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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기술 확보 시도한다? '한국판 DARPA' 띄운 정부 일각선 비판 의견도, "R&D 예산 삭감 반발 메꾸려는 심산 아니냐" 주사위는 던져졌다, 한계도전 R&D 프로젝트 진행 상황 지켜봐야 할 듯
정부가 실패 가능성은 높지만 성공하면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매우 큰 '고위험-고수익형' R&D(연구개발)를 본격 추진한다. 파괴적 혁신을 일으킬 만한 원천기술을 확보해 나가겠단 취지지만, 국내의 좁은 인재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임 정부와 비슷한 정책을 내놨단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일각에선 사실상 R&D 예산 삭감에 따른 반발을 줄이기 위해 시선 돌리기용 정책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온다.
과기정통부, '한계도전 R&D 프로젝트' 본격 시행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혁신·도전형 R&D 추진을 위해 올해 초부터 기획해 온 '한계도전 R&D 프로젝트'를 새해 본격 착수한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GPS·인터넷·자율주행차 등의 성과를 끌어낸 미국의 DARPA(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를 비롯해 이를 벤치마킹한 일본의 '임팩트(Impact) 프로젝트', 영국의 ARIA(BEIS 산하 고등연구발명국)와 독일의 SPRIN-D(파괴적혁신 목적 공공기관) 등 세계 주요국은 혁신·도전형 연구개발 지원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도 국내 R&D 시스템이 극복해야 할 문제인 위험 회피, 관료주의 및 느린 의사결정, 단기 성과 위주의 평가, 실패에 대한 관용 부족 등을 개편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계도전 R&D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나섰다. 본격적으로 연구가 착수되더라도 연구개발의 목표나 내용이 고착화되지 않고 책임PM(프로젝트매니저)의 주도적 관리하에 연구방향 전환도 유연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단 계획이다.
정부는 우선 내년 바이오, 기후·에너지, 재난대응 등 3개 기술 분야의 책임PM이 선정한 연구테마 공고에 이어 과학기술적 해결을 모색하는 의견 수렴, 기술제안토론회를 순차적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또 1분기 중에는 현장의 의견이 반영된 과제제안요청서 공고를 통해 사업을 본격 착수한다. 아울러 정부는 도전적 연구 목표를 가진 프로그램의 확대, 창출된 성과의 확산 등 한계도전 R&D의 장기적인 지원체계 마련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한 사업 확대도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노경원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한계도전 R&D는 우리나라 연구현장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유연하고 선진적으로 개편되도록 하는 R&D 혁신의 출발점"이라며 "책임PM, 참여 연구자가 변혁적 원천기술을 확보해 혁신의 핵심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전했다.
"한계도전 R&D, '특공대' 역할 해줄 것"
한계도전 R&D 1호 프로젝트는 물에 잠긴 상태에서도 엔진처럼 큰 힘을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크레인이나 굴착기 같은 대형 기계장치는 침수 우려 때문에 침수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공압이나 유압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지만, 무게가 무겁고 작동 전압도 낮아서 수중에서는 쓸 수가 없다. 소프트 액추에이터 기술이 수중에서 작동할 수 있지만 발생시키는 힘이 현저히 낮아서 재난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1호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침수된 건물 지하나 지하도에 크레인이나 굴착기 같은 장치를 바로 투입할 수 있어 침수 피해에 따른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호 프로젝트와 3호 프로젝트는 각각 ‘식물에서 배우는 그리너지’와 ‘기억의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선정됐다. 2호 프로젝트를 통해선 화석에너지에서 배출되는 배기가스로 수소를 이송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3호 프로젝트는 뇌 기억 분야의 국내 연구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주요 목표다. 이 같은 한계도전 R&D 프로젝트에 대해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대형 예타사업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연구개발이 큰 항공모함이라고 한다면 국가적 난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기민하게 움직이는 특공대와 같은 연구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한계도전 R&D 프로젝트가 특공대와 같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형 DARPA' 청사진 그리는 정부, 하지만
정부가 한국판 DARPA 청사진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함에 따라 한계도전 R&D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의 DARPA 구상에 의구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애초 정부가 DARPA 청사진을 그리고 나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21년부터 DARPA 구상을 시작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부처별로 추진해 오던 R&D 사업을 보다 큰 규모 사업군으로 묶어 투자 규모를 확대할 것"이라며 "기존 플랫폼과 협력을 이뤄냄으로써 조화로운 혁신을 만들어 내겠다"고 힘줘 말했다. 과기정통부 차원에서 AI, 양자, 합성생물학, 우주 등 글로벌 패권경쟁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한계돌파형 차세대 전략기술 투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그린 장밋빛 미래는 일개 종잇조각에 불과했다. 가장 먼저 발목을 잡은 건 우리나라 특유의 보수적 행정 체제였다. 애초 DARPA의 가장 큰 강점은 실패 우려가 있더라도 파괴적 혁신을 불러일으킬 만한 도전적 연구를 장려한다는 점인데, 우리나라는 행정적 특성상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짙다. 국내 R&D 사업 전반이 단기적 성과에 매몰돼 있는 상태에서 장기적이고도 파괴적인 성과를 지향하는 DARPA는 태동하기 쉽지가 않았다. 국내에 관련 기술력이나 안목을 갖춘 인재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애초 인재풀 자체가 작은 만큼 국내 기술 기반 자체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DARPA 구상을 처음 내놓은 지 2~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2023년 기업 R&D 동향조사'에 따르면 기업부설연구소가 있는 기업 700개사 중 32.1%가 작년보다 올해에 오히려 R&D 인력 운용이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R&D 연구인력이 부족하다 응답한 기업들은 전체 연구개발비에서 다른 기업이나 연구기관과의 공동협력 개발에 투자하는 비중이 높았다. 국내 R&D 인력 부족을 공동협력 R&D로 겨우 메꿔놓고 있다는 방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갑작스레 DARPA 구상을 다시 꺼내든 데 회의적 의견이 쏟아진다. 사실상 R&D 예산 삭감에 따른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시선 돌리기식 정책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다만 일각에선 아직 지켜봐야 할 시점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비판은 이미 물망에 오른 R&D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확인한 뒤 해도 늦지 않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