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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겸 총리가 17일 오후 20시간의 방한 일정 동안 무려 26개의 프로젝트와 100조원에 달하는 계약을 맺고 떠났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 일정인 일본에서 추가 협상이 있을 경우 계약 취소까지 우려되었던 상황이었으나, 일본행을 돌연 취소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귀국길에 오른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일정에서 한국만 사우디아라비아와 프로젝트 계약을 진행한 것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20시간의 방한 일정 동안 네옴시티·고속철·수소·발전 등 100조원 규모의 26개 프로젝트 투자 협약을 체결했다. 무려 1조 달러(한화 약 1,350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네옴시티 개발을 위해 적절한 기술력을 갖춘 국가와 기업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외교적으로 불편한 관계인 미국 및 서유럽 대신 한국과 일본을 택했던 것이다.
석유 고갈되는 100년 후를 바라보는 사업, 방산 무기 사업도 걸려있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사우디는 석유가 사용되지 않는 100년 후를 내다보고 한국을 방문했다”며 “스마트 신도시 건설을 위해서는 과거 중동 건설의 노하우는 물론 첨단산업 기술력도 가진 한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건설과 정보통신기술(ICT) 등 첨단기술은 물론 K-POP 같은 ‘소프트파워’까지 갖춘 한국 기업의 능력을 사우디가 선호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은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삼성전자 등이 네옴시티의 ICT·건설 인프라 등에 참여한다. 현대차는 건설과 스마트 모빌리티 시스템, SK는 그린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와 ICT 기반 사업에 각각 참여할 예정이다. 코오롱은 사막에서 현지 스마트팜 사업에 나서며 수처리·풍력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현대로템은 2조5,000억원 규모의 네옴 철도 협력 관련 MOU를 체결했다. 사우디 고속철 사업을 따낸다면 한국 고속철의 첫 수출 사례가 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와 국내 기업들은 장갑차와 미사일 등 한국의 방산 무기 수입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치밀한 사전 계획, 100조 계약 그냥 얻어진 것 아냐
이날 20여 건의 계약과 MOU, 투자 결정이 전광석화처럼 이뤄진 건 한국과 사우디 양국 정부의 사전 조율 덕분이다. 지난 10일 앞서 입국한 칼리드 알 팔리흐 사우디 투자부 장관은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장재훈 현대차 사장 등과 연쇄 회동하면서 사업 협력을 조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국가별 네옴시티 프로젝트 수주 규모를 보면 사우디아라비아 자국의 비중이 절반을 넘는 가운데 중국, 한국, 스페인, 그리스 등이 주요 수주 국가로 이름을 올렸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 기간 중 스페인 총리도 함께 방한했던 부분이 바로 3자 간 만남을 위한 것이라는 후문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16일 밤에 도착해 17일 저녁 7시 30분 출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스페인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11월 17일 방문해 오전 중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방문, 18일에는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 일정을 진행했다. 두 국가의 정상이 동시에 한 나라에 방문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나, 3자 간 협상이 있었기 때문에 예외적인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10월 26일과 27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마드리드를 방문해 호세 루이스 마르티네스 알메이다(Jose Luis Martinez-Almeida) 마드리드 시장과 회담을 갖고 서울시-마드리드시 간 도심개발정책공유 및 우호도시 MOU를 체결하기도 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한국 방문에 앞서 스페인과 긴밀한 조율이 있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MOU가 실제 '중동 특수'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
정가에서는 이번 빈 살만 왕세자의 한국 방문이 미국-사우디 간의 외교적 불협화음의 여파로 해석한다. 기술력 측면에서 미국이 실익을 누릴 가능성이 높았으나 최근 미국과 사우디 간의 외교적 이슈가 쉽게 풀리지 않은 가운데, 빈 살만 왕세자 입장에서는 적절한 대체재를 물색하던 도중 한국과 일본을 찾았다는 것이다. 중국, 스페인이 네옴시티 프로젝트 주요 참여국으로 등장한 것도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에 대한 빈 살만 왕세자의 개인적인 불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 관계자들은 이번 100조원 규모 MOU가 실제 도시 계획 사업 현장 투입으로 이뤄질지에 대해서 여전히 미지수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미국 및 서유럽 국가들과의 불협화음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이용하려다 한국만 왔다가는 것으로 충분히 시위가 됐다는 판단 아래 일본행을 포기했다는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기술적으로 일본 및 서유럽 국가들에 뒤지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빈 살만 왕세자가 선택한 다른 국가들이 기술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글로벌 최상위가 아닌 중국, 스페인, 그리스 등으로 알려진 가운데,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는 조심스러운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