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버블] 채권 1조 달러 시대 목전, AI 인프라 ‘쩐의 전쟁’ 돌입
[AI 버블] 채권 1조 달러 시대 목전, AI 인프라 ‘쩐의 전쟁’ 돌입
입력
수정
자본 투자 급증, 100년물 채권까지 등장
숨겨진 부채·투자 재원 논란 본격화 양상
장기 상환 부담, 미래 현금흐름 압박 조짐

올해 글로벌 기술·인공지능(AI) 관련 채권 발행이 역대급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빅테크의 AI 인프라 경쟁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히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단기간에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데 이어 100년 만기 채권 발행까지 추진하고 나서면서 자본시장을 활용한 장기 투자 전략을 행동으로 옮겼다. 이에 시장에서는 빅테크의 장부 외 부채 논란과 잉여현금흐름 악화 지표가 연이어 제기되며 재무 건전성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하는 추세다. AI 인프라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가운데, 투자 회수 시점과 재무 체력의 격차가 최대 변수로 부상했다.
4대 빅테크 CAPEX 6,000억 달러 상회 전망
12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기술·AI 관련 채권 발행 규모는 9,900억 달러(약 1,430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지난해 7,100억 달러(약 1,020조원)에서 28%가량 증가한 수치로, 블룸버그는 이러한 자금 대부분이 AI 인프라 구축에 투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모건스탠리 역시 같은 날 보고서에서 올해 글로벌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자금 수요가 1조5,000억 달러(약 2,160조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했다. 이 같은 흐름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전력 인프라를 선점하기 위한 자본 집약적 경쟁의 본격화를 알리며 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 집계에서도 아마존·알파벳·메타·마이크로소프트(MS) 등 4대 빅테크의 올해 자본 지출(CAPEX)이 6,300억 달러(약 908조원)를 상회할 것으로 관측됐다. 이 가운데 아마존은 AI 개발과 인프라에 2,000억 달러(약 290조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히며 시장 예상치였던 1,500억 달러(약 216조원)를 크게 웃돌았다.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지난해 매출은 1,420억 달러(약 204조원)로 전년 대비 24% 성장했으나, 대규모 투자가 회사의 재정 건전성을 위협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며 아마존의 주가는 지난 6일에만 시간외거래에서 11.5% 하락했다.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알파벳은 영국 파운드화로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최근 주관사 은행단을 꾸렸다. 이는 각기 만기가 다른 7종류 달러화 채권 발행과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알파벳의 40년 만기 회사채는 미국 국채 대비 0.95%포인트의 가산금리(스프레드)로 가격이 책정됐다. 알파벳은 지난해 11월에도 미국 채권시장에서 175억 달러(약 25조5,000억원), 유럽에서 65억 유로(약 11조2,800억원)를 조달했는데, 당시 발행한 50년물은 지난해 미국에서 기술기업이 발행한 채권 중 가장 만기가 길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는 이러한 초장기 채권 발행이 빅테크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 올해 미국 기업채 발행 규모가 2조4,600억 달러(약 3,550조원)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모건스탠리는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로 불리는 빅테크들이 최대 4,000억 달러(약 576조원) 상당의 부채를 추가 조달할 전망”이라면서 “과거엔 영업을 통해 확보한 현금으로 충당하던 설비 투자가 채권 시장 의존 구조로 전환되면서 AI 인프라 경쟁도 기업의 자본 조달 방식 자체를 재편하는 단계에 들어선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금융 시스템에 악영향 우려
이처럼 AI 인프라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 규모가 커지면서 시장에서는 이들 기업의 숨겨진 부채와 투자 재원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했다. 표면상으로는 투자 확대와 성장 스토리가 강조되지만, 자금 조달 구조를 들여다보면 장부에 즉각 반영되지 않는 차입이 상당 규모로 누적됐다는 지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오라클, 메타, xAI, 코어위브 등 4개 기업이 특수목적법인(SPV)을 통해 조달한 AI 관련 자금이 1,186억 달러(약 170조원)에 이른다”며 “기업 본체의 재무제표상 부채로 직접 인식되지 않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오라클은 SPV를 활용해 660억 달러(약 96조원)를 조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SPV가 텍사스·위스콘신·뉴멕시코 등지의 데이터센터를 소유하고, 오라클이 이를 임차하는 방식이다. 또 메타는 ‘베녜 인베스터(Beignet Investor)’라는 SPV를 통해 300억 달러(약 44조원)를, xAI는 별도 SPV를 통해 200억 달러(약 29조원)를 각각 조달했다. 코어위브의 SPV 부채는 26억 달러(약 3조7,000억원)로 집계됐다. 자금을 공급한 주체는 핌코, 블랙록, 아폴로, 블루아울, JP모건 등 월가 주요 금융사들이다. SPV 구조에서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할 경우, 데이터센터 부지나 설비 같은 실물 자산에 대해서만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고, 운영사 본체에는 직접 상환 책임을 묻기 어렵다.
투자 규모 자체도 시장의 의구심을 키웠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빅테크업계에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간 총 1조1,500억 달러(약 1,660조원)가 투입될 것으로 예측하며 이 가운데 60%가량이 올해 집중될 것으로 봤다. 알파벳은 올해 1,850억 달러(약 266조원)를 설비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고, 오라클도 설비 투자 규모로 420억 달러(약 60조원)를 제시했다. 골드만삭스는 “오라클의 투자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이지만, 회사채 발행을 통해 공격적으로 자금을 조달한다는 점에서 잉여현금흐름 대비 자본지출 속도가 과도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잉여현금흐름은 영업활동 현금에서 설비투자를 제외한 잔여 자금으로, 투자 확대 국면에서 가장 먼저 압박을 받는 지표다.
이는 다시 금융 시스템에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SPV 자금의 주요 공급처로 꼽히는 사모대출 시장은 연간 1조7,000억 달러(약 2,470조원) 규모에 달할 정도로 급성장했으나, 여전히 자산 가치 급등과 환금성 부족, 차입자 집중 등 취약성은 떨쳐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FT는 “공격적으로 자금을 차입한 AI 기업이 재무적 어려움에 직면할 경우, 해당 기업의 부채 구조는 예측하기 어려운 경로로 금융시장 전반에 전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장을 뜨겁게 달군 ‘AI 거품’ 담론이 기술 고평가 국면을 지나 신용 리스크의 새로운 축으로 부상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현금흐름 대비 과도한 자본지출” 비판
이에 업계에서도 경쟁 과열과 투자금 상환에 따른 재정 압박을 이전보다 한층 무겁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블룸버그는 빅테크들의 경쟁적인 설비투자를 “19세기 미국 철도망 구축, 뉴딜정책 시대의 공공투자, 2차 세계대전 이후 고속도로 건설 등 역사적 사건에 비견될 정도”라고 평가하며 “데이터센터와 AI 연산 인프라를 선점하지 못하면 시장 지배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전면에 깔려 있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누구도 뒤처질 수 없는 구도에서 투자 규모는 개별 기업의 핵심 전략이자, 방어선이 됐다는 설명이다.
경쟁 격화는 다시 기업 재무 구조 재편으로 이어진다. 일례로 지난해 말 메타의 부동산·설비 자산은 2019년 대비 5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과거 소프트웨어와 인재 중심이던 자산 구조가 하드웨어·전력·반도체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고정비 비중이 높아진 데 따른 결과다. 이 때문에 소수 기업에 집중된 대규모 지출이 미국 전체 경제지표를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확장은 전력 수급 불균형과 전기료 상승, 지역사회와의 자원 갈등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현금흐름 지표에서도 부담은 수치로 드러난다. 투자정보 매체 구루포커스 집계에서 최근 1년간 메타의 주당 잉여현금흐름 성장률은 전년 대비 13.3% 감소했고, 아마존은 75.7% 급락했다. 구루포커스는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는 기업이라도 현금흐름이 안 좋으면 장부상 흑자 도산할 정도로 현금흐름이나 유동성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며 “빅테크의 현금흐름이 안 좋다는 것은 AI 버블 우려에 적색 신호등이 켜졌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시장 기대와 실물 성과 사이의 간극도 변수로 지목된다. AI 전문 벤처캐피탈 이론벤처스의 토마시 퉁구즈 선임연구원은 “엔비디아는 2023년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450조원)를 달성한 이후 불과 2년 만인 지난해 10월 5조 달러(약 7,230조원)를 넘어섰다”면서 “이러한 AI 투자 열풍은 과거 ‘닷컴 버블’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주요 AI 기업 간 수요·공급이 얽힌 순환 구조에서 어느 한 축이 흔들리면, 가치사슬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각 기업의 현금창출력과 상환 능력 차이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경쟁 과열 국면에서 재무 체력과 투자 회수 속도의 격차가 기업 간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