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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부터 8일까지, 4일간 오전 8시부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의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자하철 타기 선전전이 진행됐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2일 홈페이지에 전장연 시위 예고와 함께 "이로 인해 4호선 해당 구간 열차 운행이 상당 시간 지연될 수 있으니 이 점 참고해 열차를 이용해 주시기 바란다"고 공지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권리 예산이 통과되면 더 이상 지하철 탑승 시위를 하지 않겠다며, 장애인들도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투쟁을 멈추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반면 시민들의 반응은 쌀쌀하다. 지난 8월부터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전장연 지하철 시위 탓에 회사에 여러차례 피해를 끼쳐, 결국 시위가 있는 8시 이전에 출근하는 쪽으로 회사와 합의를 했다는 직장인 A씨는 "명동 일대에서 점심시간에 다른 직장인들이 이야기하는걸 들어보면, 시위 초반에는 장애인에 대한 동정심이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아예 장애인 자체를 혐오하게 됐다는 반응이 많다"며, 시민들의 동정심이 바닥난 상태로 보인다는 경험담을 전했다.
문제만 있고 해결점은 안 보이는 시위
전장연의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지난해 12월 3일 시작됐다. 당시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공덕역 부근의 기획재정부 장관 집을 방문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탔는데 경찰이 휠체어를 끌어냈다는 것이 전장연이 밝힌 시위의 이유다. 사건을 겪고 전장연이 결성된 이래, 시위를 통해 전장연이 전달하는 바는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과 장애인 권리 4대 법률인 △장애인 권리보장법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 △장애인 평생교육법 △특수교육법 제·개정이다.
전장연 박 대표는 지난 2001년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의 오이도역 4호선 역에서 한 장애인이 휠체어 리프트 고장으로 사망한 이래, 장애인의 지하철 내 처우가 변한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2001년에는 경기 오이도역과 2002년 서울 발산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이용하다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가 났다. 이에 대한 사과를 받기 위해 지하철 선로까지 내려가 봤다. 버스 위에 올라타고 8차선이 넘는 도로 한복판에 멈춰 서보기도 했다"며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권리 예산과 이동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정부도 전장연의 주장을 무조건 모른 체하고 있지는 않다. 실제로 현재 예비 심사를 거친 국회 상임위별 예산안에는 정부안보다 약 6,000억원 가량 증액된 전장연 측의 요구사항이 담겨 있다. 상세 사항을 살펴보면, △국토교통위원회에 특별교통수단 도입 보조 운영비에 정부안 대비 무려 631억원 증액된 868억원 △보건복지위에 장애인 활동 지원비 등을 정부안보다 5,490억원 증액된 2조5,400억원 △환경노동위원회에 장애인 고용관리 지원을 위해 정부안보다 274억원 증액된 2,438억원 등이다. 한 국회 예산 심의 관계자는 예산 지원안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으나, 여러 정부 부처와 협의하고 있는 만큼, 공무원들이 전장연 시위를 모른체 하고 있다는 오해는 풀렸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1년째 이어진 시위, 결국 장애인에 대한 동정심만 갉아먹어
정부 부처와의 협상이 더디게 진행되는 가운데, 피해는 출근시간에 서울 4호선을 이용하는 시민들과, 그 시민들을 고용한 기업들만 감당하고 있다.
서울 4호선의 삼각지역과 회현역 일대에서 1년째 이어진 전장연의 시위에 시민들은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4호선 탑승객들은 동작대교를 넘어 이촌역에서부터 전장연 시위에 대한 지하철 안내가 나오면 모두 한숨을 푹푹 내쉰다. 취재 중 만난 한 승객은 '오늘도 늦는다고 회사에 문자 보내는 중'이라며 "회사에 눈치가 보여 8시까지 출근하시는 분들도 있고, 저는 시위에 걸린 날은 아예 10시 출근이라고 전달하고 보통 7시까지 일한다. 더 늦으면 저녁 먹고 들어와서 야근이라도 해야 회사에 덜 눈치가 보이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면서 야근이 사라졌다가 결국 야근 아닌 야근이 시작됐다는 반응도 나온다. 오전 9시 회의로 하루 업무 방향을 정하던 많은 기업들은 회의를 10시, 11시로 미루면서 저녁 식사 이후에도 잔업 탓에 퇴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눈에 띄게 늘어난 기업들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무려 6천억원의 추가 예산이 투입되는 논의가 한창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당연히 장애인에 대한 불만이 폭증할 수밖에 없다. 9시 40분에 명동역 4번 출구로 나온 직장인 B씨의 경우, 사내에서 전장연 시위로 여러 가지 농담이 만들어질 만큼 불만이 폭증해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장애인들이 지하철을 타고 싶은 만큼, 직장인들도 출근을 해야 밥벌이를 유지할 수 있는데, 너무 자신들만 생각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앞으로 장애인 돕기 성금 모금이 될까?
한편에서는 이번 시위로 정부 예산을 6천억원 더 받을 수 있었던 것 이상으로 전장연이 잃은 것이 많다는 반응이다. 4호선에서 출근 문제로 1년째 피해를 본 승객들이 과연 장애인 돕기 성금 모금에 참여할 것이냐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 이어, 그간 장애인의 진·출입을 방해하는 건물, 도로, 기타 교통수단의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각계의 목소리에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나, 이번 사건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일반 시민들에게서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빅데이터 여론 분석을 보면, 전장연 시위는 국민들에게 '민주노총', '화물연대', '불법파업' 등과 묶여 소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뉴스, 커뮤니티, 블로그, SNS 등의 각종 여론을 종합해 키워드 네트워크 분석을 진행해보면, '전장연', '지하철', '시위' 등의 키워드가 '민노총', '파업', '불법', '연대', '노조' 등의 키워드와 함께 하늘색 키워드 묶음으로 나타난다. 시민들이 사실상 전장연과 최근의 민주노총 주도하의 화물연대 및 건설노조 파업을 하나로 묶어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민주노총 파업에 강경대응을 하면서 30%에도 미치지 못하다가 8일 기준 40%를 넘어섰다. 대통령 지지도 상승에 반대하는 그룹과 같이 묶여 여론에 소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발 여론이 거센 것은 일반 시민뿐만이 아니다. 전장연 시위에 참석하지 않는 장애인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자신들은 시민들의 출퇴근에 피해를 끼치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휠체어를 보기만 해도 전장연에 대한 모욕적인 표현을 쓰는 시민들과 마주치는 일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장애인 C씨는, "아무래도 휠체어로 움직이다 보면 출퇴근 시간은 피해주는게 암묵적인 룰이었는데, 전장연 시위 때문에 낮에도 휠체어로 외부 활동을 하기가 불편해졌다"며 "내가 한 짓도 아닌데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사고로 장애인이 된 것보다 더 서글퍼진다"는 감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1년간의 시위로 전장연은 세간의 관심과 6천억원의 정부예산을 얻어냈다. 대신 시민들의 따뜻한 눈길을 잃었고, 전장연이 아닌 다른 장애인들의 지지를 잃었다. 앞으로 장애인 편의를 내세우며 성금 모금이 가능할까? 전장연 시위 사진과 불편해하는 시민들의 사진은 영원히 남는다. 1년간 시민들이 피해를 본 만큼, 성금 모금함 옆에 누군가 전장연 시위 사진을 배치해놓아도 지지하는 시민이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