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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자본을 넘어서 규칙으로 향하는 중앙아시아 경쟁

[딥폴리시] 자본을 넘어서 규칙으로 향하는 중앙아시아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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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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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읽고, 사실 위에 통찰을 더하는 글을 전합니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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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이후 경쟁, 제도 설계에서 시작
AI 규칙이 가르는 장기 영향력 경계
투자 규모보다 집행 구조가 남기는 힘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외부 영향력 경쟁의 축이 이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도로·철도·에너지 설비 등 인프라 확장이 주된 경쟁 무대였다면, 최근에는 계약 구조와 제도 설계가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물리적 자산의 중요성은 여전하지만, 장기적 영향력은 누가 규칙을 설계하고 이를 어떻게 집행하느냐에 따라 갈리는 흐름이 분명해졌다.

이 변화 속에서 중국과 일본의 접근 방식은 뚜렷하게 대비된다. 중국이 대규모 자본 투입과 신속한 공사 집행을 중심으로 기존 전략을 이어가는 반면, 일본은 행정·법률 역량을 앞세워 제도 구축을 핵심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경쟁의 기준이 투자 규모에서 규칙을 설계하는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전환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선택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단기적 가시성과 즉각적 성과만으로는 기술 도입, 공공 조달, 분쟁 해결까지 포괄하는 향후 경제 운영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이제 자본 유치와 더불어, 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설계할 것인지까지 함께 판단해야 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제도 역량 전면에 내세운 일본의 접근

일본은 중앙아시아 협력의 중심축을 거버넌스에 두는 전략을 분명히 했다. 2025년 12월 20일 도쿄에서 열린 ‘중앙아시아 플러스 일본 대화(Central Asia plus Japan Dialogue)’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도쿄 선언(Tokyo Declaration)은 환경 지속가능성, 연결성, 교육을 핵심 의제로 제시하며 물리적 사업 확대보다 제도와 인적 기반을 우선하겠다는 방향을 명확히 했다.

이후 제시된 수치 역시 같은 맥락을 따른다. 일본은 약 190억 달러(약 26조원) 규모의 5년 비즈니스 목표를 제시하면서 인력 양성과 행정 역량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에 자금을 집중하기보다, 규칙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능력을 축적하는 데 초점을 맞춘 선택이다.

이 접근은 속도보다 구조를 중시하는 전략으로 이어진다.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가 드러나는 공사보다는, 제도와 행정 역량이 점진적으로 누적되는 경로를 택했다. 중앙아시아 각국이 향후 투자와 기술 도입 과정에서 자체 판단력을 확보하도록 돕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일본은 협력을 일회성 사업이 아닌 장기적 관계로 정착시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벌어진 자본 투입 규모의 격차
주: 2025년 기준 중국의 일대일로(BRI)는 중앙아시아에서 연간 약 2,135억 달러(약 293조원)를 집행한 반면, 일본의 중앙아시아 협력은 연환산 기준 약 38억 달러(약 5조2,000억원)에 그쳤다.

자본 규모가 만드는 현실적 격차

자금 투입 규모에서의 격차는 뚜렷하다. 2025년 상반기 중국의 일대일로 이니셔티브(Belt and Road Initiative, BRI)는 계약 규모 662억 달러(약 90조원), 투자 571억 달러(약 78조원)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에너지와 광업을 중심으로 대형 프로젝트가 집중되면서 중앙아시아 전반에서 가시적 성과가 빠르게 나타났다.

이 투자는 단기 효과에 그치지 않았다.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운영하는 과정에서 유지보수 계약과 장기 운영권이 뒤따랐고, 이는 협상력 확대로 이어졌다. 시설 운영과 데이터 접근, 후속 사업까지 연결되는 구조가 형성되며 중국의 존재감은 누적됐다. 자본 규모가 곧 영향력으로 전환되는 전형적인 경로다.

이에 비해 일본의 약 190억 달러(약 26조원) 규모 5년 계획은 성격이 다르다. 동일한 규모 경쟁에 나서기보다는, 자본을 투입하는 방식 자체를 달리 제시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이로 인해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단기적 가시성과 장기적 제도 축적 사이에서 선택의 균형을 고민하게 됐다. 대규모 자본이 제공하는 즉각적 효과와 제도가 만드는 지속성 간의 간극이 정책 판단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AI 규칙 둘러싼 제도 경쟁

일본은 인공지능(AI)을 제도 경쟁의 핵심 영역으로 설정했다. AI는 기술 성능보다 조달 기준과 검증 규칙이 먼저 작동하는 분야다. 이 기준이 느슨할 경우, 초기 진입 기업이 데이터와 표준을 선점하며 시장 구조를 고착화하기 쉽다. 일본이 AI를 제도 전략의 시험대로 선택한 이유다.

일본의 접근은 규칙을 선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작동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규제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단기 교육, 공공 부문 윤리 훈련, 공동 연구실 운영, 소규모 실증 프로젝트가 병행되고 있다. 각국이 외부 기준을 단순 수용하는 수준을 넘어, 자체 규칙을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조다. 기술 이전보다 제도 학습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접근은 연구 결과로도 뒷받침된다. 핀란드 유바스퀼라 대학교(University of Jyväskylä) 정보기술학부의 Hota와 Jokinen 연구에 따르면, 표준화된 규칙 템플릿은 입법 초기의 설계 부담을 낮추고 제도 도입 속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산 유지보수 시점 예측이나 관개 효율 개선 사례는 제도 논의가 실제 행정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를 둘러싼 경쟁은 기술 우열이 아니라, 제도를 누가 먼저 정착시키느냐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드러난 중국과 일본의 참여 방식 차이
주: 중국BRI는 중앙아시아에서 물리적 인프라 비중이 약 75%로 가장 높게 나타난 반면, 일본의 실크로드 외교는 거버넌스와 제도 구축 비중이 약 45%를 차지했다.

장기 영향력 기준은 규칙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은 점차 규칙 설계와 집행 역량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25년 상반기 중앙아시아는 중국의 BRI를 통해 약 250억 달러(약 34조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대규모 자본이 만들어내는 단기 효과를 확인했다. 성장 속도와 가시적 성과 측면에서 자본의 힘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 수치로 드러난다.

동시에 다른 경로도 제시되고 있다. 일본은 교육·행정·사법 역량을 중심으로, 장기적 의존을 줄이는 접근을 이어가고 있다. 제도를 설계하고 집행할 수 있는 능력이 축적될 경우, 투자 유치 이후 운영 단계에서 정책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는 단순한 자본 유입보다 계약 관리와 분쟁 대응까지 포함한 구조를 중시하는 방향이다.

이 전략은 확장 가능성도 갖는다. 개발은행이나 동맹국 자금을 거버넌스 기준과 연계할 경우, 일본의 제도 중심 접근은 자본 규모의 한계를 넘어설 여지가 생긴다. 자금은 외부에서 조달하되, 규칙은 현지에 남기는 방식이다. 중앙아시아에서의 경쟁은 이제 투자 규모 자체보다, 그 이후 어떤 규칙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평가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Japan Silk Road Diplomacy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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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읽고, 사실 위에 통찰을 더하는 글을 전합니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