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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후 처음 출산율 반등한 미국, 재택근무 증가의 복합적 작용 재택근무와 출산율의 상관관계, 일본 기업 ‘이토추상사’가 여실히 증명 韓 정부도 ‘육아 재택 기업에 인센티브 제공’ 등 육아부담 완화 방안 마련
미국의 합계출산율이 코로나19 이후 반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코로나 이후인 2022년 출생자수는 약 370만 명으로 전년 대비 10만 명 넘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원인으로는 재택근무 제도가 지목된다. 부모가 직접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간적 환경이 조성되자 출산율도 덩달아 오른 것이다.
美 출산율, 코로나 이전보다 6.2% 증가
15일 WFH(Work From Home) 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풀타임 재택근무를 하는 근로자 비중은 28.8%에 달한다. 3명 중 1명은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61.5%)보다는 급감했지만 코로나 이전(6~7%대)에 비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조사에 따르면 재택근무는 경기 선순환 효과를 일으켰다. 미국의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연율 기준 3.3%로 시장 예상치(2%)를 크게 웃돌았으며, 지난해 연간으로도 2.5% 성장했다. 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성장세를 이끈 것인데, 이는 재택근무로 시간적 여유가 생긴 근로자들이 다양한 여가 활동 등으로 소비를 늘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재택근무는 출산율 제고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1년 미국의 신생아 수는 366만4,292명으로 2020년(361만 명)보다 1% 증가했고, 합계출산율도 1.66명으로 전년보다 0.02명 늘었다. 코로나 이전을 기준으로 할 경우 무려 6.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미니 베이비붐’이라 표현할 정도다. UN(국제연합) 등 주요 기관들은 2022년 미국 출산율이 1.7~1.8명으로 더 높아졌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2007년 이후 처음 나타난 출산율 반등이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경제적 이유 등으로 출산을 미뤘던 기저효과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재택근무가 자리를 잡은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조연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특히 30대 후반~40대 여성의 출산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는데 재택근무 활성화로 오랜 시간 밖에서 일하던 고연령 여성들이 집에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나 여유를 찾으면서 출산율이 높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 국립보건통계센터(NCHS)에 따르면 30~34세 여성 1,000명당 신생아 수는 2020년 94.9명에서 2021년 97.3명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35~39세 여성 1,000명당 신생아 수 역시 51.8명에서 54.2명으로 늘었다.
근무 환경 바꿨더니 출산율 3배로 ‘껑충’, 日 이토추상사의 기적
재택근무가 가져온 출산율 상승효과는 일본에서도 포착된다. 일본 5대 종합상사 중 하나인 ‘이토추(伊藤忠)상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2년만 해도 이토추상사의 출산율은 0.60명으로 일본 평균 합계출산율인 1.4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2021년 들어 일본 기업 평균이 1.30명으로 줄어들었을 당시에도 이토추상사 여성 직원 1명당 출산율은 1.97명으로 9년 새 3배까지 올랐다.
비결은 근무 환경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토추상사는 2013년부터 오전 5∼8시에 출근해 오후 3시부터 퇴근하는 ‘아침형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해외 무역을 하는 종합상사 특성상 야근이 잦을 수밖에 없음에도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모두 금지했다. 대신 오전 5~8시 근무를 심야근무로 인정해 일반 야근 수당의 1.5배를 지급하며 새벽 근무를 장려했다. 아침형 유연근무를 선택한 직원은 이르면 오후 3시부터 퇴근할 수 있다. 팀 전체가 움직여야 하는 근무는 집중 근무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에 처리한다. 재택근무제도 실시했다. 아이를 키우는 직원의 경우 오전 5시에 업무를 시작했다가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일하는 방식을 과감하게 바꿔 아이를 낳고 부모가 직접 키울 수 있는 근무 환경을 조성하자 출산율이 저절로 올라갔다.
출산율만 높아진 게 아니다. 2010년 대비 2021년 노동생산성(직원 1명당 순이익)도 자그마치 5.2배로 크게 상승했다. 주가는 7.6배, 배당은 8.9배 증가했으며 직원 평균 연봉은 1,254만 엔에서 1,830만 엔(약 1억6,243만원)으로 45.93%인 576만 엔이나 올랐다. 이 같은 성과가 화제가 되면서 이토추상사는 지난해 아사히신문 등이 선정한 ‘대학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올랐고, 일본에서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 생산성과 출산율을 동시에 높인 기적의 회사로 불리고 있다.
일본 인구 전문가들은 이토추상사의 유연근무 방식이 경제적 여력은 있지만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대졸 정규직 부부에게 출산과 육아의 길을 넓히는 효과가 있다고 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일본인의 1일 평균 근무 시간(통근 시간 포함)은 363분으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긴 반면, 수면과 휴식 시간은 620분으로 가장 짧다. 취미 활동 시간(278분)이나 가사, 가족 돌보는 시간(132분)도 최하위권이다. 이는 G7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국가인 프랑스가 하루에 204분 일하고, 수면 및 휴식 시간은 752분에 달하는 것과 상반된다. 출산하는 순간, 일과 육아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출산율 제고를 위해 만 3세 이하 자녀를 둔 직원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모든 기업에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 만 3세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 자녀를 키우는 경우 일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기업이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의무화한다. 재택근무 외에 유연근무제나 단시간근무제도 등 2가지 이상의 방안을 마련, 직원이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에 더해 야근 등 잔업 면제권도 지금은 만 3세 이하 자녀를 둔 직장인에게만 적용되지만, 취학 전 자녀가 있는 직원까지 확대한다. 육아휴직과 단시간근무제도, 그리고 지난해부터 실시한 8주 간의 남성 육아휴직제도 등 만으로는 육아 시간 확보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재택근무 및 유연근무제 확대를 추진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지난달 통상국회(정기국회)에서 육아·개호 휴업법을 개정했으며, 이르면 올해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재택근무 활성화 방안 마련에 박차
우리 정부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육아 재택근무를 포함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주 5일 근무 중 이틀은 집에서, 사흘은 사무실에서 하는 '혼합형 근무 등 여러 대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육아 재택근무 보장' 등의 방안도 대통령실 내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자녀 등·하원 시간이나 육아 환경을 고려한 '오전 재택근무' 등 다양한 재택근무 활성화 제도 마련이 골자다.
고용부는 유연근무가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직장 문화로 자리 잡도록 그동안 재택‧원격근무를 대상으로 하던 컨설팅 사업을 '유연근무 종합컨설팅'으로 확대하고, 인프라 지원도 재택근무에서 시차출퇴근·선택근무를 포함하는 유연근무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유연근무 장려금 또한 소규모 사업장의 육아기 시차출퇴근을 지원대상에 포함하고, 육아휴직 기간이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확대하는 등 육아 부담을 완화하는 제도개편도 추진 중이다. 제조업 등 현장 근무가 필수인 업종이나 일부 중소기업의 경우 적용에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는 이를 감안해 단축 근로, 탄력 근로 등 다른 유연근무제도를 통합, 종합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는 16년간 280조원의 저출산 대응 예산을 쏟아부었음에도 출생아 수가 10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데는 일·가정 양립을 어렵게 하는 경직된 노동 환경의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영향이란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유연근무제 보장을 공약하며 "육아 재택을 허용한 기업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업이 육아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면 일·가정 양립과 저출산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실제 연차, 육아 휴직, 재택근무, 출산 후 복귀 등에서 만족도가 높은 집단(회사)에 몸담은 여성들은 55.8%가 출산하겠다고 답하는 등 불만족 집단(32.6%)보다 훨씬 긍정적이었다는 설문조사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중소기업에게는 그림의 떡인 상황이다. 육아 재택근무에 한정하지 않고, 재택근무제도를 시행 중인 모든 기업에 동등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인구 전문가는 “일과 가정 양립을 위한 근로자의 노력에 상응하는 시스템 구축과 더불어 세제 지원에서부터 인력 충원까지 재택근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업장의 부담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덜어줘야 한다”며 “그래야 근로자가 눈치 보지 않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