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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지정학적 위험에 움츠러든 은행권, 경제제재의 숨은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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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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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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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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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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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 불확실성 고조에 기업 자금조달 여건 악화
제재 관련 신용 공급 감소, 금융·제조업 타격 집중
국제 자본 이동 위축에 세계 경제 불안정성 확대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하면서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은행들이 경제제재와 금융거래 제한에 따른 위험을 대출 심사에 반영하면서 관련 위험에 노출된 기업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는 추세다. 영란은행(Bank of England) 연구진에 따르면 기업의 지정학적 위험이 1 표준편차 높아질 경우, 해당 기업에 대한 국경 간 은행 대출 증가율은 1년간 약 4%포인트 둔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기업의 현금흐름 가치에 미치는 영향과 산업별 차이, 궁극적인 비용 부담 주체 등은 여전히 규명해야 할 과제로 남는다.

현금흐름에 적용되는 지정학적 위험

기존의 지정학적 위험지표는 주로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국가별 위험 수준을 측정해 같은 국가에 속한 기업에 동일한 위험도를 적용한다. 반면 영란은행 연구진은 기업 경영진의 실적발표 콘퍼런스콜 발언을 분석해 개별 기업의 위험 수준을 파악하고, 이를 영국 은행들의 실제 대출 자료와 연계했다. 국가 단위의 평가에서 벗어나 기업별 위험 노출 정도가 은행 대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것이다. 분석 결과 지정학적 위험 증가에 따른 대출 증가율 둔화는 국가와 업종, 조사 시점이 같은 기업들 사이에서 확인됐다. 이는 국가의 전반적인 경제 상황과 별개로 개별 기업의 위험 수준이 은행의 대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연구에서 확인된 수치는 대출금리가 아닌 대출 증가율에 관한 것으로 위험에 따른 추가 비용을 직접 산출한 것은 아니다. 대신 은행이 위험 노출이 큰 기업에 대출을 줄인다는 점에서 해당 위험에 더 높은 프리미엄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은행이 지정학적 위험을 대출에 반영하는 이유는 기업의 상환 능력이 경영실적뿐 아니라 실제 자금 회수 가능성에도 좌우되기 때문이다. 기업이 충분한 매출을 올리더라도 사업 지역이 국제 결제망에서 차단되거나 자금 송금이 제한되면 대출금 상환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위험은 기업이나 은행이 통제할 수 없는 제3국의 정책 결정에 따라서도 발생한다. 이에 은행은 매출 규모가 같더라도 자금 회수의 불확실성이 큰 기업의 현금흐름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대출 규모를 조정하게 된다.

주: 금융기업에 대한 대출은 분석 기간 내내 감소한 반면, 방위산업 관련 기업의 대출에서는 뚜렷한 감소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업종별로 엇갈린 대출 영향

지정학적 위험에 따른 대출 감소 폭은 산업별로 차이를 보였다. 금융업에서 가장 큰 폭의 감소세가 나타났는데, 이는 경제제재가 금융거래와 관련 무역활동을 직접 제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제조업 역시 국제 정세의 불안으로 무역과 공급망에 차질이 발생하면서 국경 간 대출이 위축됐다. 반면 광업과 방위산업은 대출 규모가 유지되거나 일부 증가했다. 지정학적 갈등으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에너지·광업기업은 수혜를 볼 수 있고 안보 불안이 커질수록 방산제품 수요도 늘어나는 구조다. 이들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은행은 다른 업종과 달리 지정학적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오히려 수익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대출기관의 재무건전성도 자금 공급에 영향을 미쳤다. 보통주자본비율(CET1)이 높고 유동성이 풍부한 은행은 지정학적 위험이 커져도 대출을 상대적으로 적게 줄인 반면, 자본과 유동성이 취약한 은행은 감소 폭이 컸다. 이는 다국적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에게 거래 은행의 구성이 기업이 속한 산업만큼이나 자금조달 안정성에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재무건전성이 취약한 은행에 의존할 경우 기업의 경영실적에 변화가 없더라도 지정학적 위기 시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제재에 더 민감한 은행 대출

은행의 대출 결정은 지정학적 위험의 유형에 따라서도 달라졌다. 특히 무력충돌 다음으로 강력한 국가 간 압박 수단인 경제제재와 관련된 위험이 커질 때 대출 감소 폭이 두드러졌다. 직접적인 제재 대상 기업뿐 아니라 공급망이나 금융 거래상대방이 제재에 노출된 기업도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대출 위축은 국가 간 정치적 관계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였다. 연구진이 유엔(UN) 투표 성향을 바탕으로 정치적 거리를 분석한 결과, 은행은 차입기업이 자국과 같은 우방권에 속할 때보다 다른 지정학적 진영에 속할 때 대출을 더 큰 폭으로 줄였다. 특히 2022년 이후 이러한 차이가 뚜렷해지면서 국제신용이 은행 본점 소재국과 정치적으로 가까운 국가의 기업으로 이동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경제제재가 공식적인 거래 금지 조치가 시행되기 전부터 글로벌 금융망의 분리를 촉진할 수 있음을 방증한다. 은행들이 거래 중단이나 자금 회수 위험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대출을 축소하면서 제재 대상 기업과 거래하는 다른 기업들까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금융적 분리가 실제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제재의 궁극적인 정치적 목적까지 달성됐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주: 금융 분절이 극단적으로 심화할 경우 변동성은 최대 약 8포인트 상승하고 위험 분산 효과의 감소 폭은 자급자족 경제에서 발생하는 손실의 38~54%에 달한다.

금융 분절 확산에 따른 세계 경제의 부담

경제제재와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금융 분절의 영향은 개별 기업을 넘어 국가경제 전반으로 확산된다. 영란은행 연구에 따르면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질수록 국경 간 차입과 국내총생산(GDP)이 감소하고 주가 하락과 통화가치 절하 압력이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물가는 상승하고 통화정책은 긴축적으로 전환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신용 증가세가 빠른 국가일수록 국제신용 감소 폭이 커 기존의 금융 취약성이 더욱 심화됐다. 국제통화기금(IMF)도 2023년 4월 보고서에서 국가 간 지정학적 거리가 1 표준편차 확대될 경우 양국 간 포트폴리오 투자와 은행자본 배분이 약 15%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2024년 5월에는 무역 분절에 따른 세계 경제의 생산 손실이 완만한 시나리오에서 0.2%, 극단적인 경우 최대 7%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금융 분절에 따른 부담은 대출기관에도 돌아간다. 데이터 분석 기업 렉시스넥시스 리스크 솔루션스(LexisNexis Risk Solutions)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제재 감시를 포함한 금융범죄 규제 준수 비용은 연간 2,061억 달러(약 275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금융안정위원회(FSB)에 따르면 활동 중인 환거래은행 수 역시 2011~2018년 19.3% 감소했다. 이는 수익성 악화와 규제 강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거래관계 단절은 은행의 사업 기회와 해외시장 접근성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추가적인 비용으로 이어진다. 일각에서는 은행의 대출 축소를 손실이 아닌 신중한 위험관리로 봐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물론 개별 은행이 부실 위험을 줄인다는 측면에서는 타당하지만, 금융기관들이 일제히 국경 간 대출을 축소하면 국제적인 위험 분산 기회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IMF 역시 금융 분절이 위험 분산 효과를 약화시키고 거시경제 변동성을 확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개별 은행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 대출을 축소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확산되면 글로벌 금융시스템 전체에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가 간 자금 흐름이 위축되면서 기업과 은행의 금융거래 기회가 줄고 국제적인 위험 분산 기능도 약화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비용이 제재를 통해 확보하려는 안보상의 이익에 비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결국 금융 분절의 효과를 평가하려면 금융적 분리라는 성과뿐 아니라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Geopolitical Risk and Bank Lending: The Cost of Sanction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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