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공급망 불안이 바꾼 인플레이션의 작동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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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불안, 장기 물가 압력으로 확산 기업의 위험 전가가 가격 상승 견인 공급망 회복력 강화가 물가 안정 열쇠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은 상당 부분 회복됐지만, 물류 불안은 일상적인 위험으로 굳어지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는 평균 3.7년에 한 번씩 한 달 이상 지속되는 차질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공급망 충격을 예외적인 사건으로 전제했던 기존의 인플레이션 대응 방식도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이제 공급망 병목은 일시적인 비용 증가를 넘어 기업의 재고 운용과 가격 결정, 물가 흐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변수로 자리 잡았다.
공급망 리스크의 가격화
정책당국은 공급망 충격을 물류비나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일시적인 비용 증가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기업의 가격 결정 과정은 단순한 비용 전가보다 훨씬 복잡하게 작동한다. 납기 지연과 공급 차질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질수록 기업은 미래에 발생할 위험까지 가격에 반영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공급망 인플레이션이 단순한 비용 전가(Pass-through)를 넘어 위험 전가(Risk-through)의 성격을 띠는 이유다.
최근 글로벌 물류 불안은 이러한 위험 전가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홍해 사태와 파나마운하 가뭄으로 국제 해상 물류에 다시 차질이 발생하면서 공급망 불안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실제로 수에즈운하와 파나마운하를 통과하는 물동량은 절반 이상 감소했고 운송 기간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반년 만에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유엔(UN) 무역 전문가들은 이러한 고운임이 지속될 경우 세계 소비자물가를 약 0.6% 끌어올릴 수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수치만 보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는 기업의 가격 결정과 소비자의 물가 전망을 바꾸기에 충분한 충격이다. 중요한 점은 공급망 충격이 운임 상승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업이 미래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하면 공급 차질이 완화된 이후에도 가격은 이전 수준으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마진 방어가 키우는 물가 상승
공급망 충격이 소비자물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기업의 가격 결정 방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판매가격도 같은 폭으로 오른다는 기존 비용 전가 이론만으로는 최근의 물가 흐름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공급망이 흔들리면 운송비와 재고 확보 비용은 물론 납기 지연에 따른 손실까지 커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기업은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일정 수준의 마진을 확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원재료 가격 상승폭보다 판매가격이 더 큰 폭으로 오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공급망 불안이 반복될수록 가격이 쉽게 내려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구 결과도 이러한 가격 결정 방식을 뒷받침한다. 팬데믹 기간 미국의 근원 개인소비지출(Core PCE) 물가를 분석한 결과 공급망 차질은 물가 상승의 주요 요인으로 나타났다. 단기간의 납기 지연은 재고와 기존 계약으로 흡수할 수 있지만,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면 기업은 가격 인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다. 향후 손실 가능성과 자금 부담을 미리 반영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초기 공급 충격보다 더 큰 폭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가격 조정은 개별 기업에 그치지 않고 시장 전체로 확산된다. 특정 기업의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면 경쟁사의 가격 인상 부담도 함께 줄어든다. 이로 인해 같은 시장의 기업들이 잇따라 가격을 올리면 공급 차질을 직접 겪지 않은 기업도 가격 조정에 나설 유인이 커진다. 실제 미시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기업이 직접 겪은 납기 차질의 가격 전가 효과가 0.25~0.27로 추정됐다. 경쟁사의 공급 차질이 자사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0.11~0.13에 달했다. 이 같은 특성은 운임지수만으로 물가 흐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운임이 하락하더라도 장기 운송 계약과 고가 재고의 소진 시차, 기업들의 가격 전략이 순차적으로 반영되면서 소비자물가는 높은 수준을 이어갈 수 있다.

공급망 관리와 경쟁정책의 병행
공급망 인플레이션은 수요와 공급, 시장 구조가 맞물려 나타나는 만큼, 하나의 정책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금리 인상은 수요를 조절하는 수단이지만 물류 병목을 해소하거나 공급망을 복원하는 역할까지 수행하지 못한다. 긴축이 장기화될 경우 물류 인프라 투자와 공급망 다변화에 필요한 자금 조달이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공급망 위험을 조기에 파악할 수 있는 감시 체계 확보가 중요하다. 기존에는 총수요와 에너지 가격, 임금 등 거시지표를 중심으로 물가를 판단했다면, 앞으로는 납기 지연과 항만 혼잡, 재고 수준, 품절률, 특정 국가에 대한 수입 의존도 등 공급망 지표도 함께 살펴야 한다. 공급 차질을 조기에 포착할수록 기업의 위험 프리미엄 확대를 막고 물가 상승 압력도 줄일 수 있다.
공급망 전략도 효율성을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생산시설을 모두 자국으로 이전하는 전면적인 리쇼어링보다 핵심 원자재와 부품의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통관 절차를 개선하고 항만과 내륙 물류시설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전략 비축을 병행하면 공급 차질 대응 역량도 강화된다. 경쟁정책도 공급망 정책과의 연계가 불가피하다. 공급 차질이 완화된 이후에도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산업은 시장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생산능력 집중이나 리베이트 관행 등으로 시장지배력이 강화됐다면 가격은 공급 충격이 끝난 뒤에도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공급망 회복과 경쟁 촉진이 함께 이뤄질 때 물가도 안정적인 흐름을 되찾을 수 있다.
공급망 인플레이션의 핵심은 비용 상승 자체가 아니라 기업의 가격 결정 과정이다. 공급 차질은 일시적으로 끝날 수 있지만 기업이 미래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하면 물가 상승 압력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된다. 따라서 공급망 위험을 조기에 파악하고 핵심 품목의 조달 구조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시장 경쟁을 유지하는 정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공급망 회복력과 경쟁 환경이 함께 개선될 때 공급 충격이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도 약해질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Supply Chain Inflation and the Risk Premium of Delay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