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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전 회장, 인하대병원 인근 차명 약국 개설
14년간 요양급여·의료급여 1,522억원 부당 취득
법원 "비자금 형성 목적으로 약사법 위반은 아냐"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전 회장이 14년간 차명으로 약국을 운영하면서 1,000억원대 부당이득을 얻었다는 혐의에 대해 지난달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 앞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공단)은 이 사건과 관련해 한진그룹 총수 일가를 상대로 1,000억원의 요양급여 환수 처분을 내렸는데 이번 무죄 확정에 따라 직권 취소됐다.
계열사 건물에 차명 약국 운영하며 부당 수익 챙겨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서경환)는 지난달 30일 정석기업 원종승 대표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배임), 약사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이 행위에 가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된 약사 이모씨와 그의 남편 류모씨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의 부동산 등을 관리하는 비상장 계열사로 사실상 조 전 회장과 그룹의 금고지기 역할을 해왔다.
검찰은 지난 2018년 조 전 회장이 2010~2014년 정석기업 소유 건물에서 이른바 '차명 약국'을 운영하면서 공단으로부터 1,522억원 상당의 요양급여와 의료 급여비용을 부정하게 타낸 혐의로 조 전 회장과 원 대표 등을 재판에 넘겼다. 당시 검찰은 공소장에 약국의 실질적인 운영자를 조 전 회장이라고 보고, 조 전 회장이 계열사 건물에 공간을 제공한 뒤 해당 약국에서 발생한 이득 중 일정액을 받아 챙겼다고 썼다. 다만 조 전 회장은 2019년 4월 사망해 공소 기각됐다.
지난 2020년 1심 재판부는 약사법 위반과 공단을 속여 요양급여를 타낸 사기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원 대표에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2심 재판부는 약사법 위반과 사기 혐의를 무죄로 판결했다. 약국을 운영한 약사가 주도적으로 약국을 운영하며 약품 조제·판매·복약지도를 했고 약사가 약국 수익 일정 부분을 원 대표와 조 전 회장 등에게 지급한 것은 해당 건물에서 계속 약국을 운영해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자 하는 목적이었다고 봤다.
'법리상 무죄'일 뿐 행위 자체는 합법적이라 볼 수 없어
법원이 무죄를 확정했지만, 한진그룹의 도덕성에는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확정한 2심 판결을 보면 "법리상 무죄 판결이 선고됐지만 행위 자체가 아주 합법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여러 기록에 비춰보면 무죄가 선고된 부분은 증명이 부족하다고 보는 게 합의된 판단"이라고 판시했다. 증거와 증명이 부족한 데 따른 판단이라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이들이 운영한 약국 형태를 차명 약국이라 분류하며 통상적인 면허대여약국(면대약국)과 구분 지었다. 면대약국과 달리 차명 약국은 운영 과정에서 의약품 오남용이나 판매 질서가 훼손되는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건의 실체는 독점 약국을 운영하는 대가로 수익금 중 70∼80%를 현금으로 받아 조 전 회장의 비자금을 만든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조 회장의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문서에서 약국을 사업 차명 관련 항목으로 분류했다. 내용란에 '연 2억8,000만원 배당금 현금 수령', '우리 측 80% 지분 소유', '2001년부터 배당 수령'을 적어두고 문제점 란에는 '약사법 위반'이라 기재했다. 재판 결과 조 전 회장은 의약분업이 시작된 2000년부터 약국에 대한 지분 관계를 정리한 2014년까지 정기적으로 약국 재정과 운영 사항을 보고받으면서 약국 수익 지분의 80%를 챙겨왔고, 14년간 매년 2억8,000만원 상당을 현금으로 수령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무죄 판결로 1,000억원 요양급여 환수 위기 넘겨
한편 이번 판결로 공단이 2018년부터 진행하던 1,000억원의 요양급여 환수 작업도 중단됐다. 앞서 공단은 요양급여를 환수하기 위해 조 전 회장의 서울 종로구 구기동·평창동 단독주택을 가압류했다. 이에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 환수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조 전 회장 사망 후에는 배우자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 자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조현민 한진 사장·조원태 한진 회장이 소송을 이어받았다.
그러다 17일 원 대표 등에 대한 형사 소송에서 무죄가 확정되면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요양급여 환수 처분 취소 소송 취하했다. 공단이 원 대표와 한진그룹 총수 일가를 상대로 제기한 591억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도 취하됐다.
1,000억원은 한진그룹에 적지 않은 금액이다. 2016년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 당시 조 전 회장은 직접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한진해운에 기부한 사재 400억원이 재산의 20%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1,000억원은 조 전 회장의 재산 절반이 넘는 금액이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로서는 차명 약국 무죄 판결로 보유 주식, 부동산 등을 매각해 요양급여를 환수해야 하는 위기를 넘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