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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사계약 특수조건 개정
부실시공 원청-하청 떠넘기기 방지 목적
정부도 불법하도급·카르텔 혁파 '집중'
앞으로 서울시가 발주한 공공건설 공사에서 중대한 부실시공이 발생할 경우 원도급사가 1차적 책임을 지고 지체 없이 재시공에 들어가야 한다. 원도급사에 '책임 시공' 의무를 부여한 것으로 부실공사와 재시공 지연을 막고 추가사고를 예방해 시민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조처다.
공공건설 분야 원도급사 ‘책임시공’ 의무 부여
서울시는 공공건설 분야에서 원도급사에 ‘책임시공’ 의무를 부여하기 위해 중대한 부실시공 발생 시 즉각 재시공을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서울특별시 공사계약 특수조건’을 개정하고 5일 예규를 발령한다고 밝혔다. ‘서울특별시 공사계약 특수조건’은 공사계약 관리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2002년 1월 서울시 예규로 제정, 서울시가 발주하는 건설공사 계약체결 시 첨부해야 할 문서로 계약문서의 효력을 갖는다.
‘중대한 부실시공’은 고의나 과실로 부실 시공함으로써 공사목적물의 구조상 주요한 부분에 중대 손괴를 일으킨 경우를 말한다. 이번 특수조건 개정은 건설공사 진행 과정에서 중대한 부실시공이 발생했음에도 원도급사와 하도급사 간 책임 떠넘기기 등으로 재시공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고, 이를 통해 추가 사고를 예방하여 시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됐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해 “건설기술과 산업에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 안전하고 매력 넘치는 ‘글로벌 안전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고질적인 부실공사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제도와 시스템 전반을 개선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후 서울시는 부실시공 시 ‘원도급사 책임 및 재시공 의무’를 명문화하기 위해 올 초부터 특수조건 개정 내용에 대한 법률자문, 행정예고 및 의견조회, 규제개혁위원회 심의 등 행정절차를 진행해 왔다.
또한 서울시는 앞서 행정예고 등을 통해 △재시공이 필요하지 않은 경미한 사항에 대해서는 발주기관과 협의해 보수·보강 등의 방법으로 조치할 수 있으며 △불가항력 등 계약상대자의 책임이 없는 사유로 인정된 경우 비용 처리에 관한 내용 등 업계 의견도 수렴해 반영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서울시가 발주하는 건설공사는 개정된 공사계약 특수조건을 적용받게 되며, 건설사업자는 공사 과정에서 중대한 부실시공 발생 시 1차적 책임 및 재시공 의무가 있는 특수조건을 사전에 인지한 가운데 입찰 참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서울형 건설혁신 대책 핵심과제도 추진
서울시는 '부실공사 없는 안전 서울을 위한 서울형 건설혁신 대책'에서 내놨던 3개 부문과 8가지 핵심과제도 추진한다. 핵심과제로는 △부실공사 업체 초강력 제재 △주요 공종 하도급 전면 금지 △감리 현장감독 시간 확보 △민간공사 관리 사각지대 해소 △민간공사 감리 독립성 확보 △현장 근로자 시공능력 향상 △가격 중심 입찰제도 철폐 △(가칭)서울 건설산업 발주자협회 설립 등이 포함됐다.
공공건설 부문에서 중대 부실공사 업체가 시에서 발주하는 턴키 등 대형공사 기술형입찰 참가 시 감점(-15점)을 적용받도록 하는 입찰안내서 기준을 신설하고, 감리의 현장감독 공백을 보완할 수 있는 ‘공사장 동영상 기록관리’를 1억원 이상 모든 공공시설 공사장으로 확대했으며, 주요 공종 등의 검측 및 품질관리 강화를 위해 건설사업관리계획 심의 시 현장 상주감리원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하고 있다. 민간건설 부문에서는 감리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이달부터 감리비 ‘공공예치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민간건축공사 구조안전 검증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구조안전 전문위원회 심의 및 운영기준’을 제정했다.
국토부 평가 기준 개편, 안전·품질평가 강화
서울시의 이번 공사계약 특수조건 개정은 그간 시장의 자율에 맡겨 왔던 재시공 결정을 의무화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부실시공의 근본적 원인은 불법 하도급과 현장애 만연한 카르텔 구조에 있다. 이 같은 관행이 근로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대형 붕괴 사고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도 처벌 수준을 대폭 강화하는 등 부실시공 줄이기에 집중하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해 9월 시공능력평가제도 개선을 위해 마련한 '건설산업기본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시공능력평가는 발주자가 적절한 건설업체를 선정할 수 있도록 건설공사 실적과 경영 상태, 기술 능력, 신인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제도로 매년 7월 말 결과를 공시한다. 평가 결과는 공사 발주자가 입찰 자격을 제한하거나 시공사를 선정할 때 활용되며 신용평가와 보증심사 때도 쓰인다.
정부는 최근 건설현장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중요해진 점을 고려해 시공능력평가의 '신인도 평가' 비중을 늘렸다.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고, ESG 경영·준법 경영을 하는 건설사와 그렇지 않은 건설사의 점수 차이를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이를 위해 신인도 평가 세부 항목을 추가했다. 하자보수 시정명령을 받았다면 공사실적액의 4%를 감점하고, 중대재해처벌법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10% 감점한다. 공사대금 체불, 소음·진동관리법, 폐기물관리법 등 환경법을 위반할 경우에는 공사실적액의 4%를 깎는다.
아울러 벌떼입찰과 같은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한 감점을 확대하고, 불법하도급 감점 항목도 새로 도입했다. 지금까지는 건설사가 부실 벌점을 받았다면 1∼3%의 감점 처리가 됐지만, 벌점 구간을 세분화해 감점 폭을 9%까지 확대하고 벌점을 1점만 받았어도 점수를 깎는다. 이와 함께 발주처의 시공평가(100억원 이상 공공공사 대상)가 낮으면 2∼4% 감점되고, 안전관리 수준이 우수하다는 평가(200억원 이상 공공공사 대상)를 받으면 2∼4% 가점을 준다. 국토부의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신인도 평가가 강화됨에 따라 건설사들은 공사실적액의 최대 20%를 감점받고, 29%를 가점으로 받을 수 있다.
GS건설, 5,000억 들여 부실 아파트 '전면 재시공'
이에 따라 건설사들은 공사 실적이 좋더라도 신인도 감점이 많을 경우 시공능력평가 순위 하락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는 건설사의 브랜드 평판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가한다. 지난해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를 낸 GS건설의 경우 영업정지 10개월 처분이 확정되면 20%를 감점받고, 부실 벌점에 따른 감점도 추가로 받게 된다.
이에 GS건설은 부실 아파트 전면 재시공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부실시공 사태가 회사에 미치는 평판 리스크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데다, 최근 서울 강남구 개포자이 프레지던트의 물 고임 현상과 서울역 센트럴파크자이 비내력 기둥 파열 논란 등의 문제까지 잇따라 불거지면서 대표 브랜드인 ‘자이’의 존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토부의 건설사고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인천 검단 아파트의 붕괴 원인으로는 △설계·감리·시공 등의 부실로 인한 전단보강근 미설치 △붕괴 구간 콘크리트 강도 부족 등 품질 관리 미흡 △공사 과정에서 추가되는 하중을 적게 고려한 것 등이 지목됐다. 철근을 누락하고 부실 콘크리트를 사용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당시 GS건설은 “보강근이 결여된 설계를 걸러내지 못한 채 같은 설계사에게 재검토를 의뢰하는 등 안일하게 대처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조경 시공 과정에서 토사를 다룰 때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했거나 기타 실수를 저지른 점도 깊이 반성하고 동일한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건설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17개 동, 총 1,666가구에 이르는 전체 단지를 재시공하는 데 드는 비용만 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시공 공사비뿐 아니라 철거비와 입주 지연에 따른 지체 상환금 등까지 감안한 비용이다. 전면 철거 및 재시공에는 4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