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바이오] 잦아진 폭염에 커지는 기후 인플레이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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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폭염, 식품 물가 상승 압력 확대 기후 충격 장기화에 성장·물가 불안 가중 중앙은행, 기후변수 반영한 대응 체계 강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 6월 21일 프랑스 정부는 96개 행정구역 중 35곳에 최고 단계의 폭염경보를 발령했다. 파리 인근 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치솟자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축제장 내 주류 판매 금지 조치에 나섰다. 프랑스 국영철도(SNCF) 역시 냉방장치 손상 위험을 이유로 도시 간 열차 71편의 운행을 멈췄다. 이러한 재해는 흔히 단발성 사건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의 분석에 따르면 폭염은 이미 거시경제 지표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폭염을 '일회성 악재'로 볼 수 없는 이유
폭염이 발생하면 우선 당장의 피해에 관심이 집중된다. 학교의 조기 하교와 야외 행사 취소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눈앞의 피해에 주목하는 시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기온이 내려가면 충격도 끝난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폭염이 반복되면서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더구나 폭염의 발생 빈도도 높아지는 추세다. 올해 서유럽은 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을 보냈다. 대륙 상공에 강한 고기압이 수 주 동안 정체하면서, 사하라의 뜨거운 공기가 지중해 연안으로 계속 유입된 영향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산불이 만들어내는 폭풍인 '화재적란운(pyrocumulonimbus)'까지 관측됐으며 새로운 산불을 촉발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와 같은 기후 충격이 잦아지면서 폭염을 일회성 악재로만 보는 시각 역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수확량 감소에서 공급 차질까지
폭염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핵심 경로는 농작물 수확량 감소다. 2022년 여름 폭염은 스페인의 올리브 농가를 타격했고, 영국에서는 고온으로 가금류 생산량이 전년 대비 9% 줄었다. 7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은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리소토용 쌀 생산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생산 감소는 식품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반영됐다. 필립 레인 ECB 집행이사는 지난해 폭염이 이후 12개월간 유로존 비가공식품 물가상승률을 0.4~0.7%포인트 끌어올렸다는 분석을 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영향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막시밀리안 코츠 바르셀로나슈퍼컴퓨팅센터 연구원 등이 참여한 공동 연구에서는 기온 상승으로 2035년 무렵 세계 식품 물가상승률이 연간 최대 3.2%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온난화가 더욱 진행된 2060년대에는 극심한 여름 폭염이 유럽의 식품가격을 최대 1.8%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경제적 여파는 농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지난달 극심한 더위로 철로가 팽창하고 휘면서 열차 운행에 차질을 빚었고 전기 신호장비도 일정 온도를 넘으면 고장 위험이 커졌다. 프랑스에서는 지롱드강 수온이 상승하자,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블라예 원자력발전소의 발전량을 조정했으며 원자로 3기도 일시적으로 가동을 중단했다.

중앙은행이 '기후 인플레이션'에 주목하는 이유
기후 충격의 파급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를 물가 전망에 반영하려는 분석도 구체화되고 있다. ECB 연구진은 비가공식품 물가상승률을 6개월 앞서 예측하는 '랜덤포레스트(Random Forest)' 모형에 기상 변수를 반영했다. 그 결과 농업 관련 원자재 가격을 이미 고려한 상태에서도 기상 변수를 추가하면 예측력이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기고문에서 소개된 '녹색금융네트워크(NGFS)'의 분석 체계는 기후 충격에 대응하는 정책 판단의 틀을 제시한다. 기후 충격이 발생하면 ①충격 식별 ②경제 전반의 파급효과 평가 ③통화정책상 딜레마 발생 여부 판단 ④정책 결정 및 설명 ⑤지속적인 점검 등 5단계 절차를 거치는 방식이다. 이는 특정 정책 해법을 자동으로 제시하기보다 정책당국자가 순간적인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일관된 기준으로 대응 방안을 검토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분석이 필요한 이유는 기후 충격이 기존 통화정책의 대응 방식을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통화정책 원칙에서는 일시적인 공급 충격에 따른 물가 상승을 통화긴축으로 억제하기보다 충격이 해소될 때까지 지켜보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나 공급 충격이 잇따르면 일시적인 현상과 지속적인 물가 압력을 구분하기가 한층 어려워진다.
NGFS 시나리오 분석에서도 이러한 딜레마가 드러났다. 폭염과 가뭄, 홍수, 사이클론 등 기후 충격이 세계 각지에서 반복되면 GDP는 감소하는 반면 인플레이션 변동성은 확대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기 둔화와 물가 불안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중앙은행의 정책 선택지가 좁아지는 셈이다. 실제로 2027년과 2030년을 엘니뇨 발생 시기로 설정한 시나리오에서는 유로존 GDP가 큰 폭으로 감소한 반면 인플레이션과 정책금리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각국의 배출 감축 목표에 맞춘 탄소세는 2027년 무렵 산유국의 인플레이션을 최대 0.47%포인트 높이는 반면, 실질 GDP는 2035년까지 3% 넘게 감소시키는 것으로 추정됐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자연적인 기후 충격뿐 아니라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변화까지 물가와 성장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체계적 분석 도구 마련이 시급한 시점
이른바 '기후 인플레이션(Climateflation)'은 유럽에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121개국의 월별 소비자물가지수(CPI)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고온이 식품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 12개월간 이어졌으며,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된 국가와 상대적으로 온화한 국가 간 격차도 확대된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통화정책만으로 이러한 공급 충격의 원인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중앙은행은 수요를 억제할 수 있지만, 폭염으로 손상된 농작물을 복구할 수는 없다. 공급 측면의 문제에 통화긴축으로 대응하면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에 부담을 더할 가능성도 크다.
이에 정책당국과 농업 의존도가 높은 기업에는 폭염의 발생 빈도와 기후 적응 지연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6월 파리의 폭염은 지나갔지만, 당시 충격은 수개월 뒤 빵과 올리브유 등 식품가격에 반영될 수 있다. 이처럼 기후 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는 시차가 있는 만큼 전이 경로와 시점을 파악해 전망과 정책 판단에 반영할 수 있는 분석 체계 마련이 향후 과제로 꼽힌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Heatwave, the Harvest and Inflation: The Problem of Climateflation for Central Bank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