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충격 속 약달러 심화, ‘달러 이자’ 부담에 유로·위안화로 향하는 글로벌 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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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금리 장기화, 달러 차입비용 급등 정부·기업 자금, 유로·위안화 조달로 이동 달러 중심 국제금융 질서의 균열 심화

전 세계 국경 간 은행 신용이 크게 불어난 가운데 달러 중심의 국제 자금조달 질서에 균열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고금리가 달러 차입 부담을 키우자 각국 정부와 기업은 유로화·위안화로 조달 창구를 넓혔고, 중앙은행의 준비자산 운용에도 통화 분산이 확산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충격 이후 미국 주식·국채·달러가 동반 하락하면서 달러 자산에 붙던 안전자산 프리미엄도 약화했다. 해외 수요 감소가 장기화하면 미국은 국채 조달금리 상승과 시뇨리지 축소, 재정 부담 확대를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유로화 빌려 쓰는 기업·국가 급증
6일(현지시간) 국제결제은행(BIS)의 '국제은행 통계 및 글로벌 유동성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국가 간 은행 대출과 채권 잔액(국경 간 은행 신용)은 39조5,000억 달러(약 5경6,000조원)를 기록했다. 이는 1년 전보다 11% 늘어난 규모다. 국경을 넘어간 전체 청구권(대출·예금·채권·금융파생상품 포함)도 2조1,000억 달러(약 2,980조원) 증가해 총 47조6,000억 달러(약 6경7,590조원)에 이르렀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 자금 이동 규모로는 최대치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통화의 세대교체 신호다. 그동안 전 세계 국가와 기업들은 국경 간 거래를 할 때 미국 달러를 주로 빌려 썼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유럽 통화인 유로화를 빌리는 속도가 달러화를 크게 앞지르는 추세다. 올해 1분기 유로화 표시 외화 대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늘어난 5조1,000억 유로(약 8,343조1,920억원)를 나타냈다. 반면 달러화 표시 외화 대출은 7.3% 늘어난 14조7,000억 달러(약 2경870조원)에 그쳤다.
전 세계 외화 대출 시장에서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3분기 22%에서 2026년 1분기 28%로 껑충 뛰어오른 상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금리 기조가 길어지면서 달러를 빌리는 이자 부담이 커지자, 상대적으로 금리 부담이 적거나 거래 조건이 유리한 유로화로 자금 조달 창구를 다변화한 결과다.
韓 정부도 유로화 외평채 발행
한국 정부도 유로화 조달 비중을 확대했다. 정부는 2025년 6월 14억 유로(약 2조2,900억원) 규모의 유로화 외평채를 발행했다. 2021년 이후 4년 만의 유로화 발행이었고, 3년물과 7년물을 함께 내놓은 첫 복수 만기 거래였다. 주문액은 190억 유로(약 31조원)에 달해 발행액의 13배를 웃돌았다.
올해 7월에는 발행 규모를 17억 유로(약 2조7,800억원)로 늘려 다시 역대 최대 기록을 세웠다. 3년물과 7년물 가산금리는 유로 미드스와프 대비 각각 10bp와 28bp로, 지난해보다 15bp와 24bp 낮아졌다. 정부는 2월 달러화 외평채에 이어 유로화 시장에서도 기준물을 구축하며 올해 외화 외평채 발행 한도 50억 달러(약 7조원)를 모두 채웠다. 10월 만기가 돌아오는 7억 유로(약 1조1,450억원)의 상환 재원도 석 달 앞서 확보했다.
표1. 글로벌 국경 간 신용 확대와 조달통화 다변화
| 구분 | 핵심 지표 | 변화·특징 |
|---|---|---|
| 국경 간 은행 신용 | 39조5,000억 달러 |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 |
| 전체 국경 간 청구권 | 47조6,000억 달러 | 2조1,000억 달러 증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대 규모 |
| 유로화 표시 외화 대출 | 5조1,000억 유로 |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 |
| 달러화 표시 외화 대출 | 14조7,000억 달러 | 전년 동기 대비 7.3% 증가 |
| 유로화의 외화 대출 비중 | 28% | 2022년 3분기 22%에서 6%포인트 상승 |
| 한국 정부의 유로화 외평채 | 2025년 14억 유로 → 2026년 17억 유로 | 발행 규모 역대 최대, 3·7년물 가산금리 각각 10bp·28bp |
| 싱가포르 유로화 채권 발행 | 890억 유로 | 2025년 7월 18일 기준, 같은 기간 기준 2014년 이후 최대 |
| 캐나다의 위안화 차환 | 35억 달러 | 중국계 달러 대출을 위안화로 전환, 연간 이자 2억1,500만 달러 절감 전망 |
| 중국계 역외 위안화 금융 잔액 | 3조4,000억 위안 이상 | 최근 5년간 네 배 증가 |
| 홍콩 딤섬본드 발행 | 3,000억 위안 | 2026년 1~4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이상 증가 |
중국 저금리 공세에 위안화 차환도 확대
신흥국의 통화 분산도 유로채 시장에서 먼저 수치로 확인됐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신흥국 정부와 기업이 2025년 7월 18일까지 발행한 유로화 채권은 890억 유로(약 145조6,300억원)로, 같은 기간 기준 2014년 이후 최대였다. 정부 발행액은 이 시점에 이미 2024년 연간 규모를 웃돌았다. 폴란드와 루마니아가 210억 유로(약 34조3,620억원)를 조달했고 한국·중국·칠레도 유로채 시장에 잇달아 진입했다.
위안화로 환승하는 움직임도 가파르다. 위안화는 중국계 대출과 결제망을 기반으로 개도국의 차환시장에 파고들었다. 케냐는 2025년 10월 중국수출입은행에서 빌린 철도 건설용 달러 대출 35억 달러(약 5조원)를 위안화로 전환했다. 변동형 달러 금리를 낮은 위안화 금리로 교체하면서 연간 이자 부담이 2억1,500만 달러(약 3,050억원) 줄어들 것으로 케냐 정부는 추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파나마도 24억 달러(약 3조4,080억원) 규모의 스위스프랑 대출을 활용해 2억 달러(약 2,840억원) 이상의 조달비용을 절감했고, 콜롬비아는 달러·페소 부채의 저금리 통화 차환을 검토 중이다.
위안화 국제화에 직접적인 가격 유인을 제공한 것은 중국의 저금리다. 중국계 은행의 역외 위안화 대출·예금·채권투자 잔액은 5년 동안 네 배로 늘어 3조4,000억 위안(약 714조4,420억원)을 웃돌았다. 올해 4월까지 홍콩 역외시장에서 발행된 위안화 표시 딤섬본드(역외 위안화 채권)는 3,000억 위안(약 63조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두 배를 넘었다. FT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미국 은행의 자체 위안화 발행액도 475억 위안(약 9조9,81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보유 통화 재조정, 달러 프리미엄 약화
차입 통화의 분산은 각국 중앙은행과 민간 투자자의 보유 통화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 달러 가치 상승에 대비해 달러 자산을 축적했던 중앙은행과 기업, 가계는 이제 보유비용까지 따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달러 표시 채권의 수익률은 높아졌지만, 환율 변동과 환헤지 비용도 함께 불어났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한 비중은 56.77%로 집계됐다. 2001년 72%와 비교하면 15%포인트 이상 낮아졌다. 같은 기간 유로화 비중은 20.25%, 위안화는 1.95%를 기록했고, 기타 통화 비중은 2021년 이후 두 배 이상 늘어난 6.13%까지 상승했다. 지난해 BIS의 외환시장 조사에서 달러는 전체 외환거래의 89.2%에 관여했다. 유로화는 28.9%, 위안화는 8.5%에 머물렀다. 이렇듯 시장의 변화는 신규 자금의 통화 선택에서 진행되고 있다. 유로화와 위안화 채권 발행이 누적될수록 만기별 수익률곡선과 담보 물량, 투자자층이 두꺼워지고 후속 발행자의 조달비용도 낮아진다.
미국 위험 프리미엄의 귀환
일반적으로 달러 금리와 달러 가치는 일률적인 역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금리 상승은 달러 자산의 기대수익률을 높여 자금 유입과 통화 강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미국의 재정 건전성과 정책 신뢰에 대한 경계가 장기금리를 끌어올리면서 기존 공식이 흔들렸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5.1% 안팎으로 올라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장기채 기간 프리미엄도 1.56%로 2013년 이후 최고치까지 치솟았지만 달러 가치는 약세 압력을 받았다. 금리 상승이 투자 매력을 높이는 수익률 신호에서 미국의 재정·정책 위험을 보상하는 비용으로 전환된 영향이다.
고금리에도 달러가 약세를 보인 배경에는 미국의 재정·통화정책을 둘러싼 신뢰 훼손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다수 위원이 즉각적인 금리 인상을 주장했으나 기준금리는 동결됐다. 미국과 일본이 엔화 방어를 위해 약 30년 만에 공동 외환시장 개입에 나서고 미국 정부가 엔화 강세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점도 약달러 전망을 자극했다. 관세와 재정적자, 물가 압력이 겹치면서 채권금리 상승과 달러 하락이 동반되는 ‘셀 아메리카’ 흐름도 다시 부상하는 분위기다.
관세 충격이 깬 달러 공식
발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정책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4월2일을 '해방의 날'(liberation day)'로 명명하며 거의 모든 수입품에 10% 기본관세를 매기고 국가별 추가세율을 얹는 상호관세안을 발표했다. 이후 중국과 주요 교역국이 보복 조치를 예고하자 자본시장에서는 경기 위축과 물가 상승 우려가 동시에 확산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관세 발표 직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1% 이상 급락했고, 10년물 미 국채금리는 4월 4일부터 11일까지 약 50bp 뛰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같은 기간 달러 가치까지 하락하면서 미국 주식·국채·통화가 함께 매도되는 이례적인 가격 흐름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관세 충격은 미국 자산에 부여되던 안전자산 프리미엄까지 깎아내렸다. 시장은 관세가 기업 이익과 소비를 압박하는 동시에 미국의 재정 부담과 인플레이션을 키울 것으로 판단했다. 상호관세 발표 전 달러 강세에 베팅했던 투기적 자금은 이후 순매도 포지션으로 돌아섰고, 아시아 투자자를 중심으로 달러 자산의 환헤지 비중도 빠르게 높아졌다. 90일간의 관세 유예로 주가는 회복했지만 미 국채의 편의수익률과 달러의 위험회피 기능은 이전 수준을 되찾지 못했다. 관세 발표와 번복이 반복될 때마다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이 국채금리와 환율에 추가 비용으로 반영되는 선례가 남았다.
미 재정에 직격탄
문제는 기축통화 프리미엄이 사라질 때 미국이 치러야 할 비용은 환율 변동폭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다. NBER 연구진은 외국인의 달러 안전자산 수요가 완전히 소멸하는 상황을 가정한 모형에서 미국의 시뇨리지 수익이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씩 사라질 것으로 추산했다. 달러의 실질가치는 8.8% 하락하고 미국 실질금리는 0.9%포인트 상승했다. 미국 투자자가 새로 흡수해야 할 달러 채권은 GDP의 50%에 달했고, 현재가치로 환산한 국부 손실은 33조 달러(약 4경6,900조원)로 미국의 연간 GDP를 웃돌았다.
관세 발표와 번복, 연준 독립성 논란, 재정적자 확대가 반복될수록 달러 자산의 편의수익률은 낮아지고 미 국채 차환금리는 높아진다. ECB에 따르면 미 국채 잔액은 30조 달러(약 4경2,600조원)로 2018년의 두 배에 달한다. 기축통화 지위의 약화는 해외 투자자가 낮은 수익률을 감수하며 미 국채를 매입하던 관행이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미국 정부의 정책 불확실성이 시장금리로 환산되기 시작한 만큼 미국의 이자비용과 재정 부담도 국채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누적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