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40년 전, 공중전기통신사업법으로 도입된 현재 전기통신사업법을 전면개정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관련된 논의가 있어왔다.
그동안 정부는 부가통신사업자, 즉 구글이나 카카오, 티빙, 넷플릭스 등 일정 기준 이상 트래픽을 유발하는 대형 콘텐츠제공사업자들이 서비스 안정수단을 갖추도록 요구하는 일명 넷플릭스 무임승차 방지법, 이하 넷플릭스법 등을 통해 꾸준히 부분개정을 진행했다. 하지만 계속된 전기통신사업법의 일부개정에는 한계가 있어 전면개정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과기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구체적인 주요 개정 방향으로 ▲법률 명칭 등 법 체계 개편 ▲플랫폼 자율규제 ▲새로운 통신산업 규제완화 ▲망 이용기본 원칙 ▲필수설비와 알뜰폰 제도 ▲디지털 안전 확보 등이 제시되었다.
플랫폼 입법규제 아닌 자율규제 추진할 것, 구체적인 방향성은 논의중
우선 현재 마땅한 규제가 없는 플랫폼 내 상황에 대해서 언급했다. 지난 1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외 입법 사례를 참고해 플랫폼 독과점 규제 관련 법제화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규제가 기업의 발전을 저해하며 스타트업의 가능성 있는 시장 도전을 막는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EU에서 시행중인 플랫폼 사후규제 방안을 활용해 국내 플랫폼 심사지침을 제정할 것이라고 전했으나 전문가들은 "국내에 이미 과도한 규제가 적용되어 있어 EU의 뒤늦은 사례를 다시 들여오는 것은 법체계를 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과기부는 이러한 논란을 의식한 듯 개정방향으로 플랫폼에 입법규제를 적용하기 보다는 사업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해 플랫폼 산업에 자율규제를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자율규제 촉진을 위한 정부의 지원시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관련 부분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향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통신사에 해당하는 네트워크 규제 완화도 있었는데 우선 이음5G(특화망) 사업자에는 이용약관 신고 의무를 면제해 사업자 부담을 완화한다. 또 매출 300억원을 초과하는 기간통신사는 휴대폰 제조나 네트워크 공사 등을 겸업하고자 할 때 장관 승인이 필요하지만 IoT 서비스 활성화에 따라 통신기기제조업은 승인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즉 기간통신사업자의 의무를 완화하고, 부가통신사업자의 의무를 강화해 수평적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망 중립성 법제화, 반대 목소리 거셌다.
한편 현재 가이드라인 형태로 규정되어 자율적 규제를 진행중인 '망 중립성'은 법률로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세부적인 내용은 현행 가이드라인을 유지하되 주요 원칙에 관한 부분은 법률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망 중립성이란 통신사나 인터넷서비스사업자가 특정 컨텐츠나 인터넷 기업을 차별하거나 차단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이다. 즉 데이터베이스 보유자, 인터넷 주소 보유자, 컨텐츠 제공자 및 이용자, 이동통신기기 사업자와 그것의 사용자들 등 트래픽을 유발하는 것들의 모든 주체가 동일하게 처리(과금)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망 중립성 위반 사례로는 국내 통신3사에서 카카오톡이 제공하는 '보이스톡' 기능을 차단한 사례이다.
당시 통신3사는 카카오톡이 제공하는 무료통화로 인해 통신사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며 통신사 이용고객에 한해 해당 무료통화기능을 전면 차단했다. 하지만 국내 여론이 악화되자 일정 요금제 이상 가입자들에게 부분적으로 개방하겠다고 정정한 바 있다.
망 중립성에 관한 내용을 법조문에 담는 점에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미디어미래연구소의 권오상 선임센터장은 “기존 가이드라인이 작동하고 있는데 법률 안으로 굳이 들어올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으며, 권남훈 건국대 교수 역시 “가이드라인이 자율규제에 가까운 형식이 됐는데 규제 강도가 강해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윤상필 실장은 “기존 체계에서 충분히 규율이 가능한 상황에서의 법제화는 과도한 규제 도입에 해당한다”며 “향후 통신망 고도화를 위한 투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을 고려하면 망중립성 보다는 오히려 망의 이용과 제공에 대한 공정원칙의 법제화가 더욱 시급하다”고 밝혔다.
디지털 서비스 안정성 확보 의무, 통신서비스 이용자 적극 보호
디지털 서비스의 안정성 확보는 네트워크와 플랫폼으로 나눠서 논의됐다.
우선 네트워크 안정성 확보에 있어서 기존 기간통신사업자의 안정성 확보 노력 의무를 명시한다. 네트워크는 초연결 시대 국가 핵심 인프라로 통신망의 중요성이 강조됨에 따라 중대한 문제로 부상했고, 망 장애 사고 등으로 실효성 있는 보호와 중단 없는 서비스 제공을 명문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주요 기간통신사의 기술적 관리적 조치 의무를 구체화하고 이행실적 제출 요청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매년 서비스 안정성 관련 조치 보고서를 공개하도록 규정한다.
디지털 플랫폼의 경우 기존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서비스 안정성 의무가 있었지만, 사전에 미리 장애를 예방하기 어렵고, 해외사업자의 경우 지정된 국내 대리인의 업무범위가 제한되어 실제 집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미 국회 입법조사처는 2년 전 보고서를 통해 전기통신사업법 전면 재검토를 권고한 적이 있다. “변화한 네트워크 환경에 맞게 전기통신사업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는 부분도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넷플릭스법의 허점을 지적한 것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법을 통해 해외 사업자에게 국내 대리인을 지정하도록 했지만 업무에 한계가 있어 서비스 안정성 확보 의무에 대한 자료 제출 등을 강제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 등을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정부는 이같은 점을 고려해 의무 사업자 지정을 위한 통계 자료 요청 근거를 마련하고, 부가통신사의 서비스 안정성 확보와 관련한 자료 제출 의무를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내 대리인의 업무 범위에 서비스 안정성 확보를 위한 자료제출 의무를 명시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통신서비스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보편적 서비스의 정의도 새로고칠 예정이다. 스마트폰이 사실상 보편적 통신서비스의 범주에 들어서 국민의 많은 생활이 모바일 앱과 디지털 컨텐츠로 확대되는 경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며, 정보격차 역시 서비스 내용을 결정할 때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분실 도난 단말기의 신고해지나 전화번호 변경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이용자가 정기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최적의 요금정보를 제공받게 하는 방안도 법제화 논의에 포함됐다. 이밖에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하는 유보신고제에서 이용약관 신고 반려 사유에 정당한 사유 없이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경우를 추가한다.
알뜰폰 제도 개선·지자체 자가망 허용 등... 초안은 내년 상반기 발표 예정
한편 지방자치단체가 비영리목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기간통신사업 등록을 허용한다. 다만 중복투자나 민간의 투자유인 저해방지를 위해 설비 신규 투자액이 일정규모 이상인 경우 사업 적합성 평가를 받도록 하고, 규제완화 부작용 방지책도 마련해야 한다.
또 현 '전기통신사업법'의 법률 명칭을 ’디지털 경제 사회 구현을 위한 통신 서비스 및 기반에 관한 법률‘로 변경한다. 전기통신역무 같은 일본식 표현은 전기통신서비스 등과 같이 수정할 것이며 현재 법체계에서 빠져있는 IoT도 전기통신서비스(전기통신역무)에 포함되도록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정보서비스(부가통신역무) 정의도 보다 구체화한다고 전했다.
알뜰폰의 경우도 현재 부여된 도매제공 의무 제도의 일몰제를 폐지할 전망이다. 정부가 알뜰폰의 경쟁력을 높이고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법률상 대가산정 원칙도 삭제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도매대가 산정원칙은 소매요금할인방식으로 정하고 있는데, 원가기반 방식 대비 대가를 충분히 낮추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날은 실제 전면개정안 초안이 아니라 개정 방향 정도만 공유됐다. 때문에 실제 법안이 마련되면 입법 절차를 위한 공개토론회와 입법예고 등의 여러 논의 단계를 밟게 된다.
개정방안 발표를 맡은 이민석 정보통신정책연구원 경쟁정책연구실장은 "기존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디지털 시대로 변화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사업법 개정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과기부는 내년 상반기 안에 법 초안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