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이어 엔화·싱가포르달러까지” 판 커지는 스테이블코인, 아시아 결제망도 재편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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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지연·중개 비용 부담에 대안 찾는 기업들 대금 지급·해외송금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 채택 제도권 금융 연계 통한 역내 결제 경로 다변화 속도

기업 간 대금 지급과 해외송금에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산에 걸리는 시간과 중개 비용을 줄이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결제 시장 확대를 이끄는 모습이다. 국가마다 통화와 결제망이 나뉜 아시아에서는 이 같은 수요가 현지 통화 연동 코인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엔화·싱가포르달러 등으로 대금을 직접 주고받아 환전 부담을 줄이려는 움직임에 싱가포르와 홍콩의 제도 정비가 맞물리면서 역내 결제망 구축도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올해 1~8월 스테이블코인 결제 추정액 42% 급증
5일(이하 현지시간) 글로벌 컨설팅업체 알바레즈앤마살(A&M)의 ‘스테이블코인 결제 활동 보고서(Stablecoin Payment Activity Report)’에 따르면 올해 1~8월 스테이블코인 결제 추정액은 최소 4,010억 달러(약 538조3,83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 증가했다. 전체 스테이블코인 전송액 85조 달러(약 11경4,120조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5%로 아직 작지만 증가세가 가파르다. 보고서는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업체 알리움(Allium)의 자료에서 거래소 내부 이체와 탈중앙화금융(DeFi) 활동, 인프라 관련 거래 등을 걸러냈다. 이를 통해 추린 경제적 목적의 자금 이동은 4조 달러(약 5,370조4,000억원)였다. 여기서 거래 용도를 다시 분류해 상품·서비스 대금 지급 등 결제에 쓰인 금액을 추산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결제 수요는 기업 간 거래(B2B)에서 나왔다. B2B 결제액은 1,370억~1,530억 달러(약 183조9,360억~205조4,180억원)로, 거래 주체별 분류에서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다른 주체가 기업에 지급한 금액까지 포함하면 기업의 수취 비중은 전체 결제 추정액의 58~64%에 달한다. 용도별로는 서비스 수수료가 560억 달러(약 75조1,860억원)로 가장 많았으며, 급여·보수 430억 달러(약 57조7,320억원), 해외송금 370억 달러(약 49조6,760억원), 서비스 대금 320억 달러(약 42조9,630억원), 공급업체 대금 280억 달러(약 37조5,930억원) 순이었다. 인건비 지급부터 외부 서비스 이용, 납품대금 정산까지 기업의 일상적인 지출에 스테이블코인이 쓰인 셈이다. 소비자가 물건을 사는 소매 구매는 190억 달러(약 25조5,090억원), 용도를 특정하기 어려운 결제는 580억 달러(약 77조8,710억원)로 집계됐다.
기업 간 거래 중심으로 결제 수요 확대
결제 자금이 유입된 지역은 신흥국과 고소득 시장에 걸쳐 폭넓게 나타났다. 수취 국가가 확인된 거래에서는 태국이 108억 달러(약 14조5,000억원)로 가장 많았다. 이어 튀르키예 78억 달러(약 10조4,720억원), 인도네시아 63억 달러(약 8조4,580억원), 멕시코 61억 달러(약 8조1,900억원)가 뒤를 이었다. 미국의 수취액은 57억 달러(약 7조6,530억원)였으며, 한국과 호주, 대만도 주요 시장으로 거론됐다. 보고서에 제시된 상위 8개 시장 중 고소득 시장은 미국·한국·호주·대만 등 네 곳이다. A&M은 각국의 달러 확보 수요에 무역금융과 송금 수요가 더해지면서 이 같은 분포가 형성된 것으로 해석했다.
기업 간 결제에서는 해외로 자금을 보내는 수요도 두드러졌다. 알리움이 송금국과 수취국을 확인할 수 있는 거래를 분석한 결과, 기업 간 결제액의 43%가 국경을 오간 것으로 집계됐다. 분석 대상 결제 유형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으로, 기업 간 자금 이전에서 해외 거래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의미다. 국경 간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장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지난해 국경 간 스테이블코인 결제액은 전년 대비 64% 증가했으며, 증가율은 기존 법정화폐 결제망이 기록한 9%의 7배에 달했다. 해외로 대금을 지급할 때 송금에 걸리는 시간과 중개 비용을 줄이려는 수요가 확산의 동력으로 꼽힌다. 여러 금융회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산 지연을 줄이면 대금을 받는 기업도 자금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어서다.
표1. 스테이블코인 결제 규모 및 주요 수요
| 구분 | 핵심 지표 | 규모·비중 |
|---|---|---|
| 전체 결제 | 2026년 1~8월 결제 추정액 | 최소 4,010억 달러(약 538조3,830억원)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 전체 스테이블코인 전송액의 0.5% |
| 기업 거래 | 기업 간 거래(B2B) | 1,370억~1,530억 달러(약 183조9,360억~205조4,180억원) 거래 주체별 분류에서 최대 규모 |
| 기업 수취 | 다른 주체의 기업 대상 지급까지 포함한 수취 비중 | 전체 결제 추정액의 58~64% |
| 주요 용도 | 서비스 수수료 | 560억 달러(약 75조1,860억원) 용도별 분류에서 최대 규모 |
| 급여·보수 | 430억 달러(약 57조7,320억원) | |
| 해외송금 | 370억 달러(약 49조6,760억원) | |
| 수취 시장 | 수취 국가 확인 거래의 상위 시장 | 태국·튀르키예·인도네시아·멕시코 순 태국 수취액 108억 달러(약 14조5,000억원) |
| 상위 8개 시장 중 고소득 시장 | 미국·한국·홍콩·대만 등 4곳 |
스테이블코인 연계 카드 결제액 200% 증가
스테이블코인 연계 카드를 통한 기업의 대금 결제도 확대되고 있다. 비자가 지난 1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6회계연도 누적 스테이블코인 연계 카드 결제액의 약 17%가 기업용·상업용 카드에서 발생했다. 이는 비자 결제망 데이터를 토대로 내부 카드 프로그램 분류 기준에 따라 산출한 수치다. 비자가 세계 각지에서 지원하는 스테이블코인 연계 카드 프로그램은 개인용과 기업용을 합쳐 160개 이상이며, 이들 프로그램의 결제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00%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마크 넬슨(Mark Nelsen) 비자 글로벌 상업·자금이동 솔루션 제품총괄은 "공급업체 대금 지급과 자금 운용, 국경 간 거래 등 기업 실무에서 스테이블코인 활용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 거래의 급증은 지난해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요 변화로 주목받았다. 가상자산 거래소 CEX.IO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스테이블코인 전송액은 27조6,000억 달러(약 3경7,055조7,600억원)로 집계됐다. 같은 해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거래액을 합친 금액을 7.7% 웃도는 규모였다. 당시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매매와 거래 정산에 활발하게 쓰였으며, 금융기관의 활용도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후 블룸버그가 올해 1월 인용한 아르테미스 애널리틱스 자료에서는 작년 전체 거래액이 전년 대비 72% 증가한 33조 달러(약 4경4,305조8,0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4분기 거래액만 11조 달러(약 1경4,768조6,000억원)를 기록하면서 연말까지 자금 유입과 거래 확대가 이어졌다.
달러 확보 수요에 현지 통화 활용 확대
이 과정에서 달러를 보유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아르테미스 공동창업자 앤서니 임(Anthony Yim)은 블룸버그에 "인플레이션과 경제 불안에 시달리는 국가의 주민들이 달러 보유 수단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선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달러 가치에 연동된 토큰을 전자지갑에 보관하면서 자국 통화의 구매력 하락에 대응하려는 수요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해 발표한 연구에서도 달러 강세기에 북미에서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스테이블코인 자금 흐름이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흐름이 세계 각지의 달러 수요를 충족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달러 확보와 보관, 필요할 때의 자금 이전이 블록체인을 통해 이뤄지는 사례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특히 올해에는 엔화와 싱가포르달러 등 아시아 통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에도 속도가 붙었다. 가상자산 분석 업체 코인데스크 리서치가 지난달 공개한 아시아·태평양 보고서에 따르면, 이 지역 관련 비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시가총액은 작년 초 1,280만 달러(약 171억8,500만원)에서 올해 7월 6,440만 달러(약 864억6,300만원)로 5배가량 증가했다. 엔화와 호주달러, 싱가포르달러, 필리핀페소, 위안화 연동 코인이 증가세를 이끈 것으로, 자국 통화를 기준으로 자금을 보유하고 거래하려는 이용자에게도 선택지가 생긴 것이다. 이 같은 시장 확대에는 모바일 지갑과 QR 결제, 실시간 이체가 널리 보급된 현지 금융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기존 디지털 결제에 익숙한 기업과 소비자를 바탕으로 현지 통화 스테이블코인의 이용 기반도 넓어지는 양상이다.
아시아 교역망 따라 현지 통화 결제 부상
아시아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성장 가능성은 국가마다 나뉜 통화·결제 체계와 맞물려 있다. 역내 기업들은 교역 과정에서 서로 다른 통화를 사용하다 보니 대금을 주고받을 때마다 환전 절차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달러를 매개로 거래하면 자국 통화를 달러로 바꾼 뒤 상대국 통화로 다시 환전하는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이에 역내 공급망을 따라 오가는 자금을 현지 통화로 직접 정산하려는 수요에도 관심이 쏠렸다.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의 허이코(Hoe Ee Khor)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IMF 기고문에서 아시아 생산망과 공급망의 연계가 강화되면서 현지 통화를 무역대금 표시와 정산에 활용할 경제적 유인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수요에 대응할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각국 통화를 디지털 토큰으로 전환해 직접 교환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중간 통화를 거치는 환전 단계를 줄이고, 국가별로 흩어진 거래 자금을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연결할 수 있다.
서로 다른 통화와 결제망을 스테이블코인으로 연결하는 시도는 동남아시아의 소비자 결제에서 먼저 구체화됐다. 비자와 블록체인 분석업체 듄(Dune)의 공동 보고서에 소개된 싱가포르달러 연동 코인 XSGD가 대표적이다. XSGD는 전자지갑과 카드, QR 결제망 사이에서 국경 간 자금 이전과 정산을 처리하는 데 쓰인다. 예컨대 태국 여행객이 싱가포르 매장에서 자국 전자지갑으로 QR코드를 찍어 결제하면, 내부적으로 XSGD를 통해 자금이 이전되는 방식이다. 이후 가맹점에는 싱가포르달러로 대금이 지급돼 판매자가 별도로 코인을 관리할 필요도 없다. 소비자는 익숙한 결제 수단을 그대로 쓰고 가맹점은 현지 통화로 매출을 받는 과정에서 스테이블코인이 두 나라의 결제망을 잇는 역할을 맡았다.
싱가포르·홍콩, 스테이블코인 중심 정산 기반 구축
국가 간 결제를 기업 자금 관리와 무역금융에 적용하려는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싱가포르통화청(MAS)이 지난해 10월 출범시킨 ‘블룸(BLOOM)’은 여러 통화와 금융망에 흩어진 정산 자산을 연결하기 위한 사업이다. 규제 기준을 충족하는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된 은행 부채 등을 활용해 주요 10개국(G10) 통화와 아시아 통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참여 금융기관들은 서로 다른 금융망에서 정산 자산을 이전하고 현금으로 상환할 수 있도록 연계 방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홍콩에서도 은행권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면서 홍콩달러 기반 디지털 결제망 구축이 본격화됐다.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지난 4월 HSBC와 스탠다드차타드가 참여한 합작사 앵커포인트 파이낸셜에 홍콩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첫 발행 면허를 부여했다. 은행권이 확보한 고객 기반과 해외 영업망을 활용해 홍콩 내 결제부터 국경 간 송금, 디지털자산 거래까지 사용처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맞춰 HSBC는 모바일 결제 서비스 ‘페이미(PayMe)’와 자사 모바일뱅킹 앱에 스테이블코인을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기존 앱에서 개인 간 송금과 가맹점 결제는 물론 토큰화된 투자상품 거래까지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