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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와 ‘포괄적 경제동맹’ 카드 꺼낸 러시아, 달러 체제 복귀 의지 드러내

美와 ‘포괄적 경제동맹’ 카드 꺼낸 러시아, 달러 체제 복귀 의지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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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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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통화+정책’ 경제동맹 제안
전쟁 비용·제재 압박·동결자산 변수
달러 패권 회복 둘러싼 이해관계 눈길

러시아가 미국 달러 결제 시스템으로의 복귀를 타진하며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탈(脫)달러 기조를 강화해 온 러시아가 통화 전략을 종전 협상 카드로 꺼내 들었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에너지 및 원자재 협력 구상과 맞물린 러시아의 이번 제안은 전쟁 장기화에 따른 비용 부담과 서방의 제재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이에 글로벌 탈달러 흐름 속에서 통화 패권 강화라는 과제를 떠안은 미국의 셈법도 복잡하게 흘러가는 모습이다. 

통화 체제 전환 의지 내비쳐

12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이 러시아 고위급 관료들의 내부 문건을 입수한 바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는 지난 수년간 추진해 온 탈달러 정책을 폐기하고, 미국 달러 결제 시스템으로 복귀를 타진 중이다. 이를 위해 미국에 포괄적 경제 파트너십을 제안했다는 설명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국면과 연계해 통화 체제 선택을 협상 카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제안은 단순 금융 정책 전환을 넘어선 외교·경제 복합 구상으로 읽힌다. 

문건에는 우크라이나 종전 이후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수렴할 수 있는 7가지 핵심 분야가 구체적으로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는 △화석 연료 공동 옹호 △액화천연가스(LNG)와 해상 유전 개발 △리튬·구리·니켈 등 핵심 광물 자원 협력 △인공지능(AI)과 연계한 원자력 에너지 협력 △러시아 항공기 현대화 장기 계약 △미국 기업의 러시아 제조업 참여 △과거 철수 기업에 대한 손실 보전 및 재진입 우대 조건 등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친환경 정책에 회의적인 미국 정치 지형을 정밀하게 겨냥한 구성으로 평가된다.

러시아가 미국과 손을 맞잡으면, 4년 만에 다시 달러 결제 시스템에 복귀하게 된다. 러시아 중앙은행 자료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전쟁 직전인 2022년 1월 러시아 수출 대금 결제 통화에서 달러(52%)와 유로(35%)의 합산 비중은 87%에 달했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그 비중은 53%로 낮아졌고, 반면 루블·위안 결제 비중은 47%로 확대됐다. 서방의 국제금융결제망(SWIFT) 퇴출 이후에도 일부 원유 거래에서 달러·유로 결제가 이어졌지만, 대(對)서방 에너지 수출 축소가 통화 비중 변화를 가속했다.

에너지 교역 구조 역시 통화 전환과 맞물려 재편됐다.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힘-1(POS-1)’ 가스관을 통해 중국에 연간 38bcm(1bcm=10억㎥)의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사할린에서 중국 북부로 연결되는 극동가스관을 통해 연간 10bcm를 추가 공급한다는 구상을 밝혔다. 유럽에서 감소한 수출 물량을 중국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루블·위안화 결제 비중은 한층 확대됐고, 이는 다시 달러·유로 비중 급감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교역 경로 전환과 결제 통화 비중 변화 속에서 등장한 러시아의 태세 전환은 에너지 수출 구조와 통화 전략을 동시에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다만 미국이 러시아의 제안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서방의 제재 이후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부품 공급처가 된 중국과의 관계를 러시아가 단기간 내 끊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계 인사는 블룸버그에 “(러시아의 제안은) 미국과 유럽의 동맹 관계에 균열을 내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꼬집으며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고, 거창하기만 한 약속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유인하려는 전술일 수 있다”고 짚었다. 

산업 전반 타격, 추가 제재 가능성도

이러한 의혹의 눈초리 속에서도 러시아가 미국에 손을 내민 배경에는 전쟁 장기화에 따른 비용 및 제재 압박이 자리한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금융·에너지·무역 전반에 걸친 제재가 누적되면서 러시아 경제의 외화 수입 기반은 좁아졌다. 특히 에너지 수출은 러시아 국가 재정의 핵심 축인 만큼, 전시 재정 유지 능력과 직결된다. 종전 협상 국면에서 러시아가 미국에 적극적으로 경제 협력 카드를 제시한 배경에는 전쟁을 서둘러 끝내지 않을 경우 손실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를 향한 국제사회의 제재 범위는 전방위적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이달 초 유럽연합(EU)은 러시아와의 가상자산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러시아 정부 및 관련 기관이 가상자산을 제재 회피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판단에서다. 제재 대상에는 러시아에 본사를 둔 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업체를 비롯해 러시아 현지 플랫폼에서 분사했거나 러시아와 연관성이 있는 해외 기관, 러시아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루블 관련 거래 등이 두루 포함될 전망이다. 

에너지 부문에서는 물리적·가격적 압박이 동시에 작동하는 모양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 보도에서 “판매처를 찾지 못한 러시아산 원유 1억4,300만 배럴이 해상에 고립돼 있으며, 가격 할인 폭도 전쟁 초기 수준으로 확대됐다”고 전했다. 실제 러시아 주력 유종인 우랄(Urals)산 원유 가격은 이달 초 기준 배럴당 45달러(약 6만5,000원)를 기록하며 국제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대비 27달러(약 3만9,000원)가량 낮은 수준을 보였다. 운송 측면에서는 ‘그림자 함대(Shadow Fleet)’ 선박에 대한 압류가 이어지며 거래 비용과 위험 프리미엄이 동반 상승하는 환경이 조성됐다.

여기에 동결자산 변수가 겹친다. 지난해 말 미국은 우크라이나 재건에 2,000억 달러(약 289조원) 규모의 러시아 동결자산을 직접 운용하겠다는 구상을 휴전 협정 문서에 포함했다. 이에 EU 역시 동결자산을 활용한 ‘배상금 대출’ 방안을 공식화했고, 2027년까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만약 동결자산 운용과 에너지 공급 복원 구상이 서방의 구상대로 흘러갈 경우, 러시아는 자산 통제권과 재정 여력 측면에서 중대한 손실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달러 주도 통화 질서 균열 흐름

미국의 셈법도 갈수록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그간 국제 질서에서 미국의 패권은 군사력과 달러라는 두 축으로 지탱됐다. 그러나 2022년 러시아 제재 이후 각국이 달러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2024년에는 브라질과 중국이 헤알-위안화 교역에 합의하면서 달러 중심 질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2012년 보유했던 1,500억 달러(약 216조원) 상당의 미 재무부 채권을 2018년 모두 처분했고, 중국은 2013년 1조3,000억 달러(약 1,876조원)에서 2022년 1월 1조1,000억 달러(약 1,588조원) 수준으로 줄였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미 재무부 채권 보유량을 2020년 2월 1,850억 달러(약 267조원)에서 2022년 1월 1,190억 달러(약 171조원)로 감축했다. 이러한 사우디의 움직임은 ‘페트로달러’ 체제의 핵심 축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사우디는 1974년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석유 거래를 달러로 결제하고, 산유국의 오일달러를 미국 국채로 환류시키는 체제를 구축했다. 그러나 2020년대 들어서는 중국해양석유총공사와의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논의하는 등 통화 다변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다수 포착됐다. 이는 곧 달러 패권의 약화 가능성을 시사한다.

미국 내부에서도 자산 배분 조정 움직임이 감지된다. 올해 초 여론조사기관 모닝스타가 전 세계 기관 투자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0%는 ‘미국 자산 비중을 줄였거나 줄일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들이 미국 자산 축소를 검토하는 이유로는 미국의 관세 정책과 무역 마찰(76%), 미 행정부의 전반적 정책(73%), 환율 변동과 달러 약세(62%) 등이 거론됐다. 실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지수는 지난해 1월 이후 10% 이상 하락하며 같은 기간 20% 가까이 상승한 스위스프랑과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를 달러 패권의 즉각적인 붕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달러는 여전히 각국 중앙은행 외환보유고의 60%를 차지하며 핵심 통화 지위를 유지 중인 까닭이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결제 통화·외환보유고·투자 자산의 다변화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작금의 환경을 고려하면, 미국 역시 달러 결제망을 외교·안보 전략과 결합해 재정비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 또한 제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러시아의 달러 복귀 제안은 미국의 달러 네트워크 재확장과 제재 지렛대 유지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겨냥한 전략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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