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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26일 카카오 및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로부터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주식 취득 관련 기업결합 신고를 접수, 심사 작업에 착수했다. 카카오는 지난달 28일 SM 주식 39.87%(카카오 20.76%, 카카오엔터테인먼트 19.11%)를 취득하며 SM 인수를 확정 지은 바 있다.
이번 합병에는 기업결합을 이미 완료한 후 신고하는 '사후 신고'가 적용됐다. 공정위는 신고일로부터 120일(기본 30일, 연장 90일) 내에 기업결합에 따른 경쟁 제한성을 검토하는 등 심사 작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단 자료보정 기간은 심사일에 포함되지 않는 만큼, 실제 심사 기간은 이보다 길어질 수 있다.
한편 시장에서는 공정위가 해당 합병 건을 꼼꼼하게 뜯어볼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한 대형 기업들의 합병 사례인 데다, 이번 인수가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불러올 파장 역시 상당히 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조건부 승인'이 나며 카카오가 특정 사업 영역에 진출할 수 없도록 막는 등 공정위가 제한 요건을 내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방면 사업 진행하는 '공룡' 기업 합병, 제약 걸릴 가능성 크다
카카오와 SM 간 기업 결합은 단순 연예·매니지먼트뿐만 아니라 콘텐츠 시장 전방위에 큰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카카오는 문화·콘텐츠 분야에서 △배우·가수 매니지먼트 △음원·음반 제작 △음원 플랫폼 서비스(멜론) △웹툰·웹소설 플랫폼 서비스(카카오페이지) △영상(드라마·영화) 콘텐츠 제작업 등 대부분 분야에 발을 뻗고 있다. SM 역시 △가수 매니지먼트 △음원·음반 제작 △팬 플랫폼 서비스(디어유 버블) △영상 콘텐츠 제작업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 기업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기업결합 심사 진행 시 △수평(동종업계 간 결합) △수직(생산·유통에 있어 인접해 있는 분야의 결합) △혼합(수평·수직이 아닌 형태의 결합) 결합을 모두 살펴봐야 한다. 일례로 SM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합병되는 과정에서 수평결합이 발생한다. SM의 음원·음반 제작 사업과 카카오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멜론) 합병 시에는 수직결합이, SM의 팬 플랫폼(디어유 버블)과 카카오의 플랫폼(카카오톡·멜론 등) 합병 시에는 혼합결합이 각각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시장 전반을 뒤흔들 수 있는 대규모 결합이 발생하는 경우 공정위는 비교적 엄격한 심사를 진행하며, 심사가 승인될 경우에도 일련의 제한을 내거는 경우가 많다. 1999년 SKT와 신세기통신 합병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경영난에 빠진 신세기통신은 영국 보다폰(Vodafone UK) 아이터치(ATI)에 지분을 넘길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SK텔레콤이 기업 인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신세기통신 인수를 통해 1,3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면 시장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SK텔레콤의 당시 시장 점유율은 43.2%, 신세기통신의 점유율은 14% 수준이었다.
당시 공정위는 통신 인프라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경영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명목 아래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 인수합병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냈다. 당시 내걸린 조건은 △2001년 6월 말까지 점유율을 50% 이하로 떨어뜨릴 것 △SK텔레텍이 공급하는 이동전화를 2005년 12월까지 연간 1,020만 대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불이행 시에는 매일 11억원 이내의 이행 강제금을 납부해야 했다. 이에 SK텔레콤은 점유율 조절을 위해 2001년 3월부터 이용자 신규 가입을 부분 제한했고, 4월부터는 신규 가입 전면 중단이라는 강수를 둬야 했다.
최근에도 유사 사례가 등장한 바 있다. 공정위는 2020년 딜리버리히어로 에스이(DH SE, 요기요·배달통 운영사)와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사이의 4조7,000억원 규모 인수합병을 조건부 승인했다. 승인 조건은 ‘6개월 내 요기요 매각’이었다. 배달앱 시장에서 두 회사의 합병점유율(시장 집중도)이 99.2%(2019년 거래 금액 기준)에 달하는 만큼, 합병 시 시장 독과점으로 인한 경쟁 제한 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딜리버리히어로는 요기요 서비스를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퍼미라, GS리테일로 구성된 컴바인드딜리버리플랫폼인베스트먼트(CDPI)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공정위의 판단에 따라 직접 키운 회사의 영향력을 죽여 외부에 매각한 뒤, 인수한 서비스에 총력을 기울이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카카오발 '플랫폼 독과점' 경계 태세
'플랫폼 독과점'에 대한 공정위의 엄격한 잣대도 심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주요 서비스가 장애를 겪은 이후 '플랫폼 독과점'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독점이나 심한 과점에서 시장이 왜곡되거나, 국가 기반 인프라가 되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정부는 플랫폼 독과점 규제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나서 ‘디지털 플랫폼 발전 방안’을 내놨다. 디지털 플랫폼 발전 방안은 ‘독과점 심사 지침’ 제정 등을 통해 거대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 무분별한 확장에 대해 엄정 대응하는 것을 골자로 한 사실상 '플랫폼 규제책'이다.
공정위는 쏟아지는 규제책을 본격적으로 실현하기 시작했다. 먼저 지난 1월에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대한 심사 지침」을 제정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독과점 남용행위의 심사 기준을 구체화하고, 경쟁 제한 우려가 있는 대표적인 행위 유형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며 국내외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게 일종의 '경고'를 보낸 것이다.
대형 플랫폼의 무분별한 기업결합을 방지하기 위한 '기업결합 심사기준(고시)' 개정도 결정됐다. 종전까지 대부분 '간이 심사'로 처리되던 플랫폼 기업의 이종(異種) 혼합형 기업결합을 원칙적인 '일반 심사'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관계 여부만을 확인하는 간이 심사와 달리, 일반 심사는 시장 획정·시장 집중도·경제 분석 등을 통해 경쟁 제한성을 중점적으로 확인한다는 특징이 있다.
공정위는 이르면 이달 말 심사기준 개정안을 행정 예고할 예정이다. 시기상 이번 카카오엔터와 SM 간 기업결합에는 개정 심사기준 적용이 어려운 셈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번 합병으로 인한 시장 파장이 클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심사기준 개정 여부와 별개로 일반심사를 적용해 경쟁 제한성을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시세조종' 논란 휩싸인 카카오, 인수 경쟁사였던 하이브 '예의주시'
카카오의 '시세조종' 논란 역시 공정위의 심사 수위를 높이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카카오와 SM 인수를 놓고 경쟁을 벌였던 하이브가 이번 심사를 예의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하이브는 카카오엔터가 SM 주식을 대량 매수해 하이브의 지분 확보를 방해했다며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한 바 있다. 이에 금감원은 카카오에 대한 압수수사를 진행하는 등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지난 2월 28일, 당시 하이브는 SM 인수를 위해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를 진행 중이었다. 하지만 돌연 기타 법인이 SM 발행주식의 4.43%, 당일 SM 주식 거래량의 3분의 1 수준인 105만4,341주를 대량 매수했고, 이날 SM 주가는 하이브의 공개매수 가격인 12만원을 넘어서게 됐다. 결국 하이브의 공개매수는 목표로 한 25%는커녕 0.98%의 지분을 겨우 확보하며 사실상 실패했다.
업계에선 SM 지분을 대거 매수한 기타 법인이 카카오와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SM 인수를 위해 하이브와 경쟁하고 있었던 만큼, 카카오 측이 고의적으로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좌초시켜 유리한 상황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실제 금감원은 카카오엔터 임직원이 SM 인수 과정에서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려 했다는 정황을 포착했으며, 이와 관련해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각에서는 카카오의 '간접 조종'에 대한 의혹도 제기된다. SM 주가가 폭등했던 2월 28일, 하이브는 사실상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SM 주식을 구매한 '제3의 세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당일 전문 투자 기관인 원아시아파트너스는 IBK투자증권 분당센터에서 30억원 규모의 SM 주식을 사들였으며, 이후에도 약 820억원 규모의 SM 주식을 헬리오스 제1호 펀드를 통해 매집했다. 업계에서는 그레이고 지분 거래, 아크미디어 투자 등을 통해 카카오 그룹의 '우군'으로 익히 알려진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이번에도 ‘백기사’ 역할을 수행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카카오와 SM 간 기업결합은 향후 문화·콘텐츠 시장 전반에 상당한 파문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시장 역시 차후 일어날 '지각변동'을 고려해 촉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의 합병 사례처럼 공정위가 '조건부 승인'을 내며 카카오의 시장 독점에 일련의 제약을 걸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과연 카카오는 '시세 조종' 오명을 쓰면서까지 쟁취한 SM 인수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선두 주자로 올라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