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온다" 중동發 에너지 쇼크에 저성장·고물가 압박 가중, 각국 대응책 마련에 분주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온다" 중동發 에너지 쇼크에 저성장·고물가 압박 가중, 각국 대응책 마련에 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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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EU 등 주요국, 이란 전쟁 영향으로 경제 성장 제동 동남아 국가 바이오 연료 활용 확대, 식량 공급망 '비상' 세계 경제 성장 둔화 전망한 IMF, 물가는 가파른 상승세

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흐름이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이란 전쟁발(發) 에너지 쇼크가 물가 상승·임금 하락으로 이어지며 다수 국가의 경제 성장이 급속도로 둔화하는 양상이다. 각국 정부는 에너지 확보 및 경제 방어를 위한 대응책을 쏟아내고 있으나, 단기간 내 저성장·고물가 압박을 해소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주요국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등'
26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이란 전쟁으로 인해 주요국의 물가 상승률이 임금 상승률을 앞지르고 있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간 3.8%로 급등했으나, 같은 기간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년 대비 3.6% 오르는 데 그쳤다. 중동 분쟁의 영향으로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점진적 회복세를 보이던 미국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다시 축소 국면에 진입한 것이다. 향후 유가 오름세가 장기화한다면 미국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매달 평균 150달러(약 22만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보너스를 제외한 영국의 실질 평균 임금은 지난 1~3월 연간 0.1% 증가하는 데 그쳤으며, 향후 물가가 추가 상승할 경우 하락 전환할 것으로 예측된다. 영국 정부는 여름 휴가철 부가가치세 인하, 유류세 인상 연기 등 물가 안정을 위한 방안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영국 싱크탱크 레졸루션 재단의 제임스 스미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4번째로 고착화하는 실질 임금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임금이 줄어들고 가계의 가처분소득이 감소하면 경제 성장에는 자연스럽게 제동이 걸리게 된다.
유럽연합(EU)에서도 경제 위기가 가시화하는 추세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는 과정에서 중동산 LNG 수입을 확대한 바 있다. 이란 전쟁은 EU 역내 에너지 공급망과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대형 악재인 셈이다. 실제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21일 발표한 '2026년 춘계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EU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1%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지난해 가을 전망치 대비 0.3%P 낮아진 수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가을보다 1%P 높은 3.1%로 예상됐다.
동남아, 식량까지 연료로 전환
아시아 역시 혼란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야자, 코코넛, 사탕수수 등 핵심 농작물을 바이오 연료로 대거 전용하며 사태 대응에 나섰다. 디젤 및 휘발유와 식물성 바이오 연료의 혼합 비율을 강제로 끌어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일례로 태국 상무부는 디젤 내 팜유 혼합 표준을 B7(바이오디젤 7% 함유)로 올리고 대형차용 B20(20%) 공급 확대를 추진 중이다. 말레이시아 또한 오는 6월부터 국가 디젤 기준을 B15(15%)로 상향 조정할 예정이며, 인도네시아 당국은 정유업계에 오는 7월 1일까지 기존 40%였던 디젤의 팜유 혼합 비율을 50%까지 높이라고 기습 지시했다.
분석 기관들은 이러한 과격한 연료 전환 행보가 수출과 민생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것이라고 본다. 인도네시아 민간 싱크탱크 필수서비스개혁연구소(IESR)의 파비 투미와 전무이사는 "인도네시아의 B50 의무화로 인해 매년 해외로 수출되던 원유 팜유 물량 중 400만~500만 톤(전체 수출량의 최대 15.5%)이 연료 탱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로 인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연간 최대 15조 루피아(약 1조2,600억원)에 달하는 수출세 손실을 떠안게 됐다는 지적이다. 필리핀 역시 바이오디젤 혼합 표준을 상향 조정하려다 코코넛 공급망 붕괴 위기에 처했으며, 베트남과 태국도 식량 작물의 연료 전용에 따른 부작용을 겪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자원 통제 강화 기조도 관찰된다. 프라보워 수비안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회 연례 연설에서 팜유, 석탄 등 원자재를 정부가 지정한 국영 기업을 통해서만 수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 원자재는 최근 이란 전쟁 여파로 가격이 급등하며 인도네시아의 무역 수익을 책임져 온 자산들이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원자재 수출 과정에) 가격 축소 신고와 회계 축소 문제가 있다"며 "이 때문에 수천억 달러의 손실이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업자들이 유령 자회사를 통해 단가를 낮춰 부르는 다운계약(저청구) △계열사 간 이전 가격 조작 △수출 수익을 해외 비밀 계좌에 은닉하는 관행 등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것이다. 그는 “이 정책은 국가 세수를 가장 최적화할 것”이라며 “자원을 강력하게 통제할 용기가 없어서 국가 수입이 줄어드는 나약한 모습을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IMF의 비관적 경제 전망
이 밖에도 수많은 국가가 에너지 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에너지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비상조치를 취한 국가가 3월 말 55개국에서 최근 76개국으로 늘어났다고 추산한다. 호주는 연료·비료 비축을 위한 정부 지출을 100억 호주달러(약 11조원)까지 증액하겠다고 밝혔고, 인도는 국민에게 금 구매 및 해외여행 자제를 권고하며 보유 외환 확충에 나섰다. 프랑스는 운송·어업·농업 등의 분야에 7,000만 유로(약 1,220억원) 규모의 맞춤형 임시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혼란 속 세계 경제 전망은 나날이 악화하는 추세다. 지난 14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가 평균 3.1%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평균 100달러(약 15만원)를 지속적으로 웃돌 경우 성장률이 2%대로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지난 1월 대비 0.6%P 상향 조정된 4.4%로 제시됐다. IMF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 기대 상승, 금융시장 위험회피 심리 확산 등의 경로를 통해 세계 경제에 영향이 파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가별 지표를 살펴보면, 전쟁 당사국인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1월보다 0.1%P 내린 2.3%로 예측됐다. 유로존 성장 전망치는 0.2%P 낮아졌으며, 영국은 0.5%P 하락했다. 중동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성장률은 무려 1.4%P 하향 조정됐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이란의 에너지 시설 공격으로 생산 차질과 수출 감소 문제가 심화한 탓이다.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는 4.5%에서 4.4%로 0.1%P 내렸으나, 한국과 일본은 1월과 동일하게 각각 1.9%, 0.7%를 유지했다. 재정 투입 중심의 경기 부양책으로 높은 원유 수입 의존도에 따른 타격을 상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