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겉으로는 다변화, 구조는 그대로인 미국 수입
[딥폴리시] 겉으로는 다변화, 구조는 그대로인 미국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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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는 변화, 생산은 이동하지 않은 공급망 부가가치 기준이 드러낸 다변화 한계 원산지 규칙 앞서는 환적・정책 공백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수입 통계에서 중국의 비중은 분명 낮아졌다. 중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2018년 21.6%에서 2020년대 중반 13~14% 수준으로 축소됐다. 공식 통계가 보여주는 변화다. 숫자만 놓고 보면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이 완화된 흐름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수치는 최종 통관 기준에 따른 결과에 가깝다. 생산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단계나 부가가치가 축적되는 경로까지 반영한 지표는 아니다. 핵심 부품과 주요 공정이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를 기준으로 보면, 위험의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통계상 공급국은 분산됐지만 생산과 의사결정의 중심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공급망 리스크를 줄였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판단이 필요하다. 통상 지표가 보여주는 분산과 실물 공급망이 작동하는 구조 사이의 간극, 바로 그 지점이 이번 논의의 출발점이다.
경로 조정에 그친 중국 비중 감소
중국 비중의 하락은 생산 거점의 이동이 아닌 무역 경로의 조정으로 나타났다. 중국에서 생산된 상품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태국 등 제3국을 거쳐 미국으로 유입되는 현상이 최근 몇 년 사이 뚜렷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수출입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이 과정에서 추가되는 공정은 조립이나 포장 등 제한적인 단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부가가치가 크게 늘지 않는 작업이 중심이다. 통관 기준상 원산지는 변경되지만, 핵심 부품의 생산지와 주요 제조 공정은 기존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수입 통계에는 공급국의 변화가 반영되지만, 생산 기반의 이동은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통상 충격이나 정책 변화가 발생하더라도 실제 위험 노출도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관세 인상이나 규제 강화가 반복되더라도 생산 결정권과 핵심 공정이 이동하지 않는 한 대응 여력은 제한된다. 국가별 수입 비중만으로 공급망 리스크를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주: 2017년 상반기(=100)를 기준으로 보면 중국으로부터의 미국 수입은 정체·감소한 반면, 베트남·멕시코·대만·태국 등 대체 교역국으로부터의 수입은 빠르게 증가했다.
부가가치로 본 다변화 실체
공급망이 실제로 분산됐는지는 선적 국가가 아니라 부가가치가 형성되는 위치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중국의 직접 점유율이 낮아졌다는 사실만으로 생산 기반이 이동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베트남과 멕시코의 대미 수출은 빠르게 증가했지만, 해당 수출품에 투입된 핵심 부품과 장비, 생산 기술은 여전히 중국 생산망과 연결된 경우가 적지 않다. 최종 조립이나 외형상의 공정은 이전됐지만, 가치의 상당 부분은 기존 네트워크에서 만들어지는 구조다.
이러한 현상은 부가가치 분석과 기업 소유 구조, 투입산출표를 함께 활용한 연구들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새롭게 공급국으로 분류되는 기업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 기업이 직접 소유하거나, 중국에서 조달한 중간재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생산을 이어가고 있다. 수입 통계상 공급국은 달라졌지만, 생산 결정권과 핵심 투입 요소는 이전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결과 통계가 보여주는 분산과 실제 공급망이 작동하는 구조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다변화 여부를 평가할 때 선적 국가 기준과 구조적 기준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이유다.

주: 2017년을 기준으로 미국 수입 점유율 변화를 보면 중국은 큰 폭의 감소를 기록한 반면, 베트남·멕시코·대만·태국 등은 점유율이 유의미하게 확대됐다.
원산지 규칙이 드러낸 환적 구조
관세와 통상 규제는 환적에 대한 유인을 분명히 키웠다. 중국산 제품이 동남아시아나 멕시코를 거쳐 최소한의 공정을 수행한 뒤 다른 원산지로 신고되는 방식이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이뤄지는 변경은 포장이나 단순 조립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연구들은 중국의 대베트남 수출이 증가한 시점과 중국의 대미 직접 수출이 감소한 시점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는 관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경로 조정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현행 원산지 규칙과 집행 역량만으로 이러한 움직임을 충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일부 국가는 산업 기반을 축적하며 생산 역량을 키우고 있지만, 다른 국가는 환적 거점으로 기능하는 데 그친다. 원산지 판단 기준과 집행 수준의 차이가 누적되면서 규칙 적용에는 불균형이 발생한다. 그 결과 통계상 원산지는 바뀌지만 실제 생산 구조는 유지되는 취약한 상태가 이어진다. 환적이 반복될수록 통상 규칙의 실효성과 공급망 투명성은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다.
통상 정책 기준의 재설정
교육과 조달, 정책 전반에서 평가 기준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공급망 분석은 참여 국가의 수가 아니라, 핵심 부품과 주요 공정이 얼마나 집중돼 있는지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공기관과 대학의 조달 체계 역시 공급업체의 수를 늘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단일 생산 거점에 대한 의존도를 점검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는 표면적 다변화와 실제 위험 구조를 구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정책 측면에서도 관세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투입산출표와 통관 데이터, 기업 소유 정보를 결합해 공급망의 구조적 의존도를 측정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여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현지 부가가치 창출과 생산 역량 축적을 요구하는 투자 조건이 병행될 때 정책 효과는 분명해진다. 이러한 기준이 정착될수록 통계가 보여주는 분산과 실물 공급망 구조 사이의 괴리는 점진적으로 축소될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Hidden Decoupling: Why U.S. Imports Look Diversified but Are Not — Series A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