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회생안] SSM부터 떼어내겠다는 홈플러스, 회생 시나리오 윤곽에도 공적자금 투입 가능성은 ‘글쎄’
[홈플러스 회생안] SSM부터 떼어내겠다는 홈플러스, 회생 시나리오 윤곽에도 공적자금 투입 가능성은 ‘글쎄’
입력
수정
자산 매각→신규 차입, 유동성 위기 대응
대주주 책임론에 갇힌 노조·정치권 반발
공적자금 투입 명분 희미, 회생 안갯속

홈플러스가 법원에 제출한 회생계획안을 통해 기업형 슈퍼마켓(SSM) 사업부를 분리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이를 바탕으로 추가 대출을 일으켜 운영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계산이다. 통매각이 사실상 좌초된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지만, 40여 개 점포 정리 방안을 함께 제시한 데 따른 노조의 반발은 변수다. 노동계와 정치권의 반발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선뜻 SSM 인수에 나설 원매자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공적기관 역할 간접 요구
3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29일 SSM 사업부인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분리 매각 방안 등을 담은 자체 회생계획안을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했다. 지난 3월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지 9개월 만의 일로, 통매각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좋은 SSM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홈플러스는 지금까지 5차례에 걸쳐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을 연장하며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통한 정상화를 추진했지만, 지난달 진행된 공개 입찰에 단 한 곳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시장의 외면을 받은 바 있다.
이번 계획안에서 홈플러스는 SSM 분리매각 시나리오와 함께 3,000억원 규모의 회생금융(DIP) 파이낸싱을 승인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회생 절차를 밟는 기업이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하는 DIP 대출은 기존 채권보다 우선 변제권을 갖는다. 이는 홈플러스가 SSM 매각을 통해 당장의 현금 유입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추가 대출을 일으켜 급한 유동성 위기를 넘기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최근 직원 급여를 분할 지급하고, 매장 전기료와 납품 대금 결제까지 지연될 정도로 현금 사정이 급격히 악화된 상태로 전해진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회사 내부에서 ‘알짜’ 사업부로 평가받는다. 전체 약 295개 점포 가운데 75%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주택가 인근 입지를 바탕으로 1시간 내 즉시배송 체계를 갖춘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2023년 기준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1,000억원대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이를 근거로 시장이 추산하는 매각가는 7,000억원 안팎이다. 통매각이 좌초된 상황에서 SSM을 분리해 팔 경우,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확인된 자산을 중심으로 투자자의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기대도 일부 존재한다.
분리 매각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회생절차 돌입 이전인 지난해 6월에도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을 추진했다가 성과 없이 중단한 경험이 있다. 당시 GS리테일과 이마트 등 복수의 유통 업체가 투자설명서를 검토하고 나섰지만, 본입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후 대만 유통업체 한 곳이 원매자로 떠오르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이탈했다. 이미 1년 전에도 시장의 반응이 냉담했던 자산을 회생 국면에서 다시 매각 카드로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 시장은 이번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주를 이룬다.
설상가상으로 시장 환경은 1년 사이 더 악화했다. 온라인 중심으로 소비 패턴이 빠르게 이동한 데다, 경기 침체와 소비 심리 위축이 장기화하면서 오프라인 유통 전반의 매력이 약화된 탓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와 직후에는 근거리 장보기 수요 증가로 SSM이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최근에는 이 흐름마저 둔화됐다. SSM 사업부를 보유한 기존 유통 대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각가로 거론되는 7,000억원 규모의 자금 부담을 감내하면서까지 인수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게 시장 전반의 평가다.

노조 “시한부 청산안” 비판
홈플러스가 제시한 회생계획안에는 향후 6년간 부실 점포 최대 41개를 폐점하고, 회생 전 홈플러스 본체를 매각한다는 계획도 담겼다. 홈플러스는 전체 약 120개 점포 가운데 메리츠금융그룹이 담보로 잡은 62개 점포를 제외한 나머지 임대 점포를 중심으로 폐점 대상을 추린다는 방침이다. 담보 설정이 없는 점포를 정리해 고정비 부담을 낮추고, 회생 절차 이후 매각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실제 회생계획안에는 과거 폐점이 보류됐던 15개 점포 중 가양·장림·일산·원천·울산북구점 등 5곳에 대해 영업 중단을 재검토하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점포 정리는 인력 운용 계획과도 직결된다. 홈플러스는 장기근속자를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과 함께 잔존 점포로 인력을 이동시키는 ‘전환 배치’ 방안을 병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 때문에 폐점이 곧바로 대규모 정리해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홈플러스 측 입장과는 달리 중장기 고용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특히 폐점 대상의 상당수가 수도권 외곽 또는 지방에 위치한 만큼 지역 거점 상실과 상권 붕괴 가능성도 함께 거론된다. 회생계획안이 법원의 인가를 받더라도, 현장 운영 과정에서 추가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노조는 이 같은 점포 폐점 계획을 “회생이 아닌 구조조정”으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마트산업노동조합과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30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홈플러스 회생계획안은 근본적인 정상화 방안이 아니라 시한부 청산 계획”이라며 “MBK파트너스의 책임 있는 출자나 담보 제공 없이 자산 매각과 점포 폐점만으로 위기를 넘기려는 방식은 전형적인 사모펀드식 회수 전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정부가 나서 대주주의 책임을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반응도 거세다. 민병덕 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은 “과거 기업이 큰 위기를 맞았을 때 오너들은 사재를 출연해 책임을 감내했다”며 “(홈플러스 사안 역시) 노동자와 가족을 포함해 약 30만 명의 생계가 걸린 사안인 만큼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조와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홈플러스 회생 절차가 진행될수록 노사 갈등은 점점 더 심화하는 모양새다. 이는 다시 향후 매각이나 추가 자금 조달 과정에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SSM 분리 매각에 대한 시장 반응이 미온적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인수 대상 업체의 사업성뿐 아니라 향후 노사 갈등에 따른 비용과 사회적 논란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홈플러스가 제시한 41개 점포 폐점 계획은 회생계획안의 핵심 내용이지만, 동시에 매각 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인수자로서는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위험 프리미엄을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고, 이는 매각가 하방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점포 정리를 통해 비용 구조를 가볍게 만들겠다는 구상이 오히려 회생의 또 다른 변수가 된 셈이다.
추가 매각·정상화 난도 동반 상승
이 같은 이유로 업계에선 홈플러스의 청산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는 상황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현실화 가능성이 높은 SSM 분리 매각이 성사된다고 해도, 대형마트 점포 중심의 부동산 자산 추가 매각이나 정상화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는 가치 구조의 문제가 거론된다. 조사위원인 삼일회계법인은 앞서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를 3조6,816억원으로, 계속기업가치를 2조5,059억원으로 평가했다. 원칙적으로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크면 회생계획 인가가 어렵다. 청산할 경우 채권자가 회생보다 더 많은 금액을 회수할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홈플러스 회생절차가 유지된 것은 인가 전 M&A라는 예외 조건 때문이다. 법원은 새로운 인수자가 청산가치 이상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기업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을 경우 회생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단 한 곳의 인수 후보도 나서지 않으면서 그 전제가 무너졌다. 법원 기준을 충족하는 인수가를 제시할 주체가 없는 상황에서의 회생은 사실상 추가 자금 투입을 목적으로 하는 시간 벌기에 가깝다.
자금 구조를 들여다보면 부담은 더 분명해진다. 지난해 말 기준 홈플러스의 1년 이내 상환해야 할 유동부채는 2조6,499억원에 달한다. 반면 1년 내 현금화 가능한 유동자산은 8,578억원, 당좌자산은 4,080억원 수준에 그쳤다. 유동자산을 모두 동원해도 1조7,921억원의 단기부채가 남는다. 여기에 인수 대금과 별도로 정상화를 위해 최소 2조원 안팎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홈플러스 후 정상화에는 최소 5조원대에 달하는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홈플러스의 회생보다 청산 시나리오가 더 합리적이라는 시각이 힘을 얻는다.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이 수반되지 않는 회생계획안은 채권단 동의를 얻기 어렵고, 노조 반발로 셀프 구조조정마저 지연되는 상황에서는 선택지가 더욱 좁아지는 까닭이다. 공적자금 투입 가능성 또한 꾸준히 거론되지만, 산업은행을 비롯한 정책금융기관이 자발적으로 나설 유인은 크지 않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결국 SSM 매각 이후 공적자금을 투입할 만큼의 정책적 명분을 제시할 수 있느냐가 회생의 마지막 관문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