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체제 해체’ 나선 일본, 군사기술 증강 이어 방위비 ‘역대 최대’ 증액
‘전후 체제 해체’ 나선 일본, 군사기술 증강 이어 방위비 ‘역대 최대’ 증액
입력
수정
군사 영역으로 번지는 中日 갈등 日, 내년 방위비 85조원으로 '사상 최대' 미사일·드론 전력 확대 등 군사력 강화

중·일 갈등이 갈수록 격화하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내년 사상 최대 규모의 방위비(방위 예산) 편성에 나섰다. 방위비 증액과 함께 방위 장비 수출 규제 완화 등 방위력 강화 정책을 본격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장사정 미사일과 극초음속 무기, 핵추진 잠수함 검토까지 포괄하는 이번 방위력 증강은 일본이 방어 전용이라는 전후 안보 원칙에서 사실상 이탈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일본 우파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전쟁 가능국 전환 구상이 제도와 예산의 형태로 구체화되는 국면으로 평가된다.
태평양 방어 전담 조직 신설 등 중국 견제 강화
18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2026회계연도(2026년 4월∼2027년 3월) 방위비를 9조 엔(약 85조원) 규모로 조율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안보 정책의 근간인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추진 중이지만 2026회계연도 방위비는 2022년 책정된 기존 문서를 토대로 편성할 방침이다. 예산안은 이달 말 각의(국무회의)에서 확정된다.
이번 예산 요구안은 기시다 후미오 내각 시절 수립된 ‘방위력 정비 계획’의 일환이다. 일본 정부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방위비 총액을 43조 엔(약 408조원)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2026년도 예산안은 이 계획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올해 방위예산은 8조7,000억 엔(약 82조5,000억원)이었다.
내년도 방위 예산에는 반격 능력(적기지 공격 능력)의 수단이 될 장사정 미사일, '다층적 연안방어 체제'(실드·SHIELD) 구축에 필요한 공격용 무인기(드론) 확보를 위한 예산이 포함된다. 이는 일본이 추진 중인 무인기 기반의 해안 방어 시스템의 전력 의존도를 줄이고 감시 정찰 및 타격 효율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장사정 미사일 중 하나로 음속의 5배 이상으로 비행해 요격이 어려운 '극초음속 유도탄'도 도입한다. 일본의 군사 전략이 기존의 수동적 방어에서 능동적 억제와 타격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울러 우주 영역에서의 능력 강화를 위해 '우주작전집단(가칭)'을 신설하고, 항공자위대를 '항공우주자위대'로 개편하기로 했다. 오키나와현 나하시에 위치한 육상자위대 나하 주둔지를 거점으로 하는 제15여단도 사단으로 격상시켜 중국군의 활동이 늘어나고 있는 난세이 지역 방어 체제를 강화한다. 태평양에서 군사 활동을 확대하는 중국군을 염두에 두고 자위대 체계를 점검할 '태평양 방어 구상실'도 새로 설치한다. 이와 동시에 자위대원 처우 개선 작업도 병행될 예정이다.
전범국 일본, 전쟁 가능한 나라로
일본 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일본 우파의 숙원인 '전쟁 가능국 전환'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생전 평화헌법(平和憲法) 개정을 핵심 과제로 삼고 강력히 추진해 왔다. 평화헌법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제정된 헌법으로, 일본의 비무장화와 천황의 정치적 권한 축소 등을 골자로 한다. 그중에서도 아베 정권 시절 일본은 개헌을 통해 헌법 9조에 손대려 했다. 헌법 9조에는 ‘전쟁을 포기하고, 이를 위한 군대는 보유할 수 없으며 교전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지금도 자민당은 9조의 문언을 유지하는 대신 자위대 존립의 필요성을 9조 2항에 명시하자는 주장을 밀어붙이고 있다. 패전국으로서 정식 국군 대신 자위대만 운용할 수 있는 일본이 헌법에 자위대를 명시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군사적 지위를 높이고 유사(전쟁 등 긴급 사태)시 자위대를 주변국에 파견하기 수월하게 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른 의미로는 전쟁을 일으킬 자격을 얻으려는 것이다.
일본이 군사 기술 증강에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6월 일본 육상 자위대는 일본 영토 내에서 처음으로 미사일 시험을 실시했다. 육상 자위대 제1포병여단이 실시한 훈련에는 약 300명의 군인이 참여해 홋카이도 남부 해안에서 약 40km 떨어진 무인 선박을 표적으로 삼아 훈련 미사일을 발사했다. 최초로 시행된 이번 미사일 시험은 일본이 더욱 자립적인 군대를 지향하고 있으며, 지역 해역에서 중국의 해군 활동이 점차 강화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반격 능력을 갖추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은 평화헌법에 따라 자위를 위한 무력행사에만 제한을 뒀지만 2022년에 중국을 가장 큰 전략적 도전으로 지정하고 더욱 긴밀한 미일 동맹을 촉구하는 5개년 안보 전략을 채택하면서 이 정책에서 크게 벗어났다.
일본은 수중 전력 체계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1일 기하라 미노루(木原稔) 관방장관을 통해 핵추진 잠수함 도입 가능성을 공식화했다. 기하라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억지력·대처력 향상에 필요한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9월 일본 방위성 전문가 회의는 "장사정 미사일을 탑재한 채 장거리 장시간 잠항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며 차세대 동력 잠수함 도입 검토를 권고했다. 지난달 21일에는 집권 자민당과 제2야당 일본유신회가 연정 합의문에 '수직발사장치(VLS)를 탑재한 차세대 추진력 잠수함 보유'를 명시했다.
일본 방위성 관계자들은 핵추진 잠수함 도입으로 대잠 작전 능력과 정보·감시·정찰(ISR) 역량이 대폭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미국 및 동맹국 핵잠수함 함대와 상호운용성이 높아져 연합 작전 능력도 개선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일본이 2028년까지 스텔스 시제함 개발을 완료하고, 2026년까지 방위 지침 개정을 통해 핵추진 자산의 작전 배치 범위를 확대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국·호주와 합동 훈련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中 '일본 군국주의' 맹비난
일본의 군사 역량 강화에 대해 중국은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에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5일 "최근 일본은 군국주의 부활을 노리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 성과와 전후 국제질서를 훼손하려는 위험한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한 "역사를 잊는 것은 배반이며, 죄책을 부정하는 것은 재범을 의미한다"고 경고하면서 "일본 우익 정치인들은 역사를 깊이 반성하고 군국주의 잔재를 철저히 청산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번 방위비 증액을 두고도 비난을 쏟아냈다. 인민일보 계열의 영어신문 글로벌타임스는 외교·안보 전문가 분석을 인용해 “일본의 방위비 증액 계획은 군국주의 부활의 위험한 징후”라고 지적했다. 중국 외교 싱크탱크인 국제문제연구원의 샹하오위 아태연구소 특별초빙연구원은 글로벌타임스에 “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방 전투망 구축이라는 핵심 목표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서 “고도의 군사적 팽창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샹 연구원은 “일본은 매년 군사력을 확장하고 군사적 금기를 점진적으로 깨뜨려 국제 사회와 자국민 모두의 군사적 감수성을 점차 무뎌지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사 전문가 쑹중핑도 “안보 불안을 구실로 정당화되는 일본의 이 같은 군사력 증강은 여러 연쇄반응을 일으킬 것”이라며 “동아시아의 군비 경쟁을 촉발할 것이고, 남서부 섬들에 군사력을 배치하면 동중국해와 대만해협의 완충지대가 축소돼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일본의 급진적 정책은 아시아 이웃 국가를 자극하고, 여러 아시아 국가들에게 2차 세계대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릴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군사안보 전문가들은 일본의 강경 우파 노선이 지속될 경우 중·일 간 군사적 긴장은 일시적 이벤트가 아닌 상수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는 동북아시아 안보 환경 전반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며 주변국들로 하여금 대응 비용을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일본·필리핀·호주로 이어지는 해양 동맹 구도가 구체화될수록 한국에 대한 방위비 증강 압박 역시 점차 노골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