 확대 AI 메모리 호황은 일시적 보상 동맹국 부담 반영한 보상 체계 제도화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지난해 1,308억 달러(약 196조원)에 달했다.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과의 교역 여건이 악화하면서 미국의 인공지능(AI) 수출통제에 따른 한국 기업의 부담도 한층 커졌다. 미국은 첨단 AI 기술의 중국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동맹국의 협조를 요구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 축소와 투자 제약, 생산시설 운영 부담 등 상당한 기회비용을 감수하고 있다.
그러나 AI 투자 확대에 따른 메모리 시장 호황은 이러한 부담을 일정 부분 상쇄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8조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에서 지난해 47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실적이 크게 개선됐다. 미국을 중심으로 AI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메모리 수요가 급증했고, 이는 수출통제에 따른 부담을 흡수하는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러한 효과가 시장 상황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이다. 메모리 경기 둔화와 미국의 정책 변화가 맞물리면 현재의 균형도 흔들릴 수 있다. 결국 AI 수출통제가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동맹국이 부담하는 경제적 비용과 기회비용을 합리적으로 평가하고, 이에 상응하는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수출통제에 따른 공급망 전반에 부담
AI 수출통제를 둘러싼 논의는 미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규제의 영향은 미국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전반으로 이어진다. 미국은 소프트웨어와 반도체 설계자산(IP), 반도체 제조장비 공급망을 기반으로 수출통제 체계를 주도하고 있지만, 규제에 따른 비용은 동맹국 기업도 함께 부담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과 일본, 네덜란드, 대만이다. 한국은 첨단 AI 반도체에 필요한 메모리를 공급하고, 일본과 네덜란드는 핵심 반도체 장비를 생산한다. 대만은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를 담당하고 있다. 국가마다 부담하는 비용은 다르지만, 시장 접근성과 투자 여력, 수익성 일부를 희생해야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미국에는 제한적인 조치로 보일 수 있지만 동맹국 기업에는 생산·투자 전략 전반을 재검토해야 하는 부담이 된다. AI 수출통제는 최첨단 반도체를 넘어 규제 대상을 빠르게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은 지난해 12월 일부 HBM를 수출통제 대상에 포함한 데 이어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통해 자국 수출통제의 역외 적용 범위도 확대했다. 올해 5월에는 중국계 기업이 해외 법인을 통해 AI 기술에 접근하는 경우에도 허가 규정을 적용한다는 지침을 발표하며 규제 범위를 넓혔다.

동맹국까지 번지는 AI 수출통제 여파
규제 범위가 넓어질수록 동맹국 기업의 비용 부담도 늘어난다. 첨단 반도체와 메모리가 군사·사이버 분야에 활용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목적은 분명하지만, 규제가 확대될수록 기업들은 규제 준수 비용 증가와 투자 계획 조정, 장기 투자 불확실성까지 함께 떠안아야 한다. 한국은 이러한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국가 가운데 하나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반도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석유화학과 기계, 디스플레이, 전자부품 등 다양한 중간재를 중국에 공급하고 있으며, 반도체는 대중국 교역을 지탱하는 핵심 품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다른 산업의 수출 여건은 악화했지만, 반도체는 여전히 한국이 경쟁 우위를 유지하는 분야다. AI 반도체 수출 규제가 확대될 경우 그 영향이 반도체를 넘어 대중국 교역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따라서 수출통제 범위와 기준은 안보 목적에 맞춰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HBM 등 첨단 제품과 우회 수출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되, 범용 메모리와 일반 장비의 유지·보수까지 제한하면 동맹국 기업의 부담만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특히 기업에는 규제 자체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 변화가 더 큰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명확한 기술 기준과 안정적인 허가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과제는 중국에 구축된 국내 반도체 생산시설에서도 드러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은 세계 메모리 공급망의 핵심 생산기지로 꼽힌다. 미국은 기존 공장의 운영은 허용하면서도 증설과 첨단 공정 전환에는 제약을 두고 있다. 이 경우 기존 설비의 활용 기간이 길어지면서 기업은 자산 가치 하락과 추가 투자 부담을 안을 가능성이 커진다. 동맹국에 이 같은 부담을 요구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지원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대체 생산시설 투자 지원과 세제 혜택, 안정적인 수요 확보 등이 대표적인 방안이다.

AI 메모리 호황만으로는 한계
AI 수출통제에 별도의 보상 체계는 필요하지 않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미국의 AI 투자 확대가 메모리 수요를 끌어올리면서 동맹국이 부담한 비용을 시장이 상당 부분 흡수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은 AI 수요 증가에 힘입어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SK하이닉스도 HBM과 서버용 메모리 판매 확대를 바탕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올해 초에는 메모리 수출 증가로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가 일시적으로 흑자를 기록했고, 대미·대중 반도체 수출도 모두 증가하며 AI 투자 확대에 따른 수혜가 가시화됐다. 미국이 주도한 AI 투자 확대가 한국 반도체 산업에는 사실상의 간접 보상으로 작용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메모리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 순환 산업으로 공급 부족과 공급 과잉이 반복된다. 특정 국가와 고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새로운 공급망 리스크에 직면할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시장 호황만으로는 동맹국이 부담하는 비용을 장기적으로 상쇄하기 어렵다. 따라서 미국 시장에 대한 안정적인 접근과 투자 승인 절차 개선, 공동 연구개발(R&D) 확대, 세제 지원 등은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잠수함 협력도 동맹의 보상 카드
동맹의 보상은 경제적 지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말 미국은 한국의 재래식 무장 핵추진잠수함(SSN) 확보 추진을 승인하고 연료 공급 등 관련 협의를 시작했다. 이를 AI 수출통제 협조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무역과 투자, 안보 협상이 동시에 진행되던 시기에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 동맹 협력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오랫동안 추진해 온 핵심 안보 과제를 진전시켰다는 의미가 있다. 핵추진잠수함은 장기간 수중 작전이 가능해 북한의 잠수함과 미사일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으며, 역내 해양 안보에서 한국의 역할을 한층 넓힐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미국이 맡아온 일부 해양 안보 임무를 분담하는 효과도 예상된다. 물론 핵추진잠수함 도입에는 핵비확산 체제와의 정합성, 사업비 증가, 역내 군비경쟁 가능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잠수함 협력은 미국의 대중 기술 통제 전략과 한국의 안보 수요가 맞물리며 성사된 협력 사례다.
미국의 AI 수출통제가 지속적인 효과를 거두려면 동맹국이 부담하는 경제적 비용과 안보상 이익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한국은 중국 시장에서의 사업 기회 축소를 감수하는 대신 AI 메모리 호황과 핵추진잠수함 협력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그러나 메모리 경기와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현재의 균형도 유동적일 수밖에 없다. AI 수출통제는 동맹국이 부담하는 비용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균형을 이룰 때 정책의 지속성과 동맹의 안정성도 함께 확보할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AI Export Controls Need an Alliance Price: Why South Korea’s Submarine Deal Matter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