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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공장 건설 잠정 중단, 강진 여파에 빠진 반도체 업계
일각서 반사이익 기대 있지만, "글로벌 공급망 문제 여전"
아시아에 편재된 반도체 공장, '공장 분산화' 목소리도
대만에 강진의 공포가 덮쳤다. 대만이 비교적 지진이 잦은 지역이긴 하지만, 이번 강진은 25년 만에 최대 규모의 강진인 만큼 피해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번 대만 지진 규모는 7.7에 달했는데, 이 정도 강진이면 보강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콘크리트 벽이 무너질 수 있으며 사람도 평형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가장 큰 문제는 강진의 여파가 대만 내 반도체 기업들에까지 확산됐단 점이다. 특히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가 진행 중이던 최첨단 공장 건설을 잠정 중단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전반에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대만서 7.7 규모 강진, TSMC "공장 건설 중단"
3일 오전 7시 58분(현지 시각), 대만에서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대만 동부의 인구 35만 명가량 도시 화롄에서 남동쪽으로 7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으며 진원의 깊이는 20km로 관측됐다. 이번 지진은 1999년 발생한 지진 이후 대만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지진으로, 이로 인해 화롄 지역의 건물들이 붕괴했고 4명 사망, 50여 명 등이 부상을 입었다.
금전 피해와 인명 피해가 거듭 이어지는 가운데 반도체 업계도 대만 강진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TSMC가 대표적이다. TSMC는 지진 직후 생산라인 직원들에게 대피령을 내렸고, 이후 건설 중이던 최첨단 공장에 대한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TSMC는 대만 남부 가오슝 지역에 최첨단 2㎚(나노미터) 공장(P1)을 건설하고 있었다. 해당 공장은 당초 올해 말 완공될 예정이었다. 더불어 2나노 2공장(P2)도 부지 조성 및 기초 공사에 들어가며 내년 말로 완공을 예상한 바 있다.
공장 건설 중단이 시장에 미칠 영향력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TSMC 기존 공장에서의 칩 생산뿐 아니라 새로운 공장 완공 지연에 따른 공급망 압박까지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TSMC는 대만의 제조공장에서 거의 90%가량의 칩을 생산하고 있다. 공장은 대부분 진앙의 반대편 해안에 위치해 있지만, 지진 여파로 정밀한 장비가 작동을 멈출 우려가 있는 만큼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AI 열풍이 이어지면서 공급 압박이 더욱 극심해진 상황이라, TSMC 공장 부재의 늪은 더욱 커질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지진에 덩달아 흔들리는 반도체 업계
시장에서는 대만 강진 소식에 반도체 업종이 전반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3일 글로벌 반도체 시장 벤치마크인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간밤 대만 강진 악재를 털어내고 0.34% 상승 마감했고, 이날 뉴욕증시에서 하락 출발한 반도체 종목들은 대부분 반등했다.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러지는 4.29% 급등했고, AMD는 1.16%, 퀄컴은 1.68% 올랐다.
반면 파운드리 부문에서 지난해 7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한 인텔은 8.22% 하락했고, 공급 불안 우려를 남긴 엔비디아도 0.55%가 빠졌다. TSMC 주가는 1% 안팎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체적인 피해 상황은 없지만 지진이 대만을 직격한 만큼 투자심리가 위축한 영향이다.
국내 반도체 관련주의 변동성도 덩달아 확대됐다. 같은 날 삼성전자는 오전 10시께 장중 1.76%까지 내렸고, SK하이닉스는 4.35% 급락했다. 이처럼 반도체 업계 최대 경쟁자인 TSMC가 직·간접적 피해를 받았음에도 별안간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주가가 내린 건 이들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TSMC와 협력관계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를 놓고 협력을 하면서도 경쟁하는 사이”라며 “두 국가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만큼 (대만) 지진 여파로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이 연쇄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물론 TSMC의 피해가 삼성전자 등 국내 업계의 반사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TSMC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주요 경쟁 업체로,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1위(61%)고 삼성전자는 그 뒤인 2위(14%)를 이었다. 지진을 계기로 삼성전자가 TSMC를 바짝 따라잡을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렇다 보니 증권가에선 이번 지진이 삼성전자 주가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민규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TSMC 공장과 진앙지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있고, 아직 큰 피해가 발생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TSMC의 전체 매출 변동 사항이 없는 만큼 이번 지진이 삼성전자 주가에 나쁜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관련주는 하락이 가시화한 3일에도 잠시 주춤한 뒤 낙폭을 일부 회복하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공급망 취약성 재확인,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다만 당장 업계에선 낙관론보단 비관론에 무게가 실리는 양상이다. 대만 강진에 따른 TSMC의 갑작스러운 부진이 세계 반도체 공급망의 취약성을 재확인시켰단 점에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제조 공장의 4분의 3가량이 아시아에 위치해 있고, 첨단 반도체의 경우 모든 생산 능력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특히 지진 활동 위험이 높은 대만과 일본에만 약 200개의 제조 공장이 설립돼 있으며, 나머지는 지진 위험이 중간 정도로 평가되는 한국과 중국의 몫이다.
더군다나 대만의 경우 태평양 가장자리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칠레까지 대규모 지진과 화산 활동을 일으키는 불의 고리에 위치해 있다. 반도체 생산은 외부 충격과 먼지 등 이물질에 의한 오염에 매우 취약하고 매우 작은 진동으로도 오작동이 잦은 품질 낮은 칩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 이번 대만 강진 사태처럼 지진이 한 번이라도 '잘못' 발생하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셈이다.
이미 지난 2020년 비슷한 상황을 경험한 바 있기도 하다. 2020년 12월 대만 북동부 이란현 부근 해역에선 6.7 강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지진 피해 지역엔 TSMC와 마이크론 공장이 있는 신주현, 타이중, 타오위안 등이 포함됐는데 TSMC의 생산설비에서는 4.0 규모의 진동이 감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장은 규모 3.0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생산 라인이 자동으로 정지되며, 재가동에는 최소 5~6시간, 길게는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결국 반도체 생산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이로 인해 당시 글로벌 반도체 가격은 전반적인 상승 그래프를 그렸던 만큼, 이번에도 반도체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이란 시장 전망이 나온다. 지진 등 재난 상황이 이어질 때마다 변동 폭이 커지는 모습만 반복되는 가운데 시장에선 공장을 분산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